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WDN 여성감독 작업노트] 퀴어픽션영화 혹은 퀴어실험영화 만들기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 홍지영 감독
퍼플레이 / 2024-11-29
여성감독네트워크 WDN에서 지난 11월 9일 케이스 스터디 <여성감독 작업노트>를 진행했습니다. 감독의 발표 이후 대담과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생생한 제작 스토리와 실질적인 꿀팁을 나눴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퍼플레이의 협력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글로 함께 만나보시죠 :) |
<여성감독 작업노트: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영화만들기 A-Z> -일시: 2024.11.9.(토) 오후 1~5시 -장소: 신촌 스페이스유엠 -발표: 홍지영 감독 -모더레이터: 이채민 감독 |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는 댄스 필름이었다. 당시 ‘퀴어 이모션’이라는 프로젝트로 시작되었고, 퀴어-감정과 퀴어-움직임을 댄스필름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는 이것을 확장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를 완성하고 장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러티브를 확장하고 싶었다.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무의도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관광지 안내판에서 ‘무의도’라는 이름의 탄생 설화를 보게 되었다. 춤을 잘 추는 선녀가 자매들의 질투와 시샘으로 어떤 섬으로 쫓겨났다가 호랑이가 처녀 제물을 찾고 있는 것을 알고 호랑이 앞에서 춤을 추었는데 호랑이가 그 춤에 반해서 마을을 떠났고, 그때부터 무의도라고 불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보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성애 규범적인 이야기가 버려진 공간 같은 관광지에 만들어졌다는 그 느낌이 기묘했다. 뭔가 이성애 규범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것을 느끼는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이야기가, 그들이 그 해안가를 걷고 있는 모습과 풍경들의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졌다. 유토피아를 찾지만 찾을 수 없고, 벗어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기다리는 그런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고, 그러다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라는 책에서, “퀴어 느낌”이라는 장에서 비존재와 실패라는 키워드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파도가 주는 느낌이 나에겐 ‘실패’로 느껴졌다. 그런 이미지들이 합쳐져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를 기획하게 됐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에는 춤추고 화면이 일그러지는데 시를 읊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에서는 시를 이야기로 바꿨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는 후반에서 픽셀화, 장노출로 흔들린 사진, 오버레이, 글리치 등을 이용했다면,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에선 6mm 캠코더로 촬영했고, 아이폰 10배 줌을 한 다음 연속 촬영을 하거나, 극단적인 줌, 캠코더 자체 내의 디지털 줌을 이용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 스틸컷 모음 ©WDN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 스틸컷 모음 ©WDN
실험영화?
나는 실험영화나 극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항상 영화제에 출품할 때나 플랫폼에 올릴 때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선택지가 없거나 두 개 이상 선택할 수 없게 되면 조금 난감하다. 처음 영화학교를 간 건 극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긴 했다. 지금에서야 영화학교를 안 가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만 해도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영화 현장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는 재밌었지만 내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까 그때부터 고민이 됐다. 학교에서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항상 기승전결도 없는 영화라는 평을 듣고 영화를 찍는 순간까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소리와 ‘이런 영화 왜 찍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일단은 밀고 갔다. 그런 부분에서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는 일종의 기회가 됐다. 댄스필름이라는 접근이 있었고, 시스템 밖에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당시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영화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보니 그 환경 안에서 뭔가 하기 위해선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꼭 이렇게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자유가 주어졌다고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실험적인 방식으로 만들게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제작 방식에서 실험적인 접근을 했지만, 나는 픽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이 퀴어 영화와 규범성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변방의 영화, 규범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려고 대안을 모색하다 보니 이렇게 실험영화가 된 것 같다.
퀴어 픽션 영화?
