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다나카 기누요 감독의 전후 일본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응답

<연애편지>

황미요조|영화평론가 / 2020-12-17


< ZOOM IN >에서는 여성 영화, 감독, 배우, 캐릭터 등을 퍼줌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다나카 기누요(田中絹代, 1909~1977)는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대배우이자, 일본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 감독이다. 10대에 시미즈 히로시 감독과 잠시 ‘시험 결혼’을 하지만, 곧 헤어지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26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감독으로서는 1953년의 <연애편지>를 처음으로, 1962년까지 6편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다나카 기누요 사진

전쟁 전 1920년대부터 스타였고, 패전 후 1950년대에는 국제적 명성까지 얻은 명실상부 일본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였지만, 그 과정은 매 고비마다 순탄하지 않았고, 영화 감독으로의 활동 역시 쉽지 않았다. 전후, 슬럼프에 빠졌던 다나카에게 고난을 감내하는 전통적인 여성이미지를 부여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여배우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던 것은 미조구치 겐지 감독과 함께 한 <오하루의 일생>(1952), <우게츠 이야기>(1953), <산쇼 다이유>(1954)와 같은 영화들이었다. 

다나카가 슬럼프에 빠지게 된 계기가 1949년부터 1950년까지 미일 친선 사절로 미국에 다녀 온 후 환영하는 대중들에게 ‘헬로’라고 인사하며 손 키스를 하는 등 ‘미국 병이 든 탓’에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았던 일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다나카가 고난을 겪으며 한 없이 추락하는 운명을 감내하는 미조구치 감독의 ‘일본 여자’가 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만든 것은 씁쓸한 일이지만 달리 선택이 불가능한 어쩌면 거의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패전 후 미군의 점령을 겪으며 자신의 추락과 모멸, 열등감을 ‘미국이 빼앗아가’, 미국 여자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본 여성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다나카는 ‘일본 여자’가 되는 것으로 생존했지만, 한편으로 ‘미국 병’이 들었다고 비난 받은 여자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나카 기누요 사진

운명에 휘둘리는 여자, 지긋지긋한 고생을 묵묵히 마다 않는 어머니, 새로운 세대에게 치이면서 조용하고 우아하게 뒤 켠으로 물러나는 긴자의 마담을 연기하며 다시 대중들의 사랑을 회복한 다나카 기누요는 영화 감독으로의 데뷔를 차근 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당대 미조구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성 영화’를 만들고 있던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오누이>(1953) 제작에 조연출로 참여하는 등 신토호 스튜디오의 협력 아래 감독 수업을 받아 1953년 <연애편지>라는 영화로 첫 연출에 도전한다. 당시 감독협회 회장이었던 미조구치 겐지는 다나카 기누요의 영화 연출을 극구 반대하며 훼방을 놓았고, 그 결과 다나카 기누요의 두 번째 영화부터는 대형 스튜디오 간 인력 고용의 배타적 협정인 5개 협정에 들어 있지 않은 제작사인 닛카츠나 독립프로덕션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게 된다.  

<연애편지>는 남루하고 작은 집들이 촘촘하게 늘어선 지저분한 좁은 골목과 그 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빨래를 하는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나루세 감독의 세트와 카메라 구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카메라는 인물을 앞질러 움직이며 크게 회전한다. 미리 방심하지 말라고, 추레하고 구차한 전후 풍경을 담은 골목이 나오지만 나루세의 영화는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곧 레이키치의 모습이 보인다. 관객들은 레이키치와 동생의 대화를 통해, 레이키치는 참전 군인이었고, 첫사랑의 미치코가 이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후 그 첫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이키치는 전쟁 후의 혼란한 사회의 틈새를 잘 이용해 외국 서적과 관련한 사업을 하는 동생을 통해 번역 일을 하고 있고, 지적이며 진중한 남자라는 정보가 이후 장면들을 통해 전달 된다. 

