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사랑과 연대는 하나라는 것

<바운드>

장영선|영화감독 / 2020-01-09


<바운드>(Bound)
라나 워쇼스키·릴리 워쇼스키|1996|범죄, 스릴러|미국 |107분
|청소년 관람불가

<바운드> 스틸컷

<바운드>(감독 라나 워쇼스키, 릴리 워쇼스키, 1996)의 코키(지나 거손)와 바이올렛(제니퍼 틸리)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다. 문 너머로 들리는 바이올렛의 목소리에 코키는 닫히려던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어준다. 바이올렛이 성큼, 문 안으로 들어서서 코키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이미 어떤 ‘느낌’을 받는다. 뒤따라 탄 바이올렛의 정부 시저(조 판톨리아노)는 문을 마주 보고 서 있고, 좁은 엘레베이터 안의 뒤편에 선 코키와 바이올렛은 시저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순식간에 공유한다.

이 장면은 뒤로 이어질 영화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는 듯하다. 영화 내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표면 아래서 일렁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문 너머로 펼쳐지는 납작한 욕망과 즉흥적인 광기에 남자들이 휘말릴 동안 코키와 바이올렛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차분히 그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해나간다.

코키는 절도 전과자로 5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후 잡역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팔뚝에 레즈비언을 상징하는 양날 도끼인 라브리스를 문신으로 새기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외형 또한 명백한 다이크(부치, Butch)다. 바이올렛은 전형적인 영화사 속 팜므파탈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노골적으로 코키를 유혹한다. 시저는 바이올렛의 정부로 5년째 바이올렛과 함께 살며 마피아의 돈세탁을 하고 있다. 바이올렛이 코키와 밀회를 즐기는 것을 시저가 목격하지만, 바이올렛에게 죽일 듯이 화를 내려던 시저는 코키가 여성이란 것을 확인하고는 모든 의심을 내려놓는다. 이 장면은 복선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늘 자신이 가장 하찮게 여기던 것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경향이 있다. 고로, 여성들의 사랑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여성들의 사랑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바운드> 스틸컷

바이올렛은 코키에게 시저가 세탁한 마피아의 돈 200만 달러를 가지고 도망치자고 제안한다. 이미 바이올렛을 사랑하고 있는 코키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을 직감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고, 이들은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는다.

<바운드>는 워쇼스키 자매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 영화 이후 그들은 <매트릭스>를 연출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마피아와 거액의 돈 그리고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범죄스릴러는 감독들의 훌륭한 연출 기법으로도 주목받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두 명의 레즈비언 여성이라는 것이 단연 가장 특별한 점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코키와 바이올렛을 제외한 등장인물은 전부 남성이며, 이들은 마피아로 등장한다.

시저는 바이올렛과 코키의 계략에 쉽게 빠져들 뿐 아니라 스스로 사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들 간의 연계로 탄탄하다 믿었던 마피아 조직의 신뢰 관계가 사실은 종잇장처럼 얇기 때문이다. 돈이 사라진 후에도 시저는 절대로 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껏 그에게 막대한 금액을 세탁하도록 맡긴 마피아 조직 내 남성들만을 의심할 뿐이다. 의심의 이유 또한 너무나도 가볍다. 평소에 서로를 싫어했기 때문에, 혹은 그 남자가 자신의 트로피와도 같은 바이올렛에게 추근댔기 때문이다. 바이올렛은 지금의 세계가 지겹고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고 말하며 코키에게 돈을 가지고 도망치자고 한다. 코키는 낯선 자와의 섹스는 가능하지만, 도둑질은 가장 잘 아는 이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며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바이올렛의 손을 잡는다.

<바운드> 스틸컷

이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돈을 훔치기 위해 다른 세계로의 갈망과 상대에 대한 끈끈한 신뢰를 필요로 한다. 반면 남성들의 모든 욕망에는 내면적인 이유가 없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그저 돈, 광기 그리고 습관화된 위계와 서열뿐이다. 이러한 대비는 영화의 결을 풍부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도 힘을 불어넣는다.

영화가 시작된 후 20분 이내에 모든 관객들은 코키와 바이올렛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시저가 이를 눈치채게 되는 것은 영화의 종료를 20분 앞둔 시점이다. 코키와 함께 인질로 잡힌 바이올렛은 시저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시저와 협상을 시도하는 바이올렛은 시저의 표현에 따르면 더 이상 ‘나의 바이올렛’이 아니다. 시저는 바이올렛과 5년을 함께 살았지만 파트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총구를 겨눈 채 망설이는 바이올렛을 보며 시저는 바이올렛이 자신을 사랑해서 망설이는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방아쇠가 당겨진다. 탕, 탕탕.

수많은 스릴러 영화의 계보에서 여성의 역할은 대개 팜므파탈이었다. 남성을 유혹해 그의 시야를 흐리고 파멸하게 만드는 역할. 그러나 여성의 역할은 거기까지일 뿐, 그가 무엇을 원해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걸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반면 <바운드>는 여성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 많은 아름다운 팜므파탈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운드> 스틸컷

영화의 마지막, 드레스를 벗고 비로소 코키와 비슷한 외형으로 바뀐 바이올렛에게 코키가 묻는다. “너와 나의 차이점이 무엇인 것 같아?” 바이올렛은 대답한다. “모르겠어.” 코키가 답한다. “나도.” 두 여성이 손을 포갠 뒤 깍지를 끼고 키스하며 차가 출발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에는, 그간 우리가 흔히 보아온 범죄영화의 엔딩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영화의 시작에서 코키와 바이올렛이 그랬듯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일 것이다.

두 여성의 사랑은 연대와 뗄 수가 없다. 여성들 사이에서 사랑과 연대는 하나의 길로 나아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돕는 것이며 돕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뜻한다(나는 저 ‘사랑’이 성애적 의미를 포함하든 포함하지 않든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코키와 바이올렛이 함께 떠나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이들이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해졌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제껏 남성 사회에서 모멸당하던 바이올렛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것,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던 코키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떠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영원히 행복하기를, 다시는 되돌아오지 말고 영원히 서로의 분신이 되어 온전하기를.

<바운드> 포스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적혀있는 워쇼스키 ‘형제’라는 단어가 문득 생경했다. 지금은 워쇼스키 ‘자매’가 된 그들의 데뷔작이 <바운드>라는 것은 세월을 돌고 돌아 더욱 더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릴리 워쇼스키가 성전환을 결심하며 올린 글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그는 이 구절이 자신의 좋은 친구 호세 에스테반 무뇨스의 명언이라고 밝혔다.)

“퀴어라 함은 본질적으로 지금 여기를 거부하고 다른 세상의 잠재력을 주장하는 것이다.”

요즘 영화들이 식상한가? 그렇다면 다른 세상의 잠재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치 <바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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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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