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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안부묻기] ‘나’ 때문에 힘든 여자들

<잘돼가? 무엇이든> <아랫집>

손시내|영화평론가 / 2020-09-03


“잘 지내고 있나요?” 손시내 평론가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해 건네는 따스한 인사. 오래된 앨범을 넘겨보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영화와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잊고 있었던 혹은 기억해야 할 이름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여성’과 ‘영화’를 오가는 이야기들 사이 사이 손시내 평론가가 전하는 ‘안녕’들을 포착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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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스틸컷

〈잘돼가? 무엇이든〉(2004)의 주인공 지영(최희진)은 옷 속에 제법 큰 칼을 품고 다닌다. 그리고 사람 많은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누군가에게 부딪혀 상처를 입는다. 지영은 피를 흘리며 소리친다. “사람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치고 지나가요?” 하지만 들려오는 말은 이렇다. “누가 그런 칼을 옷 속에 넣고 다니래?” 치고 지나간 사람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애초에 칼을 품고 다닌 사람이 잘못인 걸까? 쉽게 답할 순 없는 질문이지만, 지금 여기서 상처를 입은 건 다름 아닌 지영,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도 지영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건 물론 꿈속 장면이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지영은 맡은 일을 꼼꼼하게 잘 해내며 회사생활을 이어가고는 있으나, 안 더러운 놈이 하나도 없고 다들 뒤통수나 치는 이따위 세상에서 언젠가는 회사를 박차고 나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지영이 세상을 버티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칼을 품고 다닌다는 비유적 표현이 왜 꿈을 통해서나마 실제로 형상화되어야 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정말로, 지영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비밀은 없다〉 스틸컷

돌이켜보면 이경미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칼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칼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도, 어떻게 제대로 갈아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 칼은 예쁘지도 않고 실은 썩 유용하지도 않아 보인다. 자칫하면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할 칼이지만 그들은 일단 그걸 품고 있다.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내 손에 쥔 칼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방식에 모르는 척 따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경미의 영화를 떠올릴 때, 독특한 여성 캐릭터나 특이한 상상력들 사이로 상처나 피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생각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게 몸에 남은 상처이건 마음에 남은 상처이건, 아무튼 그들은 자기가 품은 칼 때문에 도리어 다치고 피도 흘린다.

〈아랫집〉(2017)의 406호 여자(이영애)는 고백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전 저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또는 〈비밀은 없다〉(2015)의 연홍(손예진)이 자신 외엔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자기 손등을 가위로 푹 찍어버리는 장면을 상기할 수도 있겠다. 이경미의 영화는 그처럼 자기에게까지 향해오는 괴이한 힘을 믿고 끝까지 나아간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은 제각기 다르지만, 여하간 인물들이 품은 힘, 또는 칼은 마지막까지 무뎌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이야기되었던 두 편의 장편 〈미쓰 홍당무〉(2008)와 〈비밀은 없다〉 대신, 시기 순으로 보자면 그 앞, 뒤로 놓여있는 두 단편을 중심으로 이경미 감독의 영화 세계, 그 안의 인물들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잘돼가? 무엇이든〉 스틸컷

〈잘돼가? 무엇이든〉은 2004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차례로 수상하며 주목받은 단편영화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지영과 희진(서영주), 두 여성 캐릭터다.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의 동료직원 사이인 둘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절박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무심하다. 사장이 자료를 조작하라고 시켜도 무조건 열심이고 남의 영역도 제멋대로 침범하고 말아버리는 희진, 그리고 그런 희진을 못마땅해 하면서 세상을 냉소하는 지영. 영화는 딱히 두 사람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희진은 분명 선을 넘는 뻔뻔한 밉상이고, 그런 희진에게 날을 세우는 지영의 말에는 종종 미묘한 우월감이 묻어난다. 이경미 영화의 캐릭터가 강렬한 것은 단지 그들의 엉뚱한 행동이나 비호감이면서도 매력적인 면면 때문만은 아니다. 인물들의 성격, 태도, 말투, 행동 등은 대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하고 연마해왔을 무기와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이 지나왔을 시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보인다. 

