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인가

<어떤 둘째>

도상희 / 2020-02-27


<어떤 둘째>   GO 퍼플레이 
구대희|2015|다큐멘터리|한국|24분

<어떤 둘째> 스틸컷

“나는 내가 부끄럽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세 자식들 중 ‘어떤 둘째’로 태어난 감독(구대희)은 독백한다. 둘째의 짧은 연애는 자주 실패한다. 멀쩡한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다. 거울 속 내가 밉다. 이건 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지 않은 엄마 탓 아닐까? 엄마는 둘째에게 ‘지친 뒷모습’으로만 남은 사람이다. 

배 타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혼자 채워야 했던 엄마. 늦게까지 병원에서 근무한 엄마. 그에게서 다정한 눈빛이나 웃는 입술, 들어주는 귀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억울하고 궁금해진 감독은 카메라를 사이에 둔 덕에 용기를 내 서먹한 엄마 앞에 앉아본다. ‘취조’(엄마 왈)가 시작된다. 

둘째는 카메라 뒤에서 솔직한 목소리로 등장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받지 못한 ‘모성애’를 토로한다. “나 어릴 때 속옷 하나 사준 적 없잖아. 예쁜 건 기대도 안 했는데” “콩으로 하트모양 도시락도 한 번 싸줄 법했잖아”. 엄마는 답한다. ‘자신은 그런 쪽엔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엄마는 페미니스트인가? 어린 딸의 속옷을 챙겨주고 아름답게 도시락을 장식하는 일을 코르셋이라고 생각해, 하지 않은 것일까? 

어느 쪽이 됐든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던 딸 구대희는 섭섭했을 따름이다. 엄마 김은주가 페미니스트로서 ‘모성애’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부당한 억압이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무관심했든, 세 자식을 혼자 힘으로 씻기고 입히며 먹이는 일이 힘에 부쳐 어떤 ‘이즘’을 들여다볼 틈 없이 굳어진 생활형 무관심이었든 간에 말이다. 

<어떤 둘째> 스틸컷

영화 속에 비친 모습만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엄마는 대학에 가지 말고 일을 도우라던 자신의 어머니를 거절하고 병원에 취직했다. 젊은 시절 숏컷에 바지 차림으로 기타를 쳤던 김은주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모성애를 가치로 가지진 않았을 것 같다. 김은주라는 인물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조건 아래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 해도 둘째가 원하던 알뜰한 챙김, 다정한 말들, 풍부한 사랑을 쏟는 데 열중하기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했을 사람처럼 보인다. 

둘째는 내 엄마가 딸로서 바라는 어머니상이 아님을 다시 확인했음에도, 너무 늦게야 알게 된 엄마의 속마음일지라도 마음의 위로를 얻은 것일까? 흉터가 된 마음자리를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된 것만으로 이 영화의 제작 의도는 충족되는 것일까? 

<어떤 둘째> 스틸컷

구대희 감독의 질문이 아버지를 향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여성학자 정희진은 왜 ‘현부양부’라는 말은 없는지를 물으며 ‘스위트 홈과 자녀 양육이 그토록 중요하고 성스러운 일이라면 그것은 책임이라기보다 권리일 것이고 남성들도 앞다투어 참가해야 한다. 그러나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은 노동 시장에서 남성들이 듣는 가장 모욕적인 말로 취급된다’고 말한다. 

왜 일에 치여 자식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던 ‘여자’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고 성찰해야 하는가. 둘째 딸은 영화 속에서 단 3초 등장하는, 엄마가 냉장고 청소를 하는 옆에 팔을 괴고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남자에게는 섭섭하고 궁금한 마음이 없었을까. 부재가 너무 길었기에 애도, 증도, 무엇도 없는 남이 돼버린 것일까. 그 부재가 가정을 부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일까. 노동자로서는 30년 근속 표창을 받은 김은주이지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닦으며 딸의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어떤 둘째> 스틸컷

자식을 셋 낳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엄마는 밤낮으로 일했다. ‘니는 내가 지금 병원에서 어떻게 (힘들게) 일하는지 아나?’ 엄마는 묻는다. 응급환자가 들고 나는 현장에서, 자식을 셋 가진 여성으로서 30년을 일하는 동안 얼마나 자주 어머니 혹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등져야 했을 것이며, 가슴에 얼마나 많은 대못이 박혔을까. 그는 자신을 ‘물 같은 엄마’라 말하며 운다. 없으면 죽는, 그러나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감 없는 물로서 자신을 정의하며 30여 년간 묵묵히 살아내 왔다. 

지난 30년간 어머니 혹은 노동자로 살며 ‘김은주’ 자신을 잊었던 엄마는 촬영을 위해 아주 오랜만에 다시 기타를 쳐본다. 대학 시절 김은주가 다시 살아난다. 영화에서 처음, 엄마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기타가 방치돼 있던 세월처럼 쌓여있던 둘 사이 앙금은 딸이 기타를 고쳐 와 엄마에게 건넨 것처럼, 조금씩 풀어지며 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영화의 끝, ‘점심 때 떡국 먹을까?’라며 전에 없이 묻는 엄마에게 아직 마음이 다 풀리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좋다는 듯 응석을 부리며 ‘응’ 하는 딸의 목소리가 안쓰럽다.

그러나 딸과 어머니의 눈물과 노력으로만 앙금이 녹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절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사라질 때,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며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반드시 자동으로 어머니가 되는 것도 아님을 많은 이가 알게 될 때, 전지전능해야 하는 어머니로서 부여받아버린 책임으로부터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더 이상 모두 다 엄마 때문이라며 통곡하는 딸들이, ‘가슴 속에서 죽였으나 끝내 버리지 못한 어머니의 시체를 껴안고 사막을 헤매는’(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2013) 딸들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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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DMZ국제다큐영화제 홍보마케팅 스태프, 2019 인디다큐페스티발 홍보마케팅 스태프,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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