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
<푸르른 날에>
유자 / 2020-04-30
<푸르른 날에> 스틸컷
옛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필름 사진과 카메라 그리고 1978년 달력이 있는 한 사진관. 그곳에서 사진관 주인 석윤(감성민)은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프레임에 담아본다. 찍고 싶은 대상을 찾지 못한 듯 쉽사리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그의 앞에 갑자기 한 여자가 사진관 문을 열고 나타난다. 망설이던 석윤은 처음으로 셔터를 누르고, 여성은 프레임 안에 고스란히 포착된다.
석윤의 카메라에 담긴 사람은 다름 아닌 사진관 맞은편 방직공장에 다니는 여공 설란(주가영)이었다. 설란은 어느 날 불쑥 석윤의 사진관에 찾아와 사진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평소에도 사진관에 손님을 잘 들이지 않았던 석윤은 갈등하지만, 설란을 비롯해 그의 동료들과 교류하며 서서히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한은지 감독의 영화 <푸르른 날에>(2018)는 이처럼 우연히 시작된 여공들과 사진관 주인의 ‘사진 모임’이라는 소재를 통해 1978년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복원해낸다.
<푸르른 날에> 스틸컷
영화는 첫머리에 방직공장 여공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어둡고 비좁은 공간과 그 안에 가득 들어찬 미싱. 이곳에서 설란과 여공들은 작업반장의 감시 아래 밤낮 없이 미싱을 돌린다. 이들은 졸려도 배고파도 허락되지 않는 한 일을 멈추지 못한다. 쏟아지는 잠을 어찌하지 못할 때면 타이밍(카페인 알약)을 먹으며 가까스로 졸음을 참는데, 이때 물은 마음껏 마시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오줌 누러 갈 시간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는 작업환경에서 여공들은 피곤에 절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지만 노동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합당한 대우 역시 받지 못한다. 끼니는 땅바닥에 앉아 해결했고 휴가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미싱에 손이라도 다치면 병원에 보내지기는커녕 걸레로 손을 감싼 채 그대로 쫓겨나고 만다.
<푸르른 날에> 스틸컷
이처럼 설란과 그의 동료들이 처한 상황은 무척 열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성차별마저 견뎌야 했다. 일명 ‘공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리었던 여공들은 못 배우고 가난한 여자라는 경멸적 시선 안에 욱여넣어지고 뭉뚱그려졌다. 작품 초반, 석윤이 여공으로부터 사진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는 ‘공순이’보다는 예쁘고 풋풋한 ‘여대생’을 찍으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란을 비롯한 여공들은 공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공장을 가동시키는 주체이자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공장에서 번 돈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쓴다는 설란을 보며 낯설어하는 그의 동료들처럼, 여성 노동자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계 또는 교육을 위해 마땅히 희생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부당해도 설란과 동료들은 공장을 떠날 수 없다. 공장일이 그들의 유일한 ‘밥줄’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재미있다는 설란에게,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석윤의 물음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었기에 설란의 말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미싱뿐이었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공장일은 결코 선택이 아니었다. 설란과 동료들에게 공장일이란 아무리 부당해도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였다.
<푸르른 날에> 스틸컷
이러한 맥락에서 설란에게 사진이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 그 자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채 노동 지옥에서 스러져 가는 여공들을 사진기는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설란과 옥순(박수연), 순주(인현진)는 사진을 배우면서 서로를 찍어주었고, 공장 내 같은 여성 노동자들을 프레임에 담으며 그들 자신을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 개별적인 존재로 기록한다.
그리고 사진은 설란과 동료들에게 해방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사진을 배우면서부터 고되게 일하고 지쳐 잠드는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그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만 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카메라에 어떤 피사체를 담을지 고민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 느끼는 것,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이 사람들이 무슨 사진 찍을지 아저씨는 안 궁금해요? 전 엄청 궁금해요. 무슨 생각하고, 뭘 보면서 살길래 이걸 버틸 수 있는 건지.” 설란은 석윤에게 말한다. 이 말처럼 설란은 사진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설란과 동료들에게 사진을 찍는 것은 그들도 사람이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뚜렷이 드러내는 행위였다.
<푸르른 날에> 스틸컷
하지만 사진 모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한데 모인다는 이유로 형사들이 석윤의 사진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진을 함께 배우던 여정(양조아)마저 협박했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석윤은 노동운동을 하는 설란을 걱정하지만 설란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설란은 노조지부장을 뽑기 위해 투표 장소로 향한다.
영화의 마지막, 석윤이 카메라에 포착한 설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후 등장하는 설명과 사진을 통해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이 1978년 인천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임을 알게 된다. 작품이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일명 ‘동일방직 똥물 사건’은 노조지부장 선거일, 투표를 하러 간 여성 노동자들에게 사측 행동대원들과 남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1) 당시 공장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여성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남성들이 이끌고 있었고, 투표 당일 사측과 남성 노동자 그리고 국가와 경찰은 합심하여 여성 노조지부장을 뽑으려던 여성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푸르른 날에> 스틸컷
이 비극적인 사건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성들의 노동운동과 생명력,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보여준 계기이기도 했다. 영화가 보여주듯 훗날 이 사건은 사진을 통해 기억될 수 있었다.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당시 찍힌 사진은 지워질 뻔했던 여성에 대한 남성과 국가의 폭력을 하나의 이미지로 또렷이 기록해냈고, 그렇게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일방직 사건을 다룬 해당 작품 역시 사진을 배우는 여공들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폭력 그 자체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모욕적인 사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 개개인에 집중하고 그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노동운동과 민주화 한복판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그 사건을 기억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석윤은 다시금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달리 더 이상 피사체를 찾아 서성이지 않는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찍고 싶은지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석윤이 찾은, 찍고 싶은 대상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존재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낮은 목소리들이 아닐까 싶다. 마치 석윤이 카메라에 담아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가 된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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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의 시위는 우리가 마지막이길 바랐는데…”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만남, 일다, 2019.12.06
PURZOOMER
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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