퀴어하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한 상상, 이상한 상상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실험적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주류적인 것에 스며들면서 그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퀴어영화들이 있다면 나는 외연을 확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실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픽션이라는 것 자체, 상상을 펼치는 도구로서의 영화가 퀴어와 좀 맞닿게 되는 것 같다.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에서 ‘우리는 실패자 혹은 허구의 동물’이라고 퀴어를 호명하는데, 퀴어는 어떻게 보면 규범에 실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애 규범에 실패하는 것, 즉, 그것을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규범이라는 것도 일종의 짜여진 각본이라고들 얘기한다. 그 부분이 내가 말하는 상상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다른 각본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픽션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규범을 반복하지 않고, (퀴어한) 실패를 반복하면 규범적인 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틈이 생기고, 모든 것이 다르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평평하게 보기 1 - 모래 풀 사람
어떤 것도 주인공으로 놓지 않고 오히려 평평하게 보이게 하는 것, 모든 것을 다양하고 독특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사 없이 내레이션만 나온다. 그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지칭하는 인물이 영화 안에서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목소리의 주인도 누구인지 모르게 표현했다. 마치 버려진 나무나 풀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려고 했다. 평평하게 보는 시각에서 어떤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했고, 이미지적으로 두 사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래 인서트나 파도 이미지를 계속 등장시켰다. 사운드도 그 평평하게 보기의 일부로, 하나의 레이어로 표현하려고 했다. 두 여자가 모래 위에서 사랑을 나누다 잠드는 장면을 무용으로 표현한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의 사운드를 사운드 디자이너에게 ‘모래와 풀과 사람이 뒤섞인 느낌으로 표현해달라’, ‘사운드가 이들과 함께 있는 바람처럼 느껴지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배경 음악이 아닌 자연의 일부 같은 소리, 파도, 모래, 바람, 풀… 이런 키워드를 던져 주었다. 사운드 디자이너가 용케 알아듣고 알맞게 만들어주셨다.
평평하게 보기 2 - 움직이는 물체
배우들에게 인물이 아니라 물체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무언가 움직이는 존재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누더기 유령들도 나오고 무용수들도 나오는데, 여러 존재들이 레이어처럼 뒤섞이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고, 배우들에게는 연기가 아닌 움직임과 느낌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움직임이라고 해서 무용처럼 연출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지만 배우들에게 인물의 전사나 캐릭터를 설명하기보다는 시나리오를 함께 읽으며 표현하려는 느낌을 설명하고 그 느낌을 최대한 공유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배우 중 한 분에게는 ‘움직이는 사물이 되어 달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사용되는 거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때 되게 기뻤다.
평평하게 보기 3 - 지글지글
주류 영화에서 퀴어들은 보이지 않거나, 심도가 얕은 배경 뒤로 밀려나거나, 잠깐만 등장하거나, 분명한 연인임에도 친구로 패싱된다. 이런 현상은 시각적 위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위계를 없애는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디지털 저화질 작업을 선택했다.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는 6mm 캠코더로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과 다르게 화면을 이루는 단위가 그레인이 아니라 픽셀이다. 이 픽셀들은 저화질이 됐을 때 더 돋보이게 되고, 인상주의 회화의 붓터치처럼 보인다. 인상주의 회화도 기존의 원근법에서 벗어나 빛과 색을 강조한다. 저화질 디지털 카메라는 화소수와 색상수가 낮아서 뭉쳐져 보이고 경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원근감이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화면을 지글거리게 표현하려고 했다. 디지털 저화질은 평평하게 보이게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사운드 이미지도 지글거리게 하려고 했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을 MIDI로 다시 만들었고 오래된 아카이브 영상 속 공연 음악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화면과 소리를 지글거리게 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 스틸컷 ©WDN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 스틸컷 ©WDN
B열에서 영화 보기
