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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90-00: 언니들의 영화] ➀전환을 이끌었던 여자들
1990년대-2000년대 한국영화와 여성영화인
손희정|문화평론가 / 2020-05-07
< ZOOM IN >에서는 여성 영화, 감독, 배우, 캐릭터 등을 퍼줌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
[90-00: 언니들의 영화] 글 보러가기 ➁짧고 강렬한, 영화: 1990년대-2000년대 독립단편이 선보인 여성 서사 ➂전환기의 시대정신: 1990년대-2000년대 중반 시네페미니즘의 흐름 |
박남옥 감독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기였다. 이 시기에 공이냐 과냐로 단순하게 평가되기 어려운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한국영화 신(新) 르네상스기를 이끌었던 여성 영화인, 여성영화 그리고 여성영화 담론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시기 여성 감독 단편선을 선보이고 있는 ‘퍼플레이’와 ‘퍼줌’이 활발한 담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객이거나 연기자거나: 여성들이 한국영화를 만나온 방법
2019년, 한국사회는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성들은 한국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
1996년 임순례 감독이 <세 친구>로 장편 데뷔를 할 때까지 한국영화사에 기록된 (개봉 영화 기준) 여성 감독은 단지 다섯 명에 불과했다. 1955년 <미망인>을 발표했던 대한민국 첫 여성 감독 박남옥을 시작으로 <여판사>(1962)의 홍은원, <민며느리>(1962)의 최은희, <첫경험>(1970)의 황혜미, 그리고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로 입봉한 이후 <영심이>(1990) 등의 청춘영화로 주목을 끌었던 이미례가 그 기록의 전부다.
그렇다고 다른 파트에 여성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영화 안팎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여성 영화인, 여성 관객 그리고 여성재현의 역사를 정리한 <여성영화인사전>(2001)을 마무리하면서 영화학자 주진숙은 “1980년대까지 여성영 화인의 대다수는 여성 연기자들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한국영화산업에서 여성은 대체로 관객이거나 연기자의 자리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는 물론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지만, 그 역할이 한정되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영심이> 스틸컷
이처럼 지독하게 남초 집단이었던 한국영화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였다. 1985년 영화법 5차 개정안에 따라 영화시장이 자유화되고 1987년 정치적으로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되자, 영화산업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삼성·대우·SK 등 대기업이 영상산업에 눈을 돌렸고, 젊은 영화 인력이 충무로로 유입됐다. 그러면서 영화계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영화를 제작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한국영화를 할리우드처럼 ‘산업화’하려는 움직임이 싹튼다. 영화를 정확하게 ‘상품’으로 보고 주요 소비자층을 설정해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유통하는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획영화’ 시대가 열렸다.
이와 함께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고, 여성들이 기획과 홍보 분야를 중심으로 영화산업에 진입한다. ‘문화의 시대’이기도 했던 1990년대는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올라가고 기업이 유연한 노동력으로서 고학력 여성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던 때이기도 했다. 자기 지갑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훈련 받은 여성들이 대중문화산업의 소비주체로 부각됐다. 1990년대 한국영화를 주름잡았던 로맨틱 코미디는 이처럼 제작과 소비, 양방향에서 일어난 변화와 함께 부상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여성 소비자와 그런 트렌드를 잘 포착하는 여성 기획자가 만난 자리에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성과 사랑, 그리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한국형 로코의 관습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마누라 죽이기> 스틸컷
90년대식 로코의 대표작 중 한 편이었던 <마누라 죽이기>(1994)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는 영화사 바지사장 박봉수(박중훈)와 실세 기획실장 장소영(최진실)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다루고 있다. 소영은 제작 중인 작품의 편집권을 놓고 대중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리타분한 남자 동료들과 갈등을 겪던 중 이렇게 외친다. “여성영화로 가요. 남자 (관객) 한 명도 안 와도 돼요. 손님 들고 안 들고는 기획자인 내가 책임져요.” 소영 캐릭터는 당시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여성 기획자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사는 여성 영화인과 여성영화 관객 사이에 펼쳐진 상호작용의 결과로 열린 1990년대를 잘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후 30년 간, 여성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산업의 드라마틱한 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첫사랑> 스틸컷
기획영화의 시대와 여성 제작자들
일단 문턱을 넘어서자, 여성들의 영화산업으로의 진출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여성 영화인의 양적, 질적 팽창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2001년 ‘여성영화인모임’ 결성을 꼽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터다. 주진숙 당시 중앙대 교수,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를 공동준비위원장으로, 심재명 명필름 대표, 김미희 좋은영화 대표, 임순례·변영주 감독, 김윤희 촬영감독, 유지나 동국대 교수, 배우 장미희·방은진 등 33인의 준비위원이 단체 결성 과정에 함께 했다. 준비위는 “각 분야 전문인력 4백여 명을 포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도 채윤희, 심재명은 특히 주목할 만한 우리 시대의 영화인들이다.