〈연애편지〉 포스터

다소 어두워 보이기는 하지만 지고지순하고 로맨틱해 보이는 레이키치가 ‘연애편지’를 쓰는 것인가, 아니면 미치코로부터 반가운 혹은 슬픈 ‘연애편지’를 받는 것일까,를 궁금해 하는 순간 곧 ‘연애편지’는 레이키치가 전쟁 때 동료로부터 받게 된 새로운 번역 일임을 알게 된다. 레이키치의 옛동료는 미군 대상의 성매매 여성들, 즉 소위 ‘팡팡(한국어로는 양공주에 해당 될)’들의 영어 편지를 번역하거나 대필하는 일로 수완 좋게 돈을 벌고 있으며, 레이키치를 그 세계로 끌어 들인다. 편지의 내용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약속 한 미군들이 본국으로 돌아 간 후 갑자기 연락이 뜸해지거나 아이의 양육비나 생활비를 보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 상대 미군을 채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레이키치의 영어 편지는 이것을 서정적이고 은근하게, 그리고 로맨틱하게 바꾸어 놓는다. 이것은 여성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자 사회가 생각하는, 특히 서구 남성이 일본의 하층 여성에게 생각하는 언어의 방식이다.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운 치부라고 할 수 있는 ‘팡팡’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체가 드문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50년대 일본 영화의 가장 빈번한 여성 캐릭터는 팡팡들이다. 팡팡의 비행과 갱생, 혹은 죽음을 보여주며 팡팡의 전시와 처리에 골몰한 영화들은 사실 패전의 수치와 전쟁범죄의 흔적을 팡팡에게 뒤집어 씌워 전쟁과 패전의 기억을 처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여성들의 비행이나 갱생을 다루는 대신 그녀들의 마음, 즉 ‘연애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이 마음은 연애의 마음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 주지 못 하는 틈새에서 여성들이 찾은 혹은 국가가 일부러 적극적으로 내 몬 국가 폭력의 장소에서 여성들의 생존을 향한 마음이다. 

다나카 기누요 사진

하지만, 이 마음은 남성과 식민자의 언어가 개입해 로맨틱한 ‘연애편지’로 번역되거나 (“나를 더러운 여자라 욕하겠지만, 나는 존을 정말로 사랑해서 허락했어요”와 같은)아니면 물질과 편하게 사는 것에 눈이 멀어 방탕한 생활에 타락한, 그리하여 갱생의 기회를 갖거나 처벌 받아 죽어 없어지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 팡팡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후자의 사회 계몽적인 스토리를 선호했지만, <연애편지>는 팡팡 여성이 자신을 스스로 정체화 할 때 더 자주 택할 법한 전자를 택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팡팡 여성이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언어가 식민자와 토착 남성의 시선이 개입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방식으로 가공 된 언어라는 것을 영화 내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치코는 편지 대필을 의뢰하는 여성으로 레이키치와 맞닥뜨리게 되고, 충격을 받은 레이키치는 미치코에게 미군이 제공하는 물질에 눈이 멀어 미국식 아파트의 꿈을 꾸며 그저 편하게 살고 싶은 길을 택한 것뿐 아무리 힘들어도 고생하며 사는 다른 여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냐, 푸른 눈을 가진 아이가 무시 받고 살 것이 두렵지 않냐는 등의 경멸과 계몽의 말들을 늘어 놓는다. 레이키치의 추궁에 처음에 미치코는 미군에 더럽혀진 자신은 비난 받아도 마땅하다며 우선 용서를 빌고 난 후, 그러나 자신은 미군에게 몸을 파는 관계가 아니었고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된 ‘정상적’ 관계였음을 인정 받으려 애쓴다. 

다나카 기누요 사진

미치코의 입장과는 상관 없이 자신의 순수한 첫사랑이 상처 난 것에만 전전긍긍하던 레이키치는 편지 대필을 부탁하는 어느 나이 든 팡팡에게 “생계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겠지만, 당신도 예전에 순수했던 때가 있었겠지. 이제라도 제대로 살아 봐. 한 번 노력이라도 해봐”라며 그녀의 곤란을 이해하려는 듯 계몽적이고 설교조의 말을 늘어 놓는다. 나이 든 팡팡은 “이 남자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냉소적으로 반응하며 사라진다. 이 차가운 반응을 보여주는 나이 든 ‘팡팡’은 이 영화의 감독인 다나카 기누요이다. 
실제 미치코의 ‘해명’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호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레이키치가, 일본 사회가 미치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결국 레이키치와 레이키치의 동생을 비롯한 남자들을 이해시키는 방법에 실패 한, 혹은 남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를 거부한 미치코는 사고처럼, 자살 시도처럼 지나가는 차에 몸을 던진다. 

다나카 기누요가 감독으로서 첫 연출작을 자신의 미국병 소동에 대한 설욕, 혹은 응답으로 계획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래도록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남성 감독이 해석한 이야기 속의 여성을 연기해 오던 다나카 기누요의 첫 연출작이 모멸감과 열등감을 자신을 포함 해 여성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패전 일본과 그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의 열등감을 대신해 체현하는 것 외에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방식을 찾기 어려운 곤란을 멜로드라마적으로 동시에 냉철하게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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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강사, 2011~2014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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