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질문과 해답, 그 사이 보이지 않는 과정에 대하여
<알바트로스 스프>
김승희|영화감독 / 2020-01-09
<알바트로스 스프> 스틸컷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나요?’라고 검색해보면 대략 세 가지로 추려지는 답변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 영화 학교에 들어가라. 둘째, 현장 막내에서부터 경험을 쌓아 올라가라. 셋째, 일단 단편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제에 출품해라.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감독은 뷰 파인더로 배우들의 연기를 지긋이 바라보다 ‘컷!’을 외치거나 큰 회의실에서 작가와 배우들이 모여 대본 리딩을 하는 테이블의 한가운데 앉아 현장의 공기를 음미하거나 영화 제작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스태프들을 진두지휘하는, 흡사 장군의 모습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위의 세 가지 답변들과 장군의 이미지 사이에는 참 많은 것들이 생략됐는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략된 과정과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많은 여성 감독을 떠나보내게 된다. 동시에 여전히 곳곳에서 스스로 현장을 만들어내고 많은 이들과 함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성 감독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더 자주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작품은, 위니 챙 감독의 <알바트로스 스프(Albatross Soup)>다. 이 영화는 수평적 사고 수수께끼 퍼즐을 풀기 위해 5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한 남자가 보트에서 내린다. 그는 식당에 들어가 알바트로스 스프를 주문한다. 스프를 한 입 먹은 후, 그는 총을 꺼내어 자살한다. 그는 왜 자살했을까?”
<알바트로스 스프> 스틸컷
<알바트로스 스프>는 7분짜리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50여 명의 참여자가 수수께끼 퍼즐에 제시된 상황의 여러 원인을 추측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이키델릭(환각 상태)한 이미지와 함께 그린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 여러분도 수수께끼의 답을 한 번 생각해보길 추천드린다.
위니 챙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이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태생인 그는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영화 편집자로서의 커리어가 더 많다. 아울러 아디다스, 나이키, 휠라와 같은 브랜드의 커미션 필름을 주로 찍는 감독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하면 감독이 그림도 그렸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을까?
먼저, 캐스팅 디렉터가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매칭하듯 그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작품의 이미지를 자신의 의도와 딱 맞게 화면 위에 구현시킬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그가 비메오 인터뷰에서 말하길, 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애니메이터에게 연락을 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탓하진 않는다고. 그러던 중 캐나다 카투니스트인 피오나 스미스의 작품을 온라인상에서 보게 됐고 그에게 연락을 해 작품의 아트워크를 부탁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Cause +Effect 제작사에서 함께 일했던, 작품의 애니메이션을 맡은 마사요시 나카무라에게 작품을 피칭하며 함께 작업해줄 것을 설득하고, 뉴욕타임스의 일간 뉴스 팟캐스트인 더 데일리의 프로듀서이자 그의 친구인 알렉스 영에게 녹음에 참여할 사람들의 캐스팅을 부탁했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인 50여 명의 참가자들을 4~5그룹으로 나눠 그들이 재밌는 아이디어들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녹음 세션을 리드했다.
<알바트로스 스프> 스틸컷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된 <알바트로스 스프> 제작 과정에서 생략된, 즉 그가 지나왔을 것들-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하고 거절당하고 함께하는 아티스트들의 영감을 믿고 따르면서 동시에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이 표현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50여 명의 대화 내용을 듣고 또 들으며 편집 감옥에 갇혀 지냈을 것-을 생각해보자. 참고로 감독은 이 작품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내일도 해가 뜬다며 고지를 향해 3년간 열심히 달려왔을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그리하여 <알바트로스 스프>는 2018년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갖고, 2019년 선댄스 경쟁 라인업에 올랐으며 그 밖에 많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그 후에는 비메오 스태프픽 프리미어로 온라인 공개가 되면서 성공적으로 영화제 서킷을 마무리 지었다.
이제 위니 챙은 <알바트로스 스프>를 뒤로하고 여자들로만 구성된 오토바이 폭주족 멤버의 성적 트라우마에 대한 사이코 에로틱 스릴러 장편영화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하나의 고지를 넘고 다음에 넘을 고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멀리서나마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 커리어와 함께 다져온 그의 네트워크가 그의 발밑을 비춰 주는 빛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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