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당신과 당신이 교차하는 이 집에서

<당신과 나의 집>

윤고운 / 2019-12-26


<당신과 나의 집>   ▶ GO 퍼플레이
반박지은|2014|드라마|한국|5분

<당신과 나의 집> 스틸컷

*영화 <당신과 나의 집>의 결말이 노출되어 있는 글입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 조류의 90퍼센트가 모노가미라고 한다. 둘이 짝을 이뤄서 평생 짝으로 남는다는 거다. 신기했다. 사람은 반지를 나눠 끼고 혼인신고를 하고 별별 짓을 해도 일 대 일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때가 많지 않은가. 인류는 안 되고 조류는 된다면 그것은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거다. 물론 조류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절절한 사랑의 철학이 존재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영화 <당신과 나의 집>(반박지은, 2014)은 물론 조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들이 주인공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 집에서 알콩달콩 논다. 그런데 평범한 연인은 아닌 것 같다. 힌트가 있다. 감독은 연출노트에 이 영화가 “바람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적어두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5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짧은 영화이고,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화다.

‘바람’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니 재밌다. 봄바람, 산들바람처럼 금방 불고 지나가거나 혹은 폭풍우의 바람처럼 휘몰아치기도 하는 게 바람이다. 이러한 바람을 우리는 춤바람, 신바람 같은 말에서처럼 들뜬 마음을 가리킬 때 쓰기도 한다. 바람을 피운다, 바람이 났다고 할 때도 상대방에게 끌리는 들뜬 마음을 가리킨다.

‘들뜬 마음’이라는 감정도 참 재밌는 감정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그러니까 섹슈얼하거나 로맨틱한 만남을 갖는 데 있어서 ‘들뜬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거다. 사랑도 맹세도 필요 없다. 오직 들뜬 마음.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그것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집>에서는 연희(조아라)가 자신의 여자친구(허원)를 집으로 불러 같이 일도 하고 사랑도 나누고 요리도 한다. 사랑을 속삭이는 대사는 없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차분히 담아낼 뿐이다. 그럼에도, 누가 봐도 이들이 서로에게 들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사로운 빛이 이들을 감싸고 있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과 서로를 만지는 손길이 그윽하고 들떠있다.

<당신과 나의 집> 스틸컷

그런데 갑자기 불청객이 등장한다. 채소를 썰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키득거리는 이들 너머로 “나 왔어”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일찍 왔네” 라고 대답하는 연희와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여자친구. 아, 이제 이들의 관계가 보인다. 방금 들어온 남자는 연희의 남편이고, 연희의 여자친구는 바람 상대였던 것이다.

결혼과 연애는 다르다. 결혼은 사랑의 의미를 넘는다. 질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의 결실만으로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기야 있겠지만, 합법적인 사회 안전망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 또한 크다. 사랑해서 결혼했든 중매로 얼굴도 안 보고 했든, 어쨌든 간에 혼인 ‘신고’를 해야 하는 계약 관계인 것이다. 개인 간의 계약이기도 하고, 국가와의 계약이기도 하다.

특히 이성애 결혼은 장차 경제적 활동이 가능한(그렇게 해서 국가와 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2세를 생산할 수 있다는 암묵적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자식을 낳지 않는 이성애 부부도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교과서 삽화에는 남편과 아내, 자식의 삼위일체 가족만이 존재하지 않는가.

<당신과 나의 집>에서 연희가 남편과 결혼한 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연유로 결혼하게 된 건지는 모른다. 연희가 원래 여자를 좋아했는데 결혼은 남자랑 한 건지, 아니면 원래 남편을 정말로 사랑했는데 지금은 여자친구한테 빠져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지금도 남편을 정말로 사랑하면서 여자친구랑 연애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이 영화에는 여백이 많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영화는 이런저런 전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관객인 우리의 몫이다.

<당신과 나의 집> 스틸컷

대신 <당신과 나의 집>에서는 ‘당신’과 ‘나’를 교란시킨다. ‘당신과 나의 집’에서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연희이기도 연희의 남편이기도 하다. ‘당신’은 연희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선택된다. 그런데 이 남편은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서 자기 아내의 여자친구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집에 들어오면서 ‘누구야’ 하고 시큰둥하게 물어볼 뿐이다. 셋이 마주 앉아 식사하면서도 별다른 기색이 없다. 이 ‘집’에서 연희의 여자친구는 의심조차 못 받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내가 데려온 여자가 아내의 애인이라고 생각할 만한 남편이 얼마나 될까? 무지하고 편협한 시각은 이들의 연애를 좀 더 자유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이상하고 씁쓸한 일이다. 그녀의 존재가 이렇게 지워질 때, 연희의 여자친구는 ‘당신’이 되지 못한다. 이 집 안에서의 ‘당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집> 스틸컷

그러나,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결국 들뜬 마음이다. 어떤 사랑의 풍경에서는 존재들이 지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워진 존재는 오히려 가뿐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유희하기도 한다. 연희의 여자친구는 연희의 남편과 함께 있는 집에서 연희의 ‘당신’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남편이 오기 전에 그녀는 어엿한 ‘당신’이다. 남편이 온 집에서도 연희와 여자친구는 ‘당신’과 ‘나’의 관계를 교란시키고, 이 집은 누구의 공간인지 묻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여백이 많은 것은 미덕이다.

우리는 이들을 보며 그리고 이 공간을 보며 연희가 여자친구와 함께 만든 음식을 남편과 셋이서 먹는, 그래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마지막 장면을 보며, 앞으로 이 관계와 공간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한다. 답은 모른다. 해피엔딩이 되기에는 물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이 기묘한 집에서 서로의 들뜬 마음을 유희하는 두 연인의 다음이 많이 궁금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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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보호> 공동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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