이경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미성년의 시절을 통과한 여성, 조금 더 세게 말하자면 그 시절로부터 살아남아 어른이 된 여성이 각각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무기는 비록 공격보다는 그나마 방어에 능하고 그리 멋지지도 않고 심지어 때로는 어리석은 수단이기까지 하지만, 언제나 생존의 문제와 닿아있기에 일말의 공감과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지영의 적대심과 희진의 뻔뻔함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미쓰 홍당무〉에서 미숙(공효진)이 보여주는 착각과 강박,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켜내는 집요함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캐릭터를 구성하는 돌출적이고 특징적인 성격이면서, 그들이 구체적인 사회 속에서 터득한 일종의 무기다. 그것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세상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한다.

〈잘돼가? 무엇이든〉 스틸컷

지영과 희진에게 사장은 자료 조작을 지시하고, 둘은 그 업무를 위해 매번 야근을 한다. 지영에겐 아무리 봐도 탈세 같은데, 희진은 지영의 몫에까지 손대가며 열심이다. 와중에 사장은 지영을 따로 불러 야근 수당을 챙겨가는 게 누구인지 감시하라는 일까지 시킨다. 여기엔 분명 약자들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구조의 문제가 있지만, 영화는 곧장 그 구조를 거시적으로 환기하는 길로 가기보다는 반목의 지점에 더 세밀하게 밀착해보려 한다. 그러면서 거기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지영은 나 때문에 아프고 너 때문에 지치며 세상 때문에 힘들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새로운 관계가 피어난다. 그것은 기존의 틀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관계, 각자의 과하고도 부족한 면을 보존한 채 발걸음을 맞추는 그런 관계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과 종희(서우), 〈비밀은 없다〉의 연홍과 미옥(김소희)이 마지막에 이르러 도달하는 관계도 바로 그런 것이다. 〈잘돼가? 무엇이든〉의 마지막, 지영과 희진은 여전히 서로를 좀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냥 그런 채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 잘 될 거예요. 무엇이든”이라는 말과 함께, 버스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졸며 어스름한 세상을 향해 간다. 그들에게 또다시 상처와 시련을 줄 세상으로, 그렇지만 이번에는 함께 말이다.

〈아랫집〉 스틸컷

2017년 ‘전체관람가’(JTBC)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된 〈아랫집〉은 여러모로 이경미 감독의 전작을 좋아했던 관객들에게 반가움과 새로움을 안긴 작품이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축된 세계, 디테일하고 특이한 소품, 서늘한 얼굴을 하고 괴이한 행동을 하는 여성 캐릭터 등, ‘이경미 월드’가 응집되어 있으면서도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설정하는 면에서는 이전과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내용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고통받는 406호 여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종의 심리 드라마’라는 설명으로 간략히 요약되는데, 영화의 조각조각 아귀를 맞추려 하다 보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아랫집〉은 우리가 지영의 꿈 사례에서 한 번 보았듯, 세상을 버티는 인물의 감각이 형상화된 세계다. 

〈아랫집〉 스틸컷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우리는 406호 여자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인물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는 대신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딘가를 떠돌게 한다.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담배 연기가 실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이 질문은 ‘품속 칼’의 흥미로운 변주처럼 들린다. 여자는 그 미로 같은 질문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정중하고 절박하게 편지를 쓰고, 혼자 살지 않는 척하고, 수상한 종교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다잡는다. 영화는 그런 풍경들을 통해서, 지극히 내밀한 차원의 괴로움과 현실적인 차원의 불안을 동시에 환기한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와 (환기구와 하수구로 연결되어있는) ‘남’ 모두이다. 이 지점에서 〈아랫집〉은 손쉽게 교훈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신, 불화와 마찰의 지점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영화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엔 언제나 ‘나 자신’이 싫고 ‘나 자신’이 미운 감정이 스며있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것에 도취되지도 않으면서, 타인을 만나는 문제, 세상과 직면하는 문제를 풀어가려는 데에 이경미 감독 영화의 활력과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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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영화웹진 리버스 필진,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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