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아직 이름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크랙>
장영선|영화감독 / 2020-07-02
<크랙> 조던 스콧|2010|미스터리, 드라마|영국, 아일랜드, 스페인|104분|청소년관람불가 |
<크랙> 스틸컷
영화가 시작되면 숲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오래된 기숙학교와 호숫가의 나무 다이빙대가 보인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단 한 척의 작은 배에는 기숙학교의 학생이자 반장인 다이(주노 템플)와 미스 G라 불리는 그리븐 선생(에바 그린)이 타고 있다. 그리븐 선생을 바라보는 다이의 눈동자에는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정열적이고 설렘 가득한 감정이 담겨있고, 그리븐 선생은 그런 다이에게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건넨다. 선생이 피우던 담배를 나눠 피우며 선생과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제자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 게다가 그 선생이 아름다우면서도 박식하고, 다른 선생들이 가르치지 않는 특별한 것들을 가르친다면? 숲 속 기숙학교 안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다이가 그리븐 선생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크랙>(조던 스콧, 2009)은 1930년대의 영국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 학생들은 규율에 매여 있고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다.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들은 출처가 확실치 않으며 다소 자극적인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이 곳에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기약이 없고, 어느 정도는 이 곳 이외의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 정도 지났을 때, 이방인이 등장할 거라는 사실이 예고되고 그 사실은 익숙한 장르처럼 긴장감을 부여한다.
<크랙> 스틸컷
그렇게 등장한 이방인 피아마(마리아 발레르드)는 스페인 귀족의 딸로, 아름다운 소녀다. 피아마가 가진 모든 것들은 내부인들이 가진 속성과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다른 소녀들과는 달리 세계를 여행했고, 연애 경험도 있으며, 무엇보다 내부 규칙에 ‘양해를 구한다’는 말로 불복종한다. 규칙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기준’이 되어온 다이에게 그런 피아마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게다가 그리븐 선생이 운영하는 다이빙 수업에서마저 피아마가 최고의 다이빙 실력을 선보여 그리븐 선생의 관심을 받자, 다이의 사랑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기숙학교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정된 사람들과 되풀이해서 만나며, 모든 기준과 평가가 내부에서 도출되는 일련의 상황은 한국의 학창시절과 상당 부분 비슷한 면을 보인다. 나는 1930년대에 살아본 사람도, 기숙학교를 다녀본 사람도 아니지만 <크랙>을 처음 봤을 때의 감상은 ‘저 영화에서 묘사되는 감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영화란 언제나 훌륭한 영화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를 퀴어영화라고 분류해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임이 있었는데, 그 망설임 자체가 하나의 화두가 될 거라는 생각에 퀴어영화라 분류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
<크랙> 스틸컷
앞서 사랑이라고 표현하였으나 다이의 감정은 다각도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븐 선생은 학교 안에서 특별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그리븐 선생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다이에게도 특정한 권력을 부여해준다. 다이는 분명 총명한 학생이지만 그리븐 선생의 인정이 없었다면 그만큼 돋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피아마가 완벽하게 다이빙을 해냈을 때, 다이가 세운 내부의 기준은 피아마의 다이빙으로 쉽게 대체된다. 그리븐 선생에 대한 다이의 감정은 자존감의 형성과 유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게 다이와 피아마가 대립각을 세우며 영화가 진행됐다면 영화의 결말은 뻔했을지도 모른다. 둘 외에 의외의 인물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데, 바로 그리븐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욕망’을 강조하며 다른 가치를 가르치고, 세계를 여행한 모험가이자 섹스 파트너를 가진 열린 사고의 여성으로서 기능하던 그는 이방인의 등장으로 인해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마주해야하는 입장에 놓인다.
<크랙> 스틸컷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리븐 선생을 의심하게 되는데, 그는 고작 빵을 사러 가는 일조차도 부담스러운 사람처럼 보인다. 가게에 들어가서 할 말을 몇 십 번이나 되뇌는가 하면 안절부절 못하다 동전을 떨어뜨리고선 그것을 주워주려는 타인을 뿌리치고 도망친다. 그런 사람이 세계를 모험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게 될 때쯤, 피아마는 그가 이야기하는 모험담의 핵심을 먼저 읊어버림으로써 그리븐의 모험담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였음을 모두의 앞에서 밝힌다.
그리븐의 세계는 허구로 꾸며져 있었으며 그 허구의 세계는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었다. 그 세계가 피아마로 인해 깨질 위기에 놓였을 때, 그리븐은 피아마를 적으로 돌리는 대신 그와 한 편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피아마는 그리븐에게도, 그리븐의 규칙들에도 관심이 없다. 결국 그리븐의 갈 곳 없는 욕망은 잘못된 형태로 발현되다가 파국을 맞는다.
<크랙> 스틸컷
앞서 말했듯 나는 이 영화를 퀴어영화로 분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여성들 간의 성애 장면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퀴어영화의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여학생들의 기숙학교 이야기, 흔히들 말하는 ‘백합’ 설정을 가졌으므로 퀴어영화라고 분류해도 될 것인가? 그러나 <크랙>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어슷하게 빗나가는 영화다. 여성들 간의 성애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 장면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범죄의 영역에 더 가깝다. ‘백합’ 콘텐츠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토닉 애정의 감정보다는 극단적인 욕망에 휘말린 인물들이 서로를 극한까지 몰아가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퀴어영화로 분류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생성된 감정들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그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껏 소년들 사이의 감정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을 보아왔다. 그들 사이의 감정은 대부분 남성들 간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유래하여 서열과 권력, 폭력 사이를 오간다.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이전과 달라진 인물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크랙> 스틸컷
<크랙>의 다이 역시 그런 결말을 맞는다. 그는 친구들과 학교를 벗어나 직접 그린 지도를 들고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그는 성장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쉽게 성장영화라고 부르기엔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한 감정은 그것만의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까지의 영화들에 대한 학습을 기반으로 한 ‘다각도의 해석’ 대신 그 감정들의 흐름에 맞춘 장르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아쉬움을, <크랙>을 퀴어영화라고 분류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런 영화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 때는 아마 또 다른 우리만의, 다른 종류의 방식으로 <크랙> 속 감정들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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