나는 항상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특히 필름 영화를 볼 때는 화면의 그레인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물질에 압도되는 것, 얼굴이 가득 찬 클로즈업 화면, 요소들이 다 보이지도 않는데 압도되는 느낌들. 영화 표면의 물질성에 관심이 있었다. 고전영화나 필름 영화는 반드시 B열에서 보는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B열에서 영화를 감상하니 다른 경험이 되었다. 그레인이 보이지 않고, 물질성이 안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픽셀이 보였다. 지금의 4k와 같은 고화질의 영화 이전에, 디저털로 넘어오던 시기에 저예산 디지털 영화들을 B열에서 보면, 픽셀이 잘 보였다. 하얗게 날아간 부분들은 핑크색 픽셀 경계들까지 보였다. 지금의 IMAX 영화들은 아무리 가까이서 봐도 픽셀이 안 보이지만, 저화질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픽셀들이 일종의 그레인처럼 느껴졌고 그런 요소들이 재밌었던 것 같다. 그런 고민 안에서 디지털 물질성을 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영화가 저화질이 됐을 때, 시각적 위계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화질이 아닌 저화질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도 어플 이미지 ©WDN
이 이미지는 구글 지도(애플지도였을지도 모른다) 어플이 처음 생겼을 때 -뉴욕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맨해튼의 모습이 느리게 로딩되면서 나타난 이미지다. 당시 어플 구동이 느려서 그래픽이 로딩되는데 시간이 걸렸고 대기하면서 이 이미지가 재밌어서 화면 캡처했다. 카톡이 생겼을 때부터 아직까지 카톡 프사로 하고 있을 정도로 매료된 이미지다. 어떻게 보면 디스토피아 같기도 하고,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겨나는 이미지이다. 생성되는 이미지이지만 소멸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게 사실은 우리가 ‘실패’라고 말하는 것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냥 뭔가 다른 의미의 실패한 이미지 같았다. 이 안에는 죽은 것들이 아닌 많은 생성이 있는데 우리 세계 안에선 그것들이 다 가려지고, 무너진 것처럼 보이고, 소위 말하는 실패한 것들로 생각되는 것 같았고,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에 오랫동안 꽂혀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실패’라는 것이 막연하게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구조 안에서 실패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게 명확하게 무엇인지 찾진 못했다. 그러다가 『감정의 문화정치』와 에이드리언 리치의 『파도』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 ‘실패’는 성공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파도 같은 것이구나. 파도는 같은 모양으로 치지 않는다. 높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들이 마치 실패처럼 느껴지지만 변화하는 것이다. 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파도의 모습과 실패를 연결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을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로 지었다. 모든 것들이 다르게 되는, 생성하는 느낌이다.
나는 상상한다, 희망한다
퀴어 퍼레이드 속 강강술래 ©WDN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들려줄게> 속 강강술래 ©WDN
강강술래에는 소망을 담는다, 퀴어 퍼레이드에도 그런 희망과 소망과 분풀이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우와 영화를 만드는 모든 스태프들이 나와 같이 강강술래를 하면서 영화의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안 그래도 변방에 있는 퀴어 영화를 더 변방으로 끌고 가도 될까’라는 고민을 한다. 한편으로는 외연을 확장시키는 영화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변방을 넓혀가는 영화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퀴어의 퀴어-되기”라는 희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 모든 것이 다르게 되는 세계를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으로서 영화, 픽션으로서 영화가 나에게는 영화 만들기의 희망인 것 같다. 퀴어들이 변방으로 가게 되고, 더 퀴어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이런 것은 ‘여기에 없는’ 유토피아이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며 희망한다. 앞으로도 ‘실험’이 되었든 ‘극영화’가 되었든 픽션을 만들어내고 싶다. 상상하고 희망하며 더 퀴어하고 이상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채민 X 홍지영 감독 대담
이채민
감독님들 만날 때마다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영화를 시작하는 출발점과 영화가 끝난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 감독님께도 똑같이 여쭤보고 싶었다. 감독님 작품이 약간 단편을 베타 버전으로 출시하고 단편으로 실험한 다음에 연장선으로 장편으로 확장하는 느낌이 든다.
홍지영
베타 버전이라고 하기엔 좀 미안하지만, 단편으로 더 실험했던 것 같다. 이게 되는지 확인했던 것 같고 확신을 얻은 다음 장편으로 마무리를 했다. 최초의 출발점은 카톡 프사로 사용된 구글 지도 이미지였던 것 같다. 단편에서는 그 이미지 자체가 계기가 됐고, 이후 책과 시를 읽은 경험이 하나로 모였다. 장편의 경우 결정적인 계기는 무의도라는 장소였다. 단편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무의도를 거닐면서 두 인물이 떠올랐다.
이채민
감독님께서 장편 같은 후반작업을 직접 하셨다고 했고, 직접 하게 되면 계속 수정하게 되는데, 언제쯤 내 안에서 이 영화가 완성됐다는, 이것을 보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홍지영
그건 그냥 딱 아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알기보단 사운드 믹싱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한 프레임씩 만지고 색보정을 하고, ‘흠, 왠지 다 된 거 같은데?’ 생각을 하며 재생을 눌러서 다시 봤는데 ‘아 끝났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당연히 거기에는 마감이라는 게 걸려있었다, 마감이 없으면 절대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이채민
만드는 사람은 구체적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같이 작업을 하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혹시 스태프들하고 배우들에게 이미지 레퍼런스로 공유하는 게 있는지, 혹은 작품을 준비할 때 공유한 자료들이 있었는지.
