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One and Only, 크리스틴 최, 우리들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
김승희|영화감독 / 2019-12-26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Legal Smuggling with Christine Choy) 루위 클로스터|2016|다큐멘터리|미국|4분 |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 스틸컷 ©다음
연재를 제안받고 ‘드디어!’라고 생각했다. 몇 년간 해외 영화제에 작품이 상영되기도 하고 때론 감독으로 참석하면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느낄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 나는 나였지만, 해외에서 나는 사라지고 때론 한국도 지워진다. 오로지 두 단어, 아시아와 여성만이 남는다.
해외 영화제 경쟁작 리스트에 제작국가가 아시아인 작품의 수가 5개 미만인 경우가 허다하다. 때론 아시아 작품이 하나도 뽑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 나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아시아 여성 감독의 작품이나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을 소개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대망의 첫 작품은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Legal Smuggling with Christine Choy, 루위 클로스터, 2016)다. 제목에 있는 크리스틴 초이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유독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누군지 몰라도 우선 ‘최씨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호기심을 좀 더 자극하기 위한 설명을 하자면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는 2017년 선댄스 단편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오른 뒤 수많은 영화제에 소개되고 지난 3월 비메오 스태프 픽(Vimeo Staff Picks)에 선정돼 전 세계에서 많은 관심을 얻은 작품이다(비메오 스태프 픽 채널은 비메오 큐레이션 팀이 비메오에 올라오는 영상들 중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택해 선보이는 채널이다).
각본을 쓴 크리스틴 최는 1989년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오스카에 이름을 올린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이다. 그 후 사회적 권력에 의해 지워지는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를 스크린 위에 드러내고자 전투적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좀 더 짧게 핵심을 말하자면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엄청 유명한 감독이다.
<리걸 스머글링 위드 크리스틴 초이> 영상 캡처
영화는 시끄러운 도시 소음과 담배 그리고 허스키한 크리스틴 최의 목소리로 문을 연다. 그는 말한다. “My name is Christine Choy, a mo-dern filmmaker”. 이 작품에선 ‘아시아 여성’이라는 틀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크리스틴 최라는 ‘사람’이 전면에 나온다. 이 작품의 감독은 클로스터 형제이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크리스틴 최 이외의 다른 누구도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크레딧의 첫 번째 줄을 차지하는 것 역시 그의 이름이다.
그의 쿨한 면모는 작품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마릴린 먼로나 오드리 햅번 같은 무비스타처럼 되기 위해 하이힐을 신거나 꽉 끼는 브래지어를 입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이 우러러볼 아시아계 무비스타가 없다며 담배만 피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도박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아티스트란 늘 도박을 하는 셈이지’라는 대사를 작품 끝에 던진다. 영화의 중심 테마인 그의 시가렛 어드벤쳐를 보고 나면 반드시 ‘입덕’하게 되니 꼭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시아 여성을 그리는 수많은 작품을 보다 보면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큰 카테고리가 개인의 정체성을 덮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인종과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그녀가 워낙 유명하기에 이런 관점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녀를 초청한 어떤 강연에서는 그녀를 ‘One and only’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One and only’다. 아시아 여성들이 가진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가 앞으로 스크린 위에서 더욱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첫 번째로 소개해본다.
*비메오에서 ‘Legal Smuggling with Christine Choy’를 검색하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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