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소녀들이여, 추락하는 것은 자유다 용기다
<폴링>
홍재희|영화감독 / 2020-04-16
<폴링> 캐롤 몰리|2014|드라마, 미스터리|영국|102분|청소년 관람불가 |
<폴링> 스틸컷
푸를 청(靑) 봄 춘(春). 청춘. 하지만 십대 시절이 누구에게나 항상 봄처럼 푸르렀던 건 아니다. 아름다운 청춘을 구가한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사실 젊음을 잃어버린 나이든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시기를 관통하고 있던 청춘들은 영화 <폴링>(캐롤 몰리, 2014)의 리디아(메이지 윌리엄스)와 아비(플로렌스 퓨)처럼 권태와 불안이 가득했다. 어리고 젊다는 것이 낙인처럼 나를 위협하고 모욕한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았다. 리디아와 아비처럼 소외 또는 죽음으로 청춘의 막을 내린 젊음도 있었다. 세상은 우울한 푸른색이거나 애매모호한 회색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청춘은 그냥 고통이었다.
그 시절 나는 리디아이기도 했고 아비이기도 했다. 어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채 그 사이 어딘가를 초조하게 종종걸음 치며 배회하곤 했다. 부모와 학교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복달하다가도 위선적이고 강압적인 어른들을 경멸하면서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두 손 모아 빌었다. 떠오른다. 뒤죽박죽된 감정 덩어리가 내면 깊숙이 똬리를 틀고 현실에 짓눌린 채 위태롭게 외줄타기를 하던 나날.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여름날 바싹바싹 마른 입안에 고인 침 같던 하루하루가. 달아오르다 식기를 반복했던 열병 같았던 그 시절. 청춘.
<폴링> 스틸컷
1969년 영국의 명문 기독 여학교를 다니는 반항적인 리디아와 자유분방한 아비. 두 사람은 속마음을 비롯하여 모든 경험을 공유하는 단짝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비에게는 리디아도 모르는 비밀이 생기고, 가뜩이나 집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리디아는 그런 아비가 서운하다. 둘의 우정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 뜻밖에 아비가 죽는다. 매력 넘치는 아비를 동경하던 리디아와 급우들은 큰 충격에 빠진다. 그 후 소녀들에게 원인 모를 기묘한 증상이 나타난다. 리디아에서 시작해 급우들, 선생님까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기 시작한다.
<폴링> 스틸컷
의학과 과학은 언제나 남성들이 지배하고 독점하는 세계였다. 남성 정신의학자들은 여성들의 신경증과 불안 증세를 남성의 언어로 ‘히스테리’라 명명했다. ‘히스테리아’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그리스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우습게도 자궁이 만들어내는 병이라 여긴 것이다.
분신과도 같았던 아비의 죽음은 리디아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를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언어를 빼앗긴 리디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몸뿐이다. 리디아와 급우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말한다. 몸으로 저항한다. 여성이 신경증에 걸리는 이유는 자궁이라는 장기 탓이 아니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체제, 관습, 문화, 그 모든 것이 여성을, 여성의 목소리를,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인 것이다.
<폴링> 스틸컷
<폴링>의 시대적 배경인 1969년은 서구 유럽에서 ‘68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다. 68혁명이 불러온 변화의 파장은 넓고도 길었다. 주류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 여성, 유색인종을 비롯한 소수자가 전면에 등장하여 발언권을 요구하고, 유럽-백인-남성-이성애자 중심적인 보수적인 위계질서에 저항하는 반권위주의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다. 격변의 시대였다. 당대의 시대적 요구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철저히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과 성적 욕망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68혁명이 불러온 거대한 자유의 물결은 영국의 보수적인 여학교를 다니는 사춘기 십대 소녀들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리디아와 아비가 다니는 학교는 자유로운 60년대는커녕 고리타분한 50년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고 벌칙으로 요리 레시피를 암기하라고 명령하는 교사,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학교라니. 구토가 치밀어 오르고 현기증이 나며 숨이 막혀 쓰러질 법도 하지 않은가.
정신적 흥분, 경련, 실신 같은 외적 증상을 유발하는 집단 히스테리는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대규모로 동조와 암시가 일어날 때 발생한다. 아비가 죽고 나서 시작된 리디아의 기절, 그리고 연이어 급우들과 미술 선생까지 동조한 집단 기절 사태는 그들이 공유한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교육과 체제에 저항하며 여성(아비)의 욕망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행위다. 캐롤 몰리 감독은 집단 히스테리라고 일컬어지는 이 기묘한 현상을 여성의 성적 욕망과 황홀경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교육과 사회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바꾸어 읽어낸 것이다.
<폴링> 스틸컷
‘어리다’라는 말은 원래 ‘어리석다’가 어원이며 어른이라는 말은 ‘얼우다’, 즉 ‘섹스를 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성’이라는 것은 소녀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비처럼 적극적으로 탐험을 하든, 리디아처럼 결핍을 채우려고 시도하든, 리디아의 엄마 에일린(맥신 피크)처럼 감추고 억누르고 무서워하든 간에 여성이 ‘성’을 체험한다는 것은 무지한 어린 애에서 벗어나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집단 기절을 공유한 이들의 성장기는 우상처럼 동경한 친구의 죽음, 즉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동시에 성적 욕망에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탐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이 또래들보다 성숙했던 아비, 어른의 세계에 먼저 당도한 아비, 세상 앞에서 거침없던 아비가 아직 성에 눈 뜨지 못한 소녀들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임신한 십대 소녀 아비는 미성년자라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을 수가 없었다. 싱글인 미술 선생 샤론(모르피드 클락)은 임신 중이었다. 보수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교장은 학교를 떠나는 샤론에게 자신도 임신했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결혼하지 않았을 뿐 자신은 수녀였던 적이 없다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섹스와 임신으로 치르는 대가는 너무도 컸다. 아비도, 샤론도, 만텔 교장도, 리디아의 엄마 에일린조차 그러했다. 어쩌면 그토록 엄격하고 근엄한 만텔 교장이 그 누구보다 아비와 리디아를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생을 야단치고 벌세우는 선생들도 한 때 리디아였고 아비였다. 연령과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세상의 여성들은 모두 아비이고 리디아인 것이다.