홍지영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성도 있지만, 말보다는 레퍼런스가 전달이 잘될 때가 있다. 영화에 인용됐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와 로트렉의 그림들도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다. 영화는 특히 배우들에게는 비재현적인 움직임과 연기(퍼포먼스)로 이루어져있는 다니엘 위에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공동작업 영화들을 몇 편 보여줬었다. 스태프들에게 공유했던 건 뒤라스의 <아가타와 끝없는 독서>였는데 다 봤는지는 모르겠다. (웃음) 그 영화도 대사도 없고 사건이랄 것이 일어나지 않는데, 부분적으로 보여주며 이런 분위기라고 설득했다. 저화질 픽셀이 인상주의 회화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인상주의 회화를 많이 참고했다.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실제로 로트렉의 그림들과 마네의 그림 참고해서 구현했다.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잠든 두 여성 연인은 로트렉의 그림이다. 이 장면은 영화 중간에 똑같은 모습으로 잠든 두 연인(영진과 재연)으로 보여주었다.
홍지영 감독 ©WDN
홍지영
목소리는 영진과 재연을 역할을 한 두 배우였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대사(내레이션)는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식물1, 2로 되어있다. 인간적이지 않은 식물이나 파도의 시선과 감정이면서도 뭔가 영진과 재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퍼런스도 보여줬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인물을 연기한 배우 입장에선 인물의 감정을 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감정을 완전히 뺀 느낌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되는 부분들은 조금 더 건조하게 낭독을 해달라고 한다든지, 감정을 조금 빼달라고 하는 식으로 부분적으로 다 조절했다. 너는 영진이 아니다, 식물이고, 이 식물이 얘네를 보고 있고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해달라고 했다. 누군가 이들의 이야기를 얘기하듯, 나무토막이 됐다고 생각해달라고 계속 얘기했다. 그래서 녹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채민
실험 영화라는 이름 앞에 퀴어가 붙었다. 주류와 비주류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건 아니지만 굳이 나눠본다면, 퀴어와 실험까지 붙어서 더 멀어졌다, 게다가 장편으로 제작되었다. 감독님 본인은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지만 관객과도 멀어질 수 있지 않나. 퀴어, 실험, 장편 이 세 가지가 붙었을 때 시스템에서 발생한 실패도 있을 것 같다.
홍지영
시스템에서 많이 실패한 것 같다. 영화제에 출품할 때 장르를 실험으로 체크해서 내는 것과 극영화로 체크해서 내는 것이 심사의 방향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런 데서 오는 고민 안에서 잘못 선택해서 온 실패들도 있는 것 같다. 장르 이름을 극영화로 써냈는데, 상영했을 때 극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당혹스러워 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퀴어와 실험이 만나면서 더욱더 그러는 것 같다. 퀴어의 사회에서의 문제나 사랑의 문제를 파고드는 일반적인 퀴어 영화와 다르게 이런(나의 영화) 이야기는 그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일부 반응에 ‘이게 퀴어 영화냐’는 반응이 있기도 했다. 물론 나도 구체적인 퀴어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관객들의 이 반응이 이해된다. 어쨌든 같은 퀴어 영화여도 낯선 방식이어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험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수용한 분들이 더 많긴 했지만 그런 경우들이 있었다.
현장 사진 ©WDN
이채민
<이 모든 것이 다르게 될 때까지>는 감독님의 단편 제목이자 장편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의 마지막 대사이다. 이게 사랑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마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마음을 가지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거나 구상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홍지영
나는 ‘모든 것이 다르게 되는’ 세상을 상상한다. 그것이 퀴어들도 더 퀴어하게 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유토피아처럼 이 세상에 없는 것, 오지 않을 것이겠지만, 희망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12월에 전시를 하게 됐다, 다른 작가와 공동작업으로 하는 전시가 있는데 무빙 이미지에 대한 미디어 전시이다. 전시 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시작할 계획이다. 두 여자가 밤에 여행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이 파도>보다는 내러티브가 분명하고, 내레이션으로만 되지 않는, 대사가 조금 있고, 덜 실험적일 수 있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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