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더 많은 청소년들의 투표권을 위하여

<19禁>

유자 / 2020-01-03



<19禁>   ▶ GO 퍼플레이
안수현·조한나·진지원|2016|다큐멘터리|한국|25분

<19禁> 스틸컷

‘청소년들에겐 왜 투표권이 없을까?’ 다큐멘터리 <19禁>(안수현·조한나·진지원, 2016)은 이와 같은 감독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청소년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배우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법은 만 19세 미만의 투표를 금지했었다. 병역, 납세 등의 의무를 지지만 투표권만큼은 19금이었던 상황.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청소년이기도 한 영화의 제작자들은 도대체 그 연유가 무엇인지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다.

영화는 가장 먼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의미를 설명한 후 선거 연령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생일 케이크에 초를 불자마자 내 앞에 주어지는 투표용지 한 상자. 투표권은 이렇게 고작 몇 시간의 차이로 얼토당토않게 주어진다. 생일이 지난 만 19세로 투표권을 부여받는 갓 성인, 그들은 청소년이었던 고작 몇 시간 전보다 지적으로 성장한 것일까? 고작 몇 시간 전보다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왜 투표를 할 수 없는 걸까? 이 합리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청소년 투표권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설문조사 결과 시민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청소년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도 많았지만, 반대 의견 그리고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았다.


<19禁> 스틸컷

특히 청소년 투표권에 우려를 표한 응답자는 청소년이 어른의 의견에 휘둘릴 가능성과 아직 사회를 잘 알지 못해 미성숙할 수 있음을 걱정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제작진은 두 가지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다. “청소년이 뭘 알기는 해?”라는 한 응답자의 말처럼 성인들은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있어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의사 결정의 독립성을 의심하며, 이와 같은 의심은 청소년 스스로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를 마친 제작진은 청소년 투표권에 대한 또래 친구들의 생각도 들어보기로 한다. 제작진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투표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학생 중 잘못된 정보, 나쁜 정보를 접하는 이도 있기 때문에 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회를 직접 겪는 어른들과 달리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정치의 내막은 잘 알지 못하는 우리가 후보의 공약만 보고 투표를 한다면 혼선만 일으킬 것이다’라는 의견이었다. 청소년의 투표권 박탈이 부당하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제작진 역시 청소년 투표권 문제에 대해 확고한 찬성이 아니라 의문을 갖고 영화 제작을 시작한 만큼 청소년은 실제 정치에 있어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19禁> 스틸컷

‘청소년이 차별받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독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차별’이라는 단어가 구체화하듯 영화는 청소년 투표권이라는 소재를 통해 청소년의 약자성을 드러내며 사회가 어떤 식으로 그들을 억압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대학과 입시의 인질이 된 청소년들이 권리를 박탈당한 채 비정치적일 것을 강요받는 것.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성인과 다를 바 없이 삶의 문제로 분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라는 명목 아래 침묵을 강요받는 것.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 모든 구조는 약자를 억압하고 다스리는 메커니즘과 꼭 닮아 있었다.

약자를 억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약자의 성취를 폄하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중간 중간에 포함된 전문가들의 인터뷰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포착해 보여준다. 만 16세 이상 청소년들에게 교육감 선거권을 제안한 이재정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상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주역은 학생이었으며 4·19혁명을 포함한 모든 민주적 혁명엔 학생들의 힘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주역이 정치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학생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진일보하게 만든 실질적 주체임에도, 혹은 그 가능성을 지닌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은 스스로를 ‘미성숙’하며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말들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성인이 되면 어차피 갖게 되는 투표권인데 지금 갖는다고 뭐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수많은 의심과 검열은 청소년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쟁취할 수 없게끔 방해한다. 그리고 이 담론들은 청소년을 지배하는 사람들, 혹은 그들을 지배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들로부터 생산되고 강화된다.

<19禁> 스틸컷

작중 인터뷰에서 청소년인권운동가 쥬리는, 청소년 인권은 청소년 이외에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지켜준다고 말하지만 그 보호란 성인의 시혜적인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은 그들의 권리와 필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이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은 청소년이 불행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철에 이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유권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국회의원들에게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은 주된 고객이 아니다. 따라서 청소년 투표권 문제는 청소년이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19禁> 스틸컷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권운동가 이계삼 선생님은, 청소년은 성인이 보호해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동반자로서 곁에 함께 서야 할 존재라고 말한다. 인터뷰 도중 카메라는 그의 목에 걸린 세월호 목걸이를 클로즈업한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리본이 프레임에 한가득 차면 문득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청소년 그리고 그보다 어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작품의 연출자들은 19세 미만 청소년 투표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1인 피켓 시위를 직접 진행한다. 1인 피켓 시위를 끝낸 후 서로 소회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들은 말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전에는 청소년 투표권에 대해 스스로도 확답할 수 없었지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나니 찬성으로 확실히 기울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미래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1인 시위는 비록 외롭고 무서웠지만,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도 피켓에 쓰인 말을 또박또박 읽고 곱씹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또 이들이 청소년이 될 땐 꼭 투표권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19禁> 스틸컷

작품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선거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는 소식이었다. 작품이 제작된 2016년으로부터 약 3년 만의 결과다. 큰 도약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조금 더 많은 청소년들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청소년이 그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나아가 투표 이외의 참정권까지 누릴 수 있도록 사회는 더 많이 변해야 한다.

투표권을 가진 학생들 중엔 투표를 하지 않는 학생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들이 청소년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학생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얻은 것일 뿐 그 권리를 잘 행사할 수 있다고 증명해 보여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다시 영화의 후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19禁>의 감독들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고 청소년 투표권에 대한 생각을 확립하게 됐다고 했다. 사회 문제와 삶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조금 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청소년 투표권 찬성 혹은 반대’의 논의는 도덕 교과서의 공허한 연습 문제가 아닌 중요한 삶의 문제로 다가갈 것이다.

연출자들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줌으로써 <19禁>은 말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고찰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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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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