ZOOM IN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여배우’는 자신이 원하는 ‘파격’을 선택할 수 있는가?
송아름|영화평론가 / 2020-02-20
< ZOOM IN >에서는 여성 영화, 감독, 배우, 캐릭터 등을 퍼줌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
<비밀은 없다> 스틸컷
배우들의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특정 캐릭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의미일 테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가 소비된다는 말이 자주 ‘식상하다’는 말과 등가에 놓인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배우의 특정한 이미지는 대체로 후자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
배우의 생김새, 발성, 말투, 몸집, 평소의 발언 등 모든 것이 집적된 배우의 이미지는 그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 그것에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했고, 한편으로는 어떤 역할에‘만’ 귀속되는 것인지를 결정했다. 즉, 이 모든 것은 ‘배우만의 것’으로 선택되는 것처럼 보였고, 이로 인해 바꿔야 할 것은 배우였으며, 극의 이미지를 빚어내야 하는 모든 책임은 오롯이 배우에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배우의 몸집이나 생김새는 자주 회자됐던 극한의 다이어트나 긴 시간 공들인 분장으로, 발성이나 말투는 ‘지역’ 선생님과 녹음기를 동원한 열정으로 해소해 왔으며, 평소의 발언은 특별히 부각되는 배우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배우의 이미지가 과연 ‘배우의 만의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면, 그러니까 그 배우가 해줬으면 하는 역할을 이미 영화들이 정해놓고 있었다면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배우‘성’을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없다> 스틸컷
기억나지 않던 몇 장면을 확인하고자 다시 보았던 <비밀은 없다>(이경미, 2016) 속 손예진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던져 주었다. 몇 장면만 봐야겠다던 계획을 완전히 잊은 채 영화 전체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왜 지금에서야 이 배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이는 연기를 못하는 줄 알았던 배우에 대한 발견이라는 식의 예의 없는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영화는 이 정도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제안하고 있었던 것인가, 특히 여성 배우들에게 헌사랍시고 던지는 ‘파격적 변신’이라는 수식이 과연 그들이 원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인가, 궁극적으로 영화는 적절하게 여성 배우의 배우성을 존중하고 있었던 것인가. 누구나 알다시피 이에 대한 대답은 NO에 가 닿는다.
<클래식> 스틸컷
손예진이라는 배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한 배우가 늘 좋은 연기를 보여줬을 때 보일 수 있는 반응에 가깝다. 영화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기에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수 있는, 한 배우가 장점이든 단점이든 특별하게 부각되지 않는 편안한 연기로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예진은 과잉된 몸짓이나 표정을 굳이 보이지 않으며, 발음이 정확하고 편안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에 속했고, 그 모습은 어느 영화에서나 매우 적절하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예진은 늘 ‘가련하고 청순한’, 혹은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배우였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클래식>(곽재용, 2003)이나 <내 머릿속의 지우개>(이재한, 2004) 등의 영화는 손예진이 있어 주길 바라는 자리를 지시하고 있는 듯 보였고, 이런 류의 작품에 큰 관심이 없던 나에게 손예진은 그저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하는 배우 이상의 의미로 생각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스틸컷
물론 손예진은 이 작품들 이후 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두 작품은 손예진에게 가장 중요한 디폴트 값이었다. 굉장한 가공과 환상이 작동하는 첫사랑의 상징. 청순가련하고 여리여리하며 눈물 흩날리는 여성의 자리에 서 있던 손예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모습들을 깨뜨리는 것으로 자신의 배우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당연히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이미지를 소비하려는 영화는 여전히 손예진‘식’의 캐릭터를 원했고 그 범위를 넘어가는 역할 자체의 빈곤에 부딪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했듯 이는 배우의 지향과는 상관없이 매우 옹졸한 상상력으로 닫혀버린 곳에서 차악(次惡)을 강요당하는 문제였고,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뻔했다는 것은 그의 작품들로 확인된다.
그가 고르고 고른 영화들이 비열한 내면을 가지고 있거나, 액션을 해야 하거나, 혹은 얄밉고 발랄한 모습에 치우쳐 있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깨뜨리려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그에게 놓인 선택지가 매우 협소했다는 것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앞의 두 작품 속 주인공에 ‘비하여’ 신기한 것이거나, 액션을 했기에 힘들었을 것이거나, 밝은 캐릭터 자체가 ‘파격’으로 평가됐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손예진 이미지’의 ‘파격’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켰다.
즉, 그가 골랐던 캐릭터와 그에 따른 평가들은 한국영화가 생각하는 여성성과 그것의 깨뜨림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시였던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30~40대 여성 캐릭터를 떠올릴 때(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많지도 않지만), 그 앞에 ‘파격’이라는 수식이 붙을 수 있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그것은 왜 파격으로 불리는가, 그것이 과연 그것을 선택했을 배우가 원한 ‘파격’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내놓을 수 있는 답이 매우 촌스럽고 짜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여태까지 손예진이 평가되었던 ‘파격’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었는지, 또 그가 가진 배우의 에너지와 상관없는 것이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비밀은 없다> 스틸컷
연홍은 자신이 안온하게 살아오던 상황이 얼마나 비틀린 채 유지되어 오고 있던 것인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면서 분명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 끝에서 발견한 남성과 정치라는 거대함이 매우 부실하면서도 우스운 틀로 얽혀 있으며 쉽사리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도 연홍의 행동 때문이었다.
즉 연홍으로서의 손예진은 누군가 바라마지않는 캐릭터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서 비밀을 파헤쳤고, 매우 거대하고 깊은 심연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가려야 하는 몸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예뻐야 하는 모습을 헝클어서가 아니라, 약해야 함에도 강한 모습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규정한 틀을 벗어나서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서 허황된 구조를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것, 바로 여기에서 손예진이라는 배우성의 파격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는 당연히 영화 내러티브의 진화와 함께하는 것이며 단순한 ‘느낌’과 ‘이미지’가 아닌 그만큼의 ‘공부’와 ‘고민’이 맞물린 것이었을 테다. 너무 당연하지만 생경한 느낌을 주었던 영화 <비밀은 없다>가 그랬던 것처럼.
<비밀은 없다> 스틸컷
손예진은 13년 전 인터뷰에서 이미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누구도 그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주제는 민감할 것이며, 그래서 만들기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며… 등의 문제를 다 떠나서 손예진의 ‘예전’ 이미지를 지긋지긋하게 붙들려는 고집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그것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13년 전이라면 그가 멜로 영화의 정점에 올라 예의 그 ‘손예진 이미지’가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와 정확하게 겹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도달하려는 배우성이 적어도 남들이 가둬놓은 평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가 거쳐왔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 가끔은 지쳤을 시간들이 얼마나 지난하고 기대에 어긋나 허무했을지에 대해서도 상상하게 된다. 부디 그(들)의 앞에 놓인 선택지가 조금 더 다양해지길, 그래서 그(들)이 온전히 배우로서 파격적이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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