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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지금처럼 영원히 행복하기를

<예스 오어 노>

장영선|영화감독 / 2020-03-05


<예스 오어 노>
사라사와디 웡솜펫 | 2010 | 코미디, 멜로/로맨스 | 태국 | 102분

<예스 오어 노> 스틸컷

파이(수차랏 마나잉)는 소란스러운 레즈비언 연애를 하는 친구를 피해 기숙사 방을 바꾼다. 파이가 샤워하는 사이에 새 룸메이트인 킴(수파나트 기타리라)이 도착하고, 파이는 킴을 남자로 착각해 킴의 미소 짓는 얼굴에 반하고 만다. 그러나 갑자기 방에 나타난 바퀴벌레에 깜짝 놀란 킴은 파이의 등 뒤로 숨기 위해 난리를 친다. 킴의 성별이 밝혀진 뒤 파이는 킴이 톰(부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킴은 자신은 톰이 아니라며 두 사람은 ‘여성스러움’에 대해 토론한다. 파이는 톰과 있으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방을 바꾸겠다고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누가 봐도 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선생님은 그런 차별적인 이유로는 방을 바꿔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모든 일은 영화 <예스 오어 노>(사라사와디 웡솜펫, 2010)가 시작한 지 5분 만에 일어난다. 이 도입부를 통해 관객들은 영화가 제작된 2010년 당시 동성애를 대하는 태국 내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당시 태국에서는 동성애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오픈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이의 이전 룸메이트였던 친구 제인(아리사라 통보리숫)은 공공연히 동성과 연애를 하고 있으며 학교에는 자신이 톰, 즉 부치임을 숨기지 않는 선생님이 존재한다(태국에서는 레즈비언을 ‘톰’과 ‘디’로 나눈다. 톰은 이성애적인 관점에서의 ‘남성다운’ 외모와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디는 반대의 성향을 뜻한다). 대학생인 파이는 사회적으로는 호모 포비아로 보이고 싶지 않지만 은근하게 그들을 차별하고 있으며, 머리가 짧고 캐주얼한 옷차림의 킴에게 톰이라는 개념을 쉽게 덧씌운다. 

<예스 오어 노> 포스터

그래서 파이와 킴은 룸메이트임에도 쉽게 공존할 수 없다. 방 한가운데 테이프를 붙여 자신과 킴의 공간을 나누는 파이의 귀여운 오버 액션은 이 영화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을 알려준다. 저 테이프가 무용해졌을 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리라. 예상대로 킴과 파이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동아시아 퀴어 영화의 주인공들답게, 본인들의 정체성이다. 킴도 파이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 킴은 마치 소년과도 같은 외모를 갖고 있지만 요리를 좋아하고 겁이 많은 편이며 누구에게나 다정하다. 파이는 긴 머리에 치마를 즐겨 입지만 직설적이고 활달한 성격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둘 다 같다. 그러나 두 사람 주변에는 정체성에 대해 일찍 깨달은 사람이 많다. 파이의 친구인 제인은 다정한 킴의 모습에 일찌감치 반해버렸으며, 킴의 이모는 킴과 파이의 사이를 연인이라 넘겨짚는가 하면 킴에게 먼저 정체성에 대해 조언하기도 한다. 파이의 곁에는 파이를 애틋하게 좋아하는 반이라는 남자가 있고, 파이의 친구 중에는 자신의 게이 성향을 드러내고 다니는 페이가 있다. 

마음이 움직인 시점은 비슷하지만 둘 중 먼저 확실히 마음을 정한 쪽은 킴이다. 킴은 파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전하고 여러 사건과 오해를 통해 그 마음은 오히려 더 강렬하게 전달된다. 강아지처럼 파이를 올곧게 쳐다보는 킴의 눈동자에 파이의 마음이 서서히 녹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퀴어 영화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해서 쉽게 끝날 리는 없다. 영화는 아직 중반부이고 이 둘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으며 그 산은 대부분 사회적 시선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 속 태국 사회에서는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파이부터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갖고 있고 학교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파이의 엄마는 심각한 호모 포비아다. 파이의 엄마는 이성애 관념을 신봉하는 사람으로 킴의 정체성을 알기 이전에 킴의 ‘여자답지 않은’ 외모부터 문제 삼는다. 실로 갈 길이 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에서 파이의 엄마가 자신의 신념을 버렸는지 그 여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사랑이 이뤄진 것은 오롯이 파이의 개인적인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스 오어 노> 스틸컷

<예스 오어 노>는 태국에서 큰 흥행을 이끌어낸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다. 저예산 제작인데다 퀴어 영화라 제작진은 흥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무척 좋아 후속작인 2편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파이 역의 수차랏 마나잉이 빠지고 다른 주인공들이 더 등장하는 스핀오프 격의 2.5편 또한 제작됐다. 여전히 팬들은 킴과 파이가 등장하는 3편을 기대하고 있다고들 한다. 킴 역의 수파나트 기타리라는 감독이 길에서 우연히 캐스팅했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에선지 낯선 태국어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넘어선 어색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두 배우의 합은 무척 좋은 편이다. 모든 로맨스 영화가 그렇듯 두 배우의 합은 좋은 연기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영화가 흥행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퀴어 영화가 대중적으로 흥행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흥행을 이끌어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오래도록 고민했다.

퀴어 영화를 언제나 좋아했지만 나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턱없이 적었다. 그런 나에게 태국 영화와 드라마는 한 줄기 빛이었음을 고백하는 바다. 지금도 심심하면 넷플릭스에서 태국 드라마를 검색해 관람하곤 한다. 보다 보면 분명히 한 커플 이상의 퀴어 커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가도 태국 영화를 먼저 살펴보게 되는데, 퀴어가 등장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태국이 동성애자에게 비교적 관대한 나라라는 것을 뜻할까?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 그에 관한 문화 콘텐츠가 많은 것일까? <예스 오어 노>는 그런 인과에서 흥행한 것일까? 

<예스 오어 노> 포스터

단순하게 보자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국도 동아시아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태국 역시 동성혼은 여전히 법제화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20일 기사에는 동성혼을 위한 청원을 전달한 두 남성이 태국 의사당 안에서 키스를 했다가 위원회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하원 의장은 경위 조사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태국 관광청은 2019년 뉴욕 프라이드 축제에 ‘Go Thai, Be free’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성소수자들의 태국 방문을 권유하는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여러 이야기를 길게 해봤지만 영화의 흥행을 오로지 사회 현상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외에도 다른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영화의 세계니까 말이다. <예스 오어 노>가 흥행한 것은 역시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린 좋은 서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우호적이지 않던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함께 뛰어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또한 서로를 향한 킴과 파이의 순정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간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수많은 퀴어 영화는 얼마나 많은 비극으로 엔딩을 맞이했는가? 그 흔한 해피엔딩이 이토록 절실한 분야가 바로 퀴어 영화였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직시할 필요가 있다. 킴과 파이의 해피엔딩이 진심으로 행복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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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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