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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

<푸르른 날에>

유자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당시 찍힌 사진은 지워질 뻔했던 여성에 대한 남성과 국가의 폭력을 하나의 이미지로 또렷이 기록해냈고, 그렇게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일방직 사건을 다룬 해당 작품 역시 사진을 배우는 여공들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폭력 그 자체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모욕적인 사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 개개인에 집중하고 그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노동운동과 민주화 한복판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그 사건을 기억해낸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위하여

<디서비디언스>

장영선|영화감독

에스티는 말한다. 자신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인 세상에서 사는 나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곧 태어날 에스티의 아이는, 과연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까?

흐릿하고도 선명한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최민아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R=VD(Realization=Vivid Dream), 상승곡선 가자!”라는 자신들만의 주문으로 서로의 희망을 외치듯 그 반짝임이 현실에 가 닿기를, 그리고 지금의 날들이 지나더라도 이따금 그 주문을 꺼내어보며 또 다른 날들의 다짐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소녀들이여, 추락하는 것은 자유다 용기다

<폴링>

홍재희|영화감독

분신과도 같았던 아비의 죽음은 리디아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를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언어를 빼앗긴 리디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몸뿐이다. 리디아와 급우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말한다. 몸으로 저항한다. 여성이 신경증에 걸리는 이유는 자궁이라는 장기 탓이 아니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체제, 관습, 문화, 그 모든 것이 여성을, 여성의 목소리를,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인 것이다.

상처를 딛고 나아가기

<언프리티 영미>

유자

용기 내 랩을 함으로써 영미는 그동안 갇혀 있었던 상처의 터널에서 나오기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엔딩 장면에서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은 ‘Unpretty Young Mi’에서 ‘Unpretty Young Me’로 변한다. 바뀐 제목처럼 그는 더 이상 예쁘지 않은 영미가 아니다. 막 변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외모를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었던 예쁘지 않은 과거의 나와 작별한 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영화

<워터 릴리스>

장영선|영화감독

영화의 세계에서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공감하려 애쓰며 열차와 열차의 이음새에 서서 배회했다. 모든 인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영화를 이제야 만났으니, 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의 열차에서 영원히 내리지 않을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기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장윤주|영화감독

모든 것을 다 소진한 뒤 그들은 어떤 힘으로 아픈 사랑의 자리를, 집착을 벗어났던 것일까?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어떤 마법과도 같은 힘 아닐까? 어찌 되었든 힘이 되는 그 무언가가 오는 순간을 잡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눈물이 다 흘러 아픔이 서늘해지고 상처에 바람이 통하게 되기를.

나의 감각이 우리의 감각이 될 때까지

<빌로우 허>

장영선|영화감독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고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는 영화, 욕망과 쾌락마저도 스스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영화들. 그런 영화를 보고 자라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우리에게는 기필코, 새로운 영화가 필요한 것이다.

슬픔에게 곁을 내어주기

<뼈>

정다희

울음이 통제되지 않고 곪은 상처가 터져 나올 때, 서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곁에 있기를 선택할 때, 슬픔은 누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견딜만한 것이 된다. 인간은 약하다. 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다. 너무 약해서, 우연일지라도 곁에 있는 존재로 인해 슬픔이 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뼈>는 해내고 있다.

이전과 다른 모녀 서사

<방문>

문아영

모녀 서사를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 유대/연대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뭇 해석과 달리 영화는 엄마와 딸 사이의 차이와 갈등에 주목한다. “엄마를 보면서 외할머니를 떠올”렸던 ‘나’에게 명희와 필순은 여성 혹은 유대라는 하나의 집합에 곧바로 묶이지 않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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