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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특유의’라는 수식으로 막을 수 없는 정치로의 유영
송아름|영화평론가 / 2019-12-16
너무 쉽고 편하게 하는 말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한한다. 그것 ‘특유의 무엇’이라는 수식어들에는 ‘그것’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상정하는 몇 안 되는 특징들이 ‘그것’의 전체를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던지는 이 말들에는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라는 ‘상식’이라는 단어가 쉽게 스미며 널리 통용된다. 기준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그것 ‘답지 않게 어떠한’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워 ‘그렇기에 독특하다’라는 말로 결론 내면 그만이다.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 없음에도 굳이 정해놓은 기준들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쉽게 재단하고, 삭제하고, 줄 세운다. 이러한 독해들은 매우 게으른 방식이지만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우 수월하게 평가도 편 가르기도 가능한 방법이니 말이다.
가령, 어떤 감독의 영화에 대해 ‘○○ 특유의 섬세한 시각’이라는 수식이 붙은 기사를 보았을 때, 너무도 쉽게 이 ○○을 채울 키워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바로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섬세함’을 ○○과 짝지은 결과일 것이다. 특별한 고민 없이 채울 수 있는 이 빈칸에 대해 과연 그러한가, 혹은 그 이상은 없는가 등과 관련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매우 편안하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이 방식은 옛날 옛적부터 내려온 ‘그러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영역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섬세한’이라는 수식어는 대체로 ‘소소한’ ‘예민한’ ‘민감한’ 등의 말들과 동류항에 놓이며 ○○의 특징들을 규정한다. 맞다. 쉽게 끼워 넣었을 빈칸은 ‘여성’으로 채워져 왔다.
<밤의 문이 열린다> 포스터
올해 주목할 만한 작품들 대부분이 한국 영화계의 극소수인 여성 감독들의 연출작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면서 상당한 기사들과 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우리집>(윤가은), <벌새>(김보라), <메기>(이옥섭), <아워바디>(한가람) 그리고 <82년생 김지영>(김도영)까지 대체로 첫 장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감독들은 분명 화제와 관심의 중심에 섰지만 그들의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는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이는 어떤 작품이 어떤 상을 얼마나 받았는가 또는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가의 문제가 아닌, 작품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과연 얼마나 고민하며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가, 혹시 미리 결정짓고 그것에 맞춰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과 맞닿는 것이다.
<우리집> 스틸컷
이 작품들에 대한 기사들과 여기저기 난무하는 평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위의, 그러니까 섬세하고 예민하고 민감한 시선, 혹은 소소한 이야기라는 수식어가 과도하게 흩어져 있다. 아마도 이는 아이들 또는 한두 명의 여성에 집중하고 있는 이 이야기들을 가리키는 말로 적절하다고 ‘믿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수식들이 영화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더 나아가서는 여성 감독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 전반을 매우 좁은 범위로 몰아넣고 설명하는 데에 기능한다는 점이다. ‘여성 특유의 무엇’으로 결정되어버린 그 특징은 이 영화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흔히들 얘기하는 영화적이면서 강렬한 사건과는 거리를 둔, 정적이고 조용한, 그러니까 여성들의 민감함으로 포착하여 예민한 이들이 아니라면 공감할 수 없는 영화들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물론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위의 나열된 영화들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대단한 사건(사실 이 ‘대단한 사건’이라는 것도 모호한 말이지만 어쨌든 자극적이랄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지지도, 현란한 무엇이 난무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상황을 바라보고, 그것을 생각하고, 그에 반응하는 이들의 모습이 영화 전체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을 섬세하다거나 잔잔하다는 말로 섣불리 결론 내리는 것은 이 영화들이 그러한 표현을 통해 무엇을 설명하려 했는가, 라는 질문을 삭제한다.
<벌새> 스틸컷
<메기> 스틸컷
여성 영화의 특징이라 믿는 수식들이 출발이자 도착점이 되는 순간, 이 영화들은 그러한 표현이 특징인 영화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며 그저 조용하고 정적인 영화들을 섬세하다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여성 영화라는 것과 같은 순환 속에 머무를 뿐이다. 이 영화들이 선택한 방식들은 단지 여성이 많이 등장했다거나 주인공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과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어야 하고, 과하게 놀라거나 소리지(르는 것이 맞)고, 눈물로 현실의 대면과 멀어지(고 싶어한다)는 오해 속의 여성 인물군과 거리를 두면서 일상을 살며, 그곳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상황으로 여성들의 ‘정치’와 ‘역사’를 표현하는 것에 도달해 있다. 바로 이 점을 보여줄 수 있는 순간들로 선택된 표현을 단지 예민하다거나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퉁 치는 것’은 이러한 인물들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변화,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
촌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정치와 역사라는 것은 매우 직관적으로 표현돼야 한다는 믿음이 (다소 일반적으로 사회 전체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말하지 않거나 조용히 생각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치와 역사의 문제를 간과한다. 내가 가졌던 수많은 불안과 죄책감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강요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가 겪었던 폭력들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길들여져 온 이들의 가해라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때, 이 영화들은 인물이 잠시간의 충격 그리고 그 발견으로 잠시의 정적과 휴지(休止)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로 인해 그들을 스치는 바람과 햇살이 머무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저 드러낼 뿐이다. 그들이 겪었을 모든 정치적 사건들과 역사적인 교차들은, 정치인이나 정치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나 사건이 아닌 그것을 차차 깨달아가는 아이와 소녀와 여성을 통해 그렇게 스크린에 머물렀던 것이다.
<아워 바디> 스틸컷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영화 속 인물들이 멍하니 엄마를 바라볼 때, 혹은 천천히 고집스레 달릴 때, 자신들의 논리로 다툼을 이어갈 때 그 순간들은 조용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들리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고 들리게 만들면서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관객들은 인물들이 느꼈을 바로 그 감정을 함께 느끼며 나의 경험을, 나의 유년을, 내가 겪은 폭력을 생각하고 말할 용기를 얻는 그 자체로 정치의 영역에 뛰어들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여성 감독, 여성 영화, 여성 서사가 싫다고, 혹은 관심 밖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포착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 스며듦에 대한 공포로 인해 거부하려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여성 영화로 언급되는 영화들의 섬세함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라기보다 체득한 정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해 주목받은 이 영화들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여성 영화가 여성들을 늘 피해자처럼 그리고 있기에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알리바이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 있다. 올해 여성 감독의 영화들은 유쾌하게 혹은 익숙하게 살아왔던 우리의 삶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늘 꽂혀 있던 화살들을 조심스레 뽑아 그 상처와 흐르는 피, 뽑아내 버려질 화살까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은 그것이 버려질 때가 언제인지 혹은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버려질 곳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적어도 공감하는 이들에게는 서로를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여성 감독들의 ‘폭력을 뺀 섬세한’ 정치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 거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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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시네마 크리티크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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