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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안부묻기] 동물과 우리들의 이야기, 황윤 감독의 작업들

손시내|영화평론가 / 2021-01-07


“잘 지내고 있나요?” 손시내 평론가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해 건네는 따스한 인사. 오래된 앨범을 넘겨보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영화와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잊고 있었던 혹은 기억해야 할 이름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여성’과 ‘영화’를 오가는 이야기들 사이 사이 손시내 평론가가 전하는 ‘안녕’들을 포착해보시길.
전 지구적인 팬데믹 위기와 더불어 생태계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감지한 많은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인간과 생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이고 다층적인 고민을 내놓고 있다. 물론 그건 완전히 새로운 논의가 아니라, 그간 오래 축적된 경험과 깊은 사유로부터 나온 말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하며 동물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담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황윤 감독도 그러한 고민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어온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동물원의 철창 속 동물들, 개발 논리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의 영화에는 그와 같은 고민과 개인들의 삶이 만나는 지점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참혹한 현실,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 동물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감독의 마음이, 명쾌한 해답을 향해서가 아니라 최선의 답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과정 속에서 만나고 부딪친다. 그 여정은 2020년을 마치고 2021년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너무나 많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별〉 스틸컷

<작별>(2001)은 어느 동물원의 겨울 풍경으로 시작한다. 이곳엔 호랑이, 재규어, 퓨마와 같은 맹수들과 코뿔소, 코끼리, 기린, 침팬지 등의 야생동물이 관람을 목적으로 길러지고 훈련받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새끼를 낳고, 살아간다. 한편에는 동물원이라는 공간과 동물들을 관리하고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육사와 자원봉사자들은 동물들의 먹이를 챙기고 어린 동물들을 직접 안아 키우며 이곳을 관리한다. 카메라는 동물원의 뒤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머물며 그러한 그들의 일상을 묵묵히 담는다. 

동물들과 인간들, 동물원을 이루는 그 많은 요소들 중에서 아기 호랑이 크레인은 유독 자원봉사자와 사육사, 그리고 감독의 주의를 끌어당긴다. 갖가지 병을 안은 채 약하게 태어나서, 쑥쑥 자라지도 못한 얌전하고 겁이 많은 아기 호랑이. 다른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것조차 어려워 사무실 한구석에서 강아지처럼 지내는 그는 바로 이 동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석을 건드리는 존재다. 크레인은 건강하지 못하고 사납지 못한 호랑이, 호랑이답지 못한 호랑이다. 자원봉사자와 사육사는 과연 이 아이가 커서 호랑이 구실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그건 동물원 동물들의 ‘상품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다. 건강하면서도 완전히 야생적이지는 않은, 적당히 길들어 있기에 철창 안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동물을 키워내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원의 임무인 것 같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기는 동물들은 무료하고 불편한 모습이다.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가 많고, 또 그 안에서 애정을 바탕으로 동물들을 돌보는 이들이 있음에도, 동물원은 결국 동물들을 위한 곳은 되기 힘들어 보인다. 

〈작별〉 스틸컷

영화의 다른 한 축은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이들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들 때문에 살 곳을 잃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 중 일부가 그처럼 동물원에서 지낸다면, 저 바깥에 있는 동물들은 어떤가를 보는 것이다. 이미 많이 파괴되어버린 생태계에 그들의 터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인간에 의해 다친 동물들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구조자들은 인간의 손길과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흔적에 경이와 감동을 표현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논리 위에서 유지되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깊게 고민한다. 인간의 자리에서 동물을 위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카메라의 시선에 계속해서 걸리는 철창, 그렇게 철창을 걸고 바라보는 동물들의 눈빛은 우리에게 그러한 고민의 자리를 열어준다.

이 작업 이후 황윤 감독은 한때 한반도에 거주했으나 지금은 터전을 잃어버린 야생동물을 찾아 중국 연변, 두만강 유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위태롭고 처참한 야생동물의 현실을 목격했다. 역시 자본주의 시장 논리, 개발 논리와 떨어뜨릴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한 직시는 그 여정을 담은 <침묵의 숲>(2004)이라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작별>, <침묵의 숲>에 이어 야생동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국내 로드킬 실태를 담은 <어느날 그 길에서>(2006)이다. 