지난 20년 간 여성영화인모임 대표직을 수행해 온 채윤희는 “그의 모든 순간이 한국영화계 홍보마케팅의 최초였다”(이화정)는 평가를 받는다. 5차영화법 개정으로 누구나 영화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던 1980년대 말, 그는 양전흥업과 삼호필름을 거치면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첫사랑>(1993) 같은 영화의 홍보 마케팅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1994년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 홍보마케팅 회사 ‘올댓시네마’를 설립한다. 올댓시네마의 첫 홍보작이었던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컬러 오브 나이트>는 영화 마케팅의 전설로 남아있다. 1994년 할리우드에서 ‘그해 최악의 영화’로 꼽혔던 영화를 “지금 새로운 자극이 시작됐다!”는 카피로 국내에서 성공시켰던 것이다. 이는 영화산업에서 홍보 마케팅의 중요성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후로 <쉬리>(1998), <매트릭스>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 대작들의 홍보마케팅을 맡았고, 개업 25주년을 맞이한 2019년까지 ‘올댓시네마’가 한국사회에 알린 작품 수는 500여 편에 달한다.
<접속> 스틸컷
#영화계_내_성폭력과 #미투 이후 2018년 설립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초대공동센터장을 역임한 심재명 역시 한국영화 신 르네상스기를 이끌어온 기수다. 1980년대 말 합동영화사(서울극장) 기획실의 카피라이터로 영화경력을 시작한 심재명은 1992년 개봉하면서 한국 기획영화의 시작을 알렸던 <결혼 이야기>(김의석)의 홍보를 맡았다. 합동영화사 시절 “미스심”으로 불렸다는 그는 이후 ‘명필름’을 설립하고 “심대표”가 된다. <조용한 가족>(1998), <접속>(19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영화사에 남는 히트작을 비롯해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버스, 정류장>(2001), <질투는 나의 힘>(200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파주>(2009), <카트>(2014) 등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여성 감독 작품들을 기획했고, <바람난 가족>(2003), <아이 캔 스피크>(2017), <나의 특별한 형제>(2018)와 같은 새로운 여성캐릭터를 선보이는 작품과 <박화영>(2018) 등의 작은 영화 제작에도 기여했다.
2016년 즈음, 한 여성 프로듀서가 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계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었다. 1990년대 이후 홍보 마케팅과 기획, 제작의 영역에서 여성들이 비교적 평등하게 활동한 것은 사실이라고들 평가한다. 영화계의 다른 분야에 비해 능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능력으로 불평등한 구조를 돌파해낸 뛰어난 개인은 구조적 차별보다는 자신의 성취에 주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특출한 여성 개인만이 살아남는 현실이 이미 차별을 증명하며, 심지어 한정된 분야에서만 그렇다면 영화계 전반의 평등을 말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이 글에서 채윤희, 심재명을 소개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뛰어난 인물이라고 해서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며, 여성영화 인력 양성, 평등한 영화제도 정착, 영화계 성평등 문화 확산 등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 선구자들. 기록하여, 기억할 만하지 않은가.
<우중산책> 스틸컷
다음 글에서: 단편영화 붐과 차세대 여성 감독들의 등장
여성 기획자들의 성장과 함께, 천천히. 연출의 영역에서도 여성 감독들의 활동이 움트기 시작했다. 여성 감독들 등장의 배경에는 90년대에 확장되기 시작한 단편영화의 장이 있었다. 제 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중산책>으로 대상을 받은 후 1996년 <세 친구>를 내놓은 임순례를 비롯하여 박찬옥, 장희선, 정재은 등 여러 감독들의 단편이 서울여성영화제 등의 영화제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1990년대 단편독립영화의 급진적 발전이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여성 감독들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90년대의 의미 있는 사건”(주진숙)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시기 주목할 만한 여성 감독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의 단편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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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주진숙·장미희·변재란, <여성영화인사전>, 도서출판소도, 2001.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엮음, <한국영화 100년 100경>, 돌베개, 2019.
-이화정,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모든 순간이 한국영화계 홍보마케팅의 최초”, 《씨네21》, 2019.07.11.
-손희정, “<가족의 탄생>-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채 한집살이… 대안 가족의 진화”, 《세계일보》,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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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다시, 쓰는, 세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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