<폴링> 스틸컷
영화를 보는 내내 1969년 영국이 2020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기시감에 휩싸였다. 한국은 제대로 피임하지 않는 사회, 혼전 임신한 여성과 중절 수술한 여성을 비난하고 낙인찍는 사회다.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성적 이중 잣대는 1969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억압, 통제한다. 21세기에도 대다수 여성들은 아비, 샤론, 에일린, 만텔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먹는 피임약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60년이다. 여성이 자유롭게 성적 욕망을 표출할 수 있게 해주고, 번식의 의무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임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준, 말 그대로 여성을 해방시킨 최고의 발명품이 바로 피임약이다. 여성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당당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적 무지와 자기 검열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피임은 성적 자기 결정권의 첫걸음, 시작이다. 만일 아비가 피임약을 먹었더라면, 응급피임약이 있었더라면,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봤다.
<폴링> 스틸컷
집에서 미용실을 하는 리디아의 엄마 에일린은 문 밖으로 일절 나가지 못한다. 그에게 집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지만 문 밖 세상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 어둠으로 표상되는 남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에일린은 리디아를 명문 여학교에 보낸 것 말고는 딸을 외면하고 방임한다. 리디아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에일린은 딸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다가가지 않는다.
리디아는 자신은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절망한다. 엄마의 고백을 통해 리디아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이유, 자신이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아비에게 열광했던 이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이유가 자신이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 자신이 친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 무엇보다 엄마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낳게 된 아이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진실을 알게 된 리디아는 집을 뛰쳐나간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리디아는 드디어 아비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비의 말처럼 오르가즘은 의식이 사라지는 ‘작은 죽음’이듯이 진실은 의식이 깨어나는 ‘또 다른 죽음’이었다. 추락(falling)은 두렵지 않다. 깨어있음은 자유이므로. 리디아는 나무 아래로 떨어진다(falling).
<폴링> 스틸컷
한편 엄마 에일린은 리디아를 붙잡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에일린이 칼을 들고 어둠 속을 두리번거릴 때 그는 자신을 괴롭힌 어두운 과거, 트라우마와 처음으로 대적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두려움에 직면하고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에일린은 용기를 낸다. 물에 빠진 리디아를 구해낸 에일린은 긴 세월 차마 내뱉지 못한 진심을 입 밖에 내어 고백한다. ‘넌 하나도 잘못한 게 없어’. 그렇게 엄마와 딸, 두 사람은 바깥세상에서 처음으로 조우한다.
성장통은 사춘기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성장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장통은 마치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와 같다. 불안하게 요동치던 사춘기를 통과하며, 발에 걸려 넘어지고(falling) 낚이고 채여 쓰러지면서(falling), 평생 동안 끊임없이 성장통을 겪으며 사람은 자기 앞의 생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아비의 부재와 출생의 비밀을 받아들이면서 리디아가 어른으로 한 걸음 성장하듯이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의 내면으로 숨어버린 에일린에게도 성장은 계속된다. 아비는 과거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지만 이 세계에 남은 리디아와 에일린에게는 어제와 다른 내일이,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닷가에 앉아 있을 두 여자를 상상한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시간을 겪으면서 우리는 ‘세월을 견딘 나무’가 된다.
<폴링> 스틸컷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 출신인 캐롤 몰리 감독과 클레르 드니 감독과의 오랜 작업으로 유명한 베테랑 아네스 고다르 촬영감독은 <폴링>에서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구축한다. 두 사람은 ‘완성된 영화가 억지로 만든 느낌이 아니라 먼지 쌓인 찬장에서 발견한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여성 감독과 여성 촬영감독이 아니었다면 십대 소녀들을 숨 막힐 정도로 짓누르던 억압적인 사회 공기와 그 밑바닥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며 펄떡거리는 욕망을, 그 감정의 결을 이토록 강렬하게 포착해낼 수 있었을까. 성적으로 조숙하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한 애매모호한 시기를 통과하는 여자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황홀경을 이처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아니, 없었을 것이다.
<폴링>은 익숙한 내러티브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한없이 지루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서사를 갑자기 중단시키는 음악과 생뚱맞게 반복되는 분절적인 이미지가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말고 그저 미장센을 즐겨보길 바란다. 비밀의 화원 쪽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숲으로 끌리듯 따라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듯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
<폴링>은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감춰진 것이 더 많은, 각각의 장면마다 해석할 여지가 다양한,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영화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으니 영화 곳곳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미지 파편을 정지 화면으로 낱낱이 찾아보시라. 등장인물의 내면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이미지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영상에 깃든 슬픔에 젖어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의 보컬이자 싱어 송 라이터 트레이시 숀의 음악에 취하고 싶다면, 우리 모두 한 번 쯤 지나가버린 성장기의 우물 속으로 풍덩 떨어져(falling)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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