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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이제는 당당하게, 춤춰브라!

<춤춰브라>

유자 / 2020-03-12


<춤춰브라>   ▶ GO 퍼플레이
이푸른|2016|다큐멘터리|한국|11분

<춤춰브라> 스틸컷

브라를 처음 입었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가슴이 커지면서 옷 밖으로 비치기 시작하자, 엄마는 이제 제법 티가 난다며 내게 주니어용 브라를 사다주셨다. 나뿐만 아니라 또래의 여자 친구들 역시 하나 둘 브래지어를 차기 시작했다. 내 가슴을 향한 주위의 낯선 시선과 달리 처음 그것을 마주했던 나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엄마가 사주신 브라가 아무리 느슨한 것이라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전의 몸과 같을 순 없었다. 흉통을 조여 오는 밴드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 불편한 속옷을 계속 차야 하다니, 브래지어와 애써 친해지려던 당시의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10년 넘게 브래지어를 하다 보니 죽을 것 같던 답답함은 조금씩 사라졌다. 후크가 풀릴 때의 당혹스러움, 끈이 내려갈 때의 남사스러움, 가슴을 조이는 갑갑함 등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고 있어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그것에 완전히 길들여지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브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그저 불편한 것에 불과했던 브라가 어떤 친구들에겐 자신감을 선사하는 것이었고, 어떤 친구들에겐 만족감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스포츠 브라, 노와이어 브라부터 호피 무늬, 난닝구, 망사까지, 그 다양한 종류만큼 브라를 향한 여성들의 시각과 경험 역시 다양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 애증의 물건, 브래지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코르셋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취향일 뿐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민망한 가슴을 가리기 위해 반드시 차야만 하는 것인가.

<춤춰브라> 스틸컷

이푸른 감독의 다큐멘터리 <춤춰브라>(2017)는 이렇게 언뜻 분열된 듯 보이는 관점 사이에서, 브래지어를 새롭게 정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10분 남짓한 영상엔 다양한 세대의 여성이 출연해 브래지어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작품은 흥미롭게도 코르셋으로서의 브라와 취향으로서의 브라라는 대립적인 시선을 모두 소개하면서 이 두 가지 시선을 절충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브라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정의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종류도, 입는 방식도 각기 다른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그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평범한 일상으로서의 브래지어를 보여준 후 이어지는 인터뷰에선 청년, 중년 그리고 노년의 여성 출연자들이 브라와 관련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금 어떤 브라를 차고 있는지, 어떤 브라를 선호하는지, 브라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했는지 등, 그들의 답변은 오프닝 영상처럼 일상적이고 또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속엔 한 가지 공통점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브래지어가 출연자 자신의 몸을 향한 수치심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브라의 첫 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브라를 착용하는 것’의 의미는 출연자마다 각기 달랐다. 한 출연자에게 브래지어는 어른의 상징이었고, 다른 출연자에겐 부끄러움이었으며, 어떤 출연자에겐 자식의 제안에 얼떨결에 하게 된 물건이기도 했다. 핵심은 이 서로 다른 경험이 갖는 의미란,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가슴은 성적인 것이며 대상화되지 않기 위해선 가려야만 하는 ‘수치심’의 신체라는 것이다. 

<춤춰브라> 스틸컷

출연자들은 브라를 하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유두를 가리기 위함’이라고 하나 같이 입을 모은다. 섹시하게 생각하든, 불편하게 생각하든 간에, 결국 브라를 하는 이유는 내 몸의 일부가 성적이고 민망한 것이며, 나는 이것을 가려야 수치를 면할 수 있다는 강박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박은 자신의 가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희미한 어린 여성들에게 주입되고 또 학습된다.  

사회가 주입한 여성의 몸에 대한 수치심은 출연자들의 불편한 기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초등학생 때 남자 아이들이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 놀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 하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친구가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강간 1순위야”라며 선생으로부터 꾸중 듣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취향에 따라 브라를 차거나 차고 싶지 않아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의 가슴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으려면 브라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품은 브래지어가 억압의 상징이 된 근원을 밝힌다. 그리고 그 근원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모욕해온 사회의 시선이 존재했다.

<춤춰브라> 스틸컷

하지만 <춤춰브라>의 이야기는 이러한 모욕적인 시선에서 멈춰버리지 않는다. 브래지어의 억압적 속성을 충분히 보여주지만, 더 나아가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전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감독은 그 극복의 가능성을 브라를 향한 여성들의 긍정적인 해석으로부터 찾아낸다.  

‘섹시한 브라가 좋다’ ‘가슴이 예뻐 보이는 브라가 좋다’는 등의 답변처럼 여자에게 브래지어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몸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남에게 보여주는 옷이 아닌 만큼, 만약 브래지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만족이 더 크다면, 또 그것이 내 몸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닌가 하는 인식의 전환을 작품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여성의 가슴을 병적으로 대상화하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여성의 가슴, 더 나아가 여성의 몸은 완전히 주체적일 수 없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우리가 얼마만큼 주체적으로 자기 몸을 바라보고, 또 그 자유를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관문에 떡하니 브래지어를 걸어둔 영상 속 한 장면처럼, 작품은 여성들로 하여금 몸의 수치심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돼 그 맥락 안에서 브래지어를 새롭게 해석해볼 것을 유쾌한 어조로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춤춰브라> 스틸컷

작품의 마지막 장면엔, 첫 장면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던 사람들이 다시 등장한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입었던 브래지어를 하나둘 벗어 겉옷 위에 다시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 <춤춰브라>처럼 밝은 얼굴로 즐겁게 춤을 춘다. 이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을 보니, 한 출연자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브래지어가 ‘액세서리’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밖으로 당당하게 드러내놓은 마지막 장면의 브라는 성적인 신체 부위를 가린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액세서리였다. 

브라의 밴드가 꽉 조인 등엔 그 갑갑한 자국이 선명하다. 브래지어는 이토록 억압적인 도구이지만, 만일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좀 더 자유로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또 이를 통해 브라 입기를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자 한다면, 내 몸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이 억압의 도구를 내 몸을 위한 것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브라를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시대가 올 때까지 말이다. 영화는 이러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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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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