〈어느날 그 길에서〉 포스터

이 영화는 국내 영토의 너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매일 죽어가는 동물들과, 그 죽음을 조사하면서 로드킬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둘러싼 도로들은 야생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인위적으로 단절시켰고, 여기서 죽어간 동물들은 흙으로 되돌아가지 못해 생태계에 다시 포함되지 못하는 비참한 끝을 맞이한다. 동물들의 습성, 활동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 논리로 인해 거북이, 부엉이, 소쩍새, 고라니, 삵, 두꺼비와 같은 동물들이 차가운 도로 위에서 혹독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영화는 조사원들의 활동을 촬영하며 그들의 고민을 전해 들으면서, 영화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동물들의 입장과 시선을 재구성하며 그들의 공포와 절박함을 체감하려 노력한다. 30개월간의 끈질긴 조사 끝에 섬진강 변의 세 도로에서만 5769건의 로드킬을 목격했다는 정보는 우리에게 끝내 아찔한 절망감을 안긴다. 영화는 동물의 삶과 인간의 삶이 폭력적으로 만나는 장소에 끝내 버티고 서서 그 순간에도 사라져가는 생명에 절실하게 닿고자 한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그리고 2014년, 황윤 감독은 그간의 변화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작업 중에 만난 야생동물 수의사와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그는 엄마가 된다는 것, 좋은 먹거리를 찾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당시 한국을 강타한 구제역과 살처분의 현장 속에서 감독은 자신에게 익숙한 카메라를 매개로 돼지라는 동물을 만난다. 처참한 살처분의 현장, 그리고 마치 지옥의 문을 열어버린 것 같은 공장식 축산의 광경을 보고 돌아온 그는 그것을 자신의 삶 속의 문제로 끌어안고 카메라와 더불어 돼지와 만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공장식이 아니라 오래된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수소문하고, 돈가스나 삼겹살처럼 마트와 식당에서 마주치는 고기뿐 아니라 가공식품의 첨가물까지 고려하여 육식을 그만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모순과 갈등의 과정이다. 대안적이라고 생각했던 농장 또한 결국은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시장의 논리와 법칙에 겹쳐질 수밖에 없고, 나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식사를 고민하는 과정은 덜컹거림의 연속이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컷

그런 중에서도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돼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특히 인상적이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자 고민 많은 양육자로서, 동물을 사랑하고 꾸준히 관심을 갖는 개인으로서, 그는 공장과 농장에서 평생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어미 돼지의 몸과 눈을 자주 바라본다. 푹신한 지푸라기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농장의 돼지가 출산하는 순간은 신비롭기까지 한데, 새끼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젖을 무는 대신 어미의 얼굴로 가 인사를 나눈다. 끊임없는 인공 수정으로 아기 돼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식 축산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감독은 스톨에 갇히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토로한다. 몸으로 만나고 몸으로 느끼기, 정돈된 문제의식에 앞서는 몸의 공감이 영화의 토대가 된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컷

스톨에 갇힌 돼지들의 모습은 꼼짝없이 좁은 철제 닭장에 갇혀 달걀을 낳는 닭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과 결부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조류독감,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감염병의 문제까지 영화는 담고 있다. 비윤리적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들, 동물원 속의 동물들, 도로를 건너다닐 수밖에 없는 야생동물들.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우선은 현실적인 대안과 타협 아닌 타협이 필요하겠지만, 황윤의 카메라는 타협이 불가한 지점, 절대적인 그 지점을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동물들의 구체적인 몸을 응시하면서, 동물원의 논리와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말을 찾는 사육사와 자원봉사자들, 잡식동물로서 자신에게는 먹을 것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며 육식에 대해 고민하자는 아내를 내심 불편해하면서도 먹거리와 공장식 이슈에 관한 비판을 거침없이 내놓는 남편의 이야기를 자신의 여정에 정확하게 담아낸다. 그렇게 영화에 고이는 고민들은 논리 대 논리의 싸움보다 더 넓은 지평을 향해있다. 정확하게 답을 내리는 대신 흔들림과 불안과 갈등이 달라붙은 고민을 다시 공동체에 되돌려주는 것, 황윤 감독의 영화가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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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영화웹진 리버스 필진,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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