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진짜와 진짜 같은 것 사이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장영선|영화감독 / 2020-02-06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압델라티프 케시시 | 2014 | 드라마, 멜로/로맨스 | 프랑스 | 180분 
|청소년 관람불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나는 아직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델라티프 케시시, 2013)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의 구석 자리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아델의 이야기 1부와 2부>를 처음 보던 순간을. 벅차도록 생생하게 다가왔던 아델의 모습은 내가 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를 영원히 극중의 아델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그를 영화 <시빌>(저스틴 트리엣, 2019)에서 다시 보았을 때 그런 걱정은 기우임을 깨달았다.)

영화가 시작된 후 관객들은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하루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 쌀쌀한 겨울 아침 스쿨버스에서 잠이 들고, 수업을 마친 뒤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족과 밥을 먹고,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친구와 대화하는 모습들을. 카메라는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델의 얼굴을 그저 있는 그대로 비출 뿐 어떤 계산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그렇게 아델의 표정과 눈빛은 여과 없이 전달된다. 우리는 아델의 눈빛을 통해 그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는 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파란 머리의 엠마(레아 세이두)를 만난 순간 아델의 눈빛을 보고 우리는 알게 된다. 아델이 엠마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는 것을.

그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급격히 불규칙하게 변한 숨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그뿐인가. 집으로 돌아온 아델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엠마를 떠올리며 자위를 한다. 이 모습 또한 카메라가 바싹 쫓는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는 그의 둔탁한 숨소리 또한 그대로 전달된다. 자위가 끝난 뒤 멍해진 그의 눈에 고여 드는 눈물까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나면 누구라도 아델과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일치시키지 않기란 어렵다.

아델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경험담이 된다. 아델이 겪은 일은 나 또한 겪은 일이고, 내가 걸어온 길을 지금 아델이 걷고 있는 것이다. 아델이 어떻게 될지 예측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델을 보고 싶다. 내게는 과거로 지나가 흐려진 기억을 아델이 아주 생생하게 재생하기 때문이다. 아델은 더 이상 스크린 속의 존재가 아니라 아델 그 자체이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는 동안 다시금 과거를 사는 나이기도 하다. 한번 나의 조각이라고 여겼던 인물을 끈질기게 쫓게 되는 것은 관객의 숙명인 것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평범한 고등학생인 아델과 예술대학교 학생인 엠마의 우연한 만남은 운명 같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 이들의 사랑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간다. 둘이 함께였던 순간에는 완벽하던 이들의 세계는 외부인과 섞이는 순간 곧바로 기우뚱거린다. 아델의 친구들은 호모 포빅(동성애자 혐오)한 행동을 하고, 엠마의 친구들은 아델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예술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엠마의 가족은 살아있는 굴을 즐겨 먹고, 아델의 가족은 파스타를 좋아한다. 엠마의 방에서는 자유롭게 섹스할 수 있지만, 아델의 방에서는 소리를 참으며 섹스를 해야 한다. 각자가 살아온 세상의 차이는 결국 서로의 차이로 이어진다. 아델은 대학교로 진학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곧바로 유치원 교사가 되고, 엠마는 아델이 현실에만 안주할 뿐 창작으로써 자아실현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엠마의 생일파티에서 아델은 정신없이 음식을 해 나르면서도 끊임없이 엠마의 눈치를 살핀다. 엠마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아델을 쳐다봐주지 않는다. 파티가 끝난 후 잠자리에서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밤에도, 전시회를 준비하는 중에도 엠마는 더 이상 아델을 바라보지 않는다. 언제나 눈을 마주 바라봐주던 엠마의 시선을 아델은 잃게 된 것이다. 엠마의 싸늘함을 보는 우리도 아델과 함께 외로워진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아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에 슬퍼하는 엠마의 눈물보다, 외로웠다고 말하며 그간의 심정을 토로하는 아델의 눈물에 이입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반을 나서자마자 터지는 그의 눈물을 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는 홀로 남았지만 여전히 엠마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그걸 머리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아델은 결국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우리가 겪었던 과거가 그랬듯이, 끝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지금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는 괜찮아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정말이지 가슴이 아플 만큼 감독이 부러웠는데, 이 영화에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영화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너무나도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진짜’가 영화에 정확하게 구현됐다고 생각했다.

그 연출 방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엠마 역의 레아 세이두가 감독인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연출 방식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의 디렉션 중 성 착취적인 부분이 있었고 촬영 과정은 무척이나 끔찍했으며 ‘고문’에 가까웠다고 말이다. 감독은 배우들에게 섹스 신을 몇 번에 걸쳐 계속해서 요구했고(레아 세이두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는 ‘이것이 굴욕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배우에게 나체 상태로 지내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처음 부산에서 영화를 관람했을 때 베드 신을 보며 느꼈던 피로감을 생생히 되새겼다. ‘베드 신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라는 짐작은 틀린 것이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나는 영화 속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배우가 진짜로 느낄 때 스크린 밖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도 진짜로 느끼게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을 제대로 구현한 영화를 보면 위대하다고 느낀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은 그런 위대함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감독의 연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지금은 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진짜’의 모든 것은 모두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처사와 상관없이 엠마로서 그리고 아델로서 서로를 사랑한 배우들의 마음이 진짜였기 때문에, 두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영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진짜’의 영화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영화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영화의 감독이 압델라티프 케시시라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작인 <메크툽, 마이 러브: 인터메조>(2019) 촬영 과정에서도 배우들에게 사전 합의 없이 실제 정사 신을 강요해 지탄받는가 하면 2018년에는 한 여성 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영화는 기억의 예술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뿐만 아니라 그 후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그 영화의 일부가 된다. 나에게 이 영화는, 처음 보던 순간의 환희와 더불어 피로와 고통의 기억도 함께 수놓아진 영화가 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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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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