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전갈자리 같은 영화

<꼬리 물기>

김승희|영화감독 / 2020-02-13


<꼬리 물기>(Bite of the Tail)
김송이|2012|애니메이션, 드라마|미국|9분

<꼬리 물기>

당신이 유독 매력을 느끼는 영화가 있는가? 마침 나에게 지면이 주어졌으니 내가 매력을 느끼는 영화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 볼까 한다. 우선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풀리지 않는 추리소설을 읽은 기분이 든다.
둘째, 그래서 자꾸 문득문득 생각난다.
셋째, 작품 속 단서들을 찾아 내가 또 다른 서사를 만들게 된다.
넷째, 그래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마치… 전갈자리 같달까? 전갈자리는 어둠의 신비로운 비밀주의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뭐랄까, 나는 호감이 가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좀처럼 속마음을 안 보여줘서 애가 타게 만드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다가가게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꼬리 물기>

약간 그런 느낌으로 약 7년간 나에게 속마음을 잘 안 보여주는 전갈자리 같은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김송이 감독의 작품 <꼬리 물기>(Bite of the Tail, 2012)>다. 그때는 내가 막 애니메이션을 혼자 어떻게 만들어 보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할 무렵으로,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TV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보게 됐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오멸 감독의 <지슬>,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연기> 그리고 김송이 감독의 <꼬리 물기>까지 총 네 작품이 선댄스영화제 라인업에 올랐던 2013년. 특히 <꼬리 물기>는 학생 작품으로 선댄스에 올랐기에 더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이는 혼자 발버둥 치고 있던 나에게 굉장히 설레는 소식이었다.

2013년은 지금보다 더 단편영화 소개 플랫폼이 없었을 때다. 그나마 소개되는 영화들마저 미국 혹은 유럽권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그러던 중 <꼬리 물기>가 비메오에서 스태프 픽을 받으면서 온라인 공개가 되었다. 내 마음에 또 설렘의 바람이 불었다. 미국 유타주까지 가지 않아도 편하게 집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니! 게다가 아시아의! 한국의! 여성 감독이! 대단해!

<꼬리 물기>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9분 뒤, 느낌표는 곧 물음표로 바뀌었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찼다. 우선 화면 하단의 하트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플레이. 플레이. 또 플레이.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근데 묘하다’라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결국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희한하게 길을 걷다가 문득 영화가 생각났다.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떠올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영화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나의 무의식은 영화를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에는 4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자, 여자의 남편, 의사, 여자의 여동생. 아내와 의사, 남편. 이 세 캐릭터는 극 중에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아내와 의사는 복통의 원인을, 남편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양봉 모자를 뒤집어쓰고 수풀이 우거진 공터에 들어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뱀을 찾는다.

네 명의 인물은 서로 묘하게 기만적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 뒤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눈동자(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캐릭터들의 표정 연기가 정말 일품이다). 형언할 수 없는 위화감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은 여동생이다.

<꼬리 물기>

이 작품에는 캐릭터와 이야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있다. 그 빈틈은 보는 이가 메꿔야 한다. 극 중 세 명의 캐릭터가 무엇인가를 찾으려 노력하듯 작품을 보는 사람도 이야기의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혹시 의사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사실 아내는 건강염려증인 거 아닐까? 여동생은 거짓말을 하는 거 아닐까? 남편은 왜 뱀을 찾으러 다닐까? 그리고 왜 도망가는 걸까?

자꾸만 올라오는 질문들에 대한 은유적인 답으로 ‘뱀’의 이미지가 극을 관통한다. 뱀은 지혜를 뜻하기도 하지만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은 거짓말의 상징이기도 하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해답인 듯 해답 아닌, 서로의 꼬리를 먹고 있는 두 마리의 뱀, 패러독스의 상징인 우로보로스가 등장한다.

감독이 해외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정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꼬리 물기>다. 캐릭터들이 해답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감독 역시 그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 나지 않은 점이 좋다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난번 소개했던 알바트로스 수프(Albatross Soup)처럼 수평적 사고 퍼즐을 풀듯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그래도 이 전갈자리 같은 영화는 여전히 비밀스럽다. 감독이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도 이 작품 해석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즐겁다. 왠지 정답을 찾아버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결론을 내려버리는 날, 이 작품이 더는 비밀스럽고 신비롭지 않게 되어 매력적인 영화 한 편을 잃게 될 테니. 

*비메오에서 ‘Bite of the Tail’을 검색하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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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ZOOMER

애니메이션 <심심> <심경> 등 연출, <피의 연대기> 애니메이션 작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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