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동성결혼 법제화가 만드는 시간적 간극

<퍼스트 댄스>

문아영 / 2020-02-06


<퍼스트 댄스>   ▶ GO 퍼플레이  
정소희 | 2014 | 다큐멘터리 | 한국 | 94분

<퍼스트 댄스> 스틸컷

결혼식 영상을 촬영해달라는 친구의 의뢰에 감독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제안했다는 게 영화 <퍼스트 댄스>의 제작 배경이다.(송경원, 「소박한 진심이 느껴지는 결혼식 비디오처럼」, 『씨네21』, 2014. 5. 8)

개인의 일상 기록물에서 다큐멘터리로 성격이 변하면서, 카메라는 결혼식을 기점으로 약 사흘이라는 시간적 배경 동안 공통 질문을 통해 선민 부부의 전반적인 생활과 관계망을 그릴 방법을 택한다.

인터뷰 질문은 다소 평이하다. 자기소개 이후 로렌과 선민이 만나게 된 과정과 커밍아웃 후 주변의 반응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들을 묻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선민 부부의 주변인들은 동성혼을 둘러싼 공격 담론에 대항자 혹은 답변자로서 역할을 분담한다. 이들은 선민과 로렌의 인터뷰에서 미처 전달되지 않은 두 사람의 삶을 비추어 동성혼의 필요성과 권리를 주장한다. 파트너의 장례를 치를 경우 혼인 관계와 같은 법적 인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선민이 아닌 그의 측근 은영의 입을 통해서다. 

이렇듯 영화는 선민 부부에게 모든 설명을 요구하거나 할당하지 않고 인터뷰라는 방식을 통해 배분한다. 인터뷰이가 모든 답변을 소화해야만 장면 전환이 이뤄지는 편집은 자칫 지루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으나 <퍼스트 댄스>는 주제에 상응하는 답변과 인물이 가진 매력에 기대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퍼스트 댄스> 스틸컷

영화의 주된 지역적 배경인 매사추세츠는 200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주다. 따라서 로렌에게 파트너와의 결혼은 늘상 염두에 두고 있는 일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선민은 자신이 여성-남성 간의 결혼 질서에 속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퀴어 시민권을 인정하는 동성혼 법제화는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퀴어의 삶에 어떠한 간극을 발생시켰다. 그럼에도 관객은 영상 말미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사추세츠라는 공간이 가진 시민권(citizenship), 성원권(membership)의 지형이 퀴어의 삶에서 선택 범주를 넓히는 인정(recognition) 체계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다.

보스턴 시민공원은 한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던 암컷 백조 한 쌍이 레즈비언 커플로 새롭게 알려진 곳이다. 선민과 로렌은 약혼 사진을 촬영했던 이곳에서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찍길 원했다. 그리고 영상에서 부부가 좋아하는 여행지로 소개된 프로빈스타운은 퀴어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다. 카메라 또한 건물 곳곳에 달린 프라이드 깃발과 중심가에서 휴식을 즐기는 퀴어 커플의 모습을 담는다. 이처럼 두 사람의 결혼을 기록하고자 했던 영화가 보스턴 시민공원과 보스턴의 퀴어 공간인 프로빈스타운을 따라가게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매사추세츠가 지닌 권리 지형과 연결된다.

<퍼스트 댄스> 스틸컷

‘게이-됨’에는 성적 선호(sexual preference)¹의 자각이나 커밍아웃 외에도 삶의 방식의 전면적인 재조형이 동반된다.(윤경희, 「긴 여름이 끝날 즈음」, 『문학동네』 25(3), 문학동네, 2018)

영화에서 선민과 로렌이 택한 재조형의 방식은 커밍아웃과 결혼이다. 졸업 무도회에 여자친구를 데려갔던 로렌은 고등학교 시절 엄마 메들렌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마찬가지로 선민도 식장에 함께 걸어 들어갈 친구부터 독실한 기독교인 친구들까지 얽힌 여러 커밍아웃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선민의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자 식을 미뤘었다. 한국에서 부모를 만난 선민은 커밍아웃에 마찰이 생기자 그들이 보스턴에 방문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의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반려인과 늙어가는 기쁨’을 이유로 들며 선민-로렌 커플의 결혼을 조정하고자 했지만, 게이-됨을 위해 시작된 이 여정에 선민의 대답은 “저도 그거 다 할 거예요”로 예정돼 있었다. 

<퍼스트 댄스> 스틸컷

한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시점에서 선민이 부모와 대면했던 일은 과거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선민과 주변인들의 회상, 낭독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화면 곳곳에서 복기시킨다. 이처럼 영화는 지나간 (게이-됨의) 수행의 흔적마저 영상으로 기록한다.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 자신의 어떤 부분이라도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살 순 없어요.”(로렌)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퀴어는 계속해서 지워진다. 이 같은 규범에 이들이 충분히 진실해지는 방법은 사랑을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이다.(인아영, 「퀴어-되기를 위한 주제와 변주」, 『문학과사회 하이픈』 31(3), 문학과지성사, 2018)

<퍼스트 댄스> 스틸컷 

스스로를 감추는 기분에서 벗어나 퀴어임을 알고 퀴어-됨을 수행하는 진실은 두 사람의 입에서 “제 인생에서 어떤 것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로렌) “삶은 아름다워요. 사랑하세요”(선민)와 같은 말을 자아낸다. 진실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두 사람이 게이-됨을 수행하는 데 주요한 기제이다.

영화가 촬영(2012)되고 상영(2014)된 후인 2015년 미국 전역에서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시행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레즈비언 드라마 <엘 워드: 제너레이션 Q>에서는 이혼한 레즈비언이 새로운 파트너와 아이들을 양육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성혼이 게이-됨과 퀴어 시민권을 수행 및 인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며, 한국과 다른 미국의 상황을 도달해야 할 미래로 상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20년의 한국에서 8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레즈비언 결혼식을 보고 있자면, 선민과 로렌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다시금 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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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인,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윤보라 외 5인,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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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페미 소속,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집행위원,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 <멋진 하루> 공동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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