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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상처를 딛고 나아가기

<언프리티 영미>

유자 / 2020-04-09


<언프리티 영미>   ▶ GO 퍼플레이
이영미|2018|다큐멘터리|한국|18분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커가면서 영미는 점점 소극적으로 변한다. 아홉 살의 영미는 밝았고, 열여덟 살의 영미는 적극적이었지만 스물한 살의 영미는 더 이상 전처럼 자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언프리티 영미>(이영미, 2018)는 작품 첫머리에 이처럼 변해가는 영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커가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움츠러드는 그녀. 그 원인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예쁘지 않은 영미’라는 제목처럼 감독은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고통 받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어릴 적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지적에 상처받았던 감독은 그때 생긴 마음의 상처에 자신이 아직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독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은 그 자체로 감독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이자 오래도록 곪아왔던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영미를 괴롭혀온 내면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공기처럼 익숙한 문화로부터 시작됐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 큰 눈과 가지런한 치아 등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은 너무나 공고했고, 사람들은 그 기준을 바탕으로 쉽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평가했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영미 역시 마찬가지로 그 견고한 기준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온갖 모욕의 말을 들었다. 앞니가 커서 갈갈이, 얼굴이 까매서 흑형, 입이 튀어나와서 말, 촌스러워서 춘자. 오로지 외모만으로 인해 들어야 했던 이 지독한 말들은 영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예쁘지 않은 사람을 막 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영미는 자신조차도 이 부당한 폭력에 의문을 품지 못했다. 자기는 못생겼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고, 그래서 그 폭력이 틀렸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긴 쉽지 않았다. 또래 집단이 중요했던 청소년 시기에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종종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외모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된 영미는 결국 참는 길을 택했다. 싸우기 싫어 참았고, 미움 받기 싫어 참았다. 이 부당한 상황에서 그녀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낮췄고 기꺼이 웃음거리가 되었다.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하지만 폭력을 애써 감내할수록 그는 ‘장난쳐도 받아주는 쿨한 애’ 정도가 되었을 뿐 누구도 폭력을 멈추거나 그의 상처를 알아주진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마음엔 지우기 힘든 상처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나는 못생겼다’ 그리고 ‘못생긴 사람은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일련의 학습 과정이 무의식 깊이 뿌리 내렸고, 그것은 이후 영미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었다. 

똑같아 보이는 셀카를 여러 장 찍고 자신의 얼굴을 조각내어 평가하는 영미에게 “왜 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느냐”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아빠의 근심어린 말씀은 안타깝게도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 상처는 영미의 마음가짐이 아닌 외부의 폭력이 만든 것이었고, 그의 가슴 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스스로도 어찌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애써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욕적인 말들과 이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는 실로 파괴적이었다. 외출 전 씻고 꾸미는 데 걸리는 시간만 1시간 30분. 컬러 렌즈를 끼고 파운데이션과 블러셔를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고 옷을 고르느라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다른 것에 투자하거나 더 잘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해가며 영미는 ‘외출해도 될 만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분주했다. 친구와의 대화 중, 그는 고백한다. 지하철처럼 사람 많은 곳에선 다른 사람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영미에게 무보수의 꾸밈 노동은 자기만족이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입술, 눈, 이마까지 자신의 얼굴은 전부 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9살의 영미는 결국 모두가 예쁘다고 말하는 큰 눈을 갖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쌍꺼풀 수술을 했다. 멀쩡한 몸에 칼을 대는 꽤 심각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뻐질 수 있다면 기꺼이 감내했다. 그렇게 영미 그리고 그를 닮은 수많은 여성들은 불안함 반, 기대 반으로 성형외과를 찾았고, 그러면 그들은 ‘졸업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예뻐지라며, 외모에 투자하라며 부추기길 주저하지 않았다. 쌍꺼풀 수술 후 영미의 눈은 실밥과 멍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끔찍한 아픔을 견뎌내고 모두가 바라는 ‘훈녀’ 새내기가 됐지만, 어쩐지 영미는 자신을 괴롭혔던 외모 콤플렉스로부터 여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화장을 마친 후 오래도록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의문이 들 뿐이었다. 정해진 기준에 맞춰 자신을 개조하는 것이 스스로를 배신하는 건 아닌지, 거울에 비친 내가 진짜 내가 맞는지 하고 말이다.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대학 친구들은 영미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미는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면의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고통받았다. 친구들은 그런 그에게 “타인이 보는 영미와 자기 자신이 보는 영미는 다를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말처럼 결국 마음 속 상처를 극복하려면 영미는 직접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처와 마주해야 했다. 스스로를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쇼핑 중독자라고 묘사하는 영미. 상처로 움츠러든 지금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영미는 그 방법으로 랩을 택했다. 고등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부르기도 했던 랩. 그 랩을 통해 영미는 학창시절 외모를 지적하며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친구들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로 한다.

스튜디오 녹음부터 뮤직 비디오를 찍기까지, 어설프고 낯설어 부끄러웠지만 영미는 거울을 보며 계속 연습한다. 가사를 자신 있게 내뱉어 보고, 다른 래퍼들의 당당한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하며 용기를 냈다. 그렇게 용기 내는 과정에서 감독은 점점 움츠러든 자신을 극복해갔다. 

<언프리티 영미> 스틸컷

물론 랩을 한 번 한 것만으로 낮아졌던 자존감이 완벽히 회복되거나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미는 랩을 통해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했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직시할 수 있었다. 가사를 읊조리며 영미는 깨달아간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그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들과 비슷해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열심히 해오던 꾸밈 역시 완벽히 주체적일 수는 없다는 것까지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다시 아홉 살 영미의 영상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입술, 눈, 이마까지 전부 다 예쁘다고 말하는 밝은 영미. 그는 이때의 밝은 모습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떼었다는 것이다. 용기 내 랩을 함으로써 영미는 그동안 갇혀 있었던 상처의 터널에서 나오기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엔딩 장면에서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은 ‘Unpretty Young Mi’에서 ‘Unpretty Young Me’로 변한다. 바뀐 제목처럼 그는 더 이상 예쁘지 않은 영미가 아니다. 막 변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외모를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었던 예쁘지 않은 과거의 나와 작별한 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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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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