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침묵 대신 핏빛 복수를!

<리벤지>

홍재희|영화감독 / 2019-12-26


<리벤지>(Revenge) 
코랄리 파르쟈|2017|액션, 스릴러|프랑스|108분|청소년 관람불가

<리벤지> 스틸컷 ©다음

2018년 국내 개봉작인 프랑스 영화 <리벤지>(코랄리 파르쟈, 2017).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미국 영화 두 편이 있었다. 공포 스릴러의 고전이자 2010년 이후 리메이크 시리즈로 제작된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메어 자르치, 1978)와 B급 영화 <건 포 제니퍼>(토드 모리스, 1997). 아마도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들을 찾아내 처단, 응징하는 여성 복수극이라는 서사가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리벤지> 역시 전형적인 복수 서사를 따라가는 액션 스릴러다. 하지만 신체 절단, 관통, 출혈 등 폭력적인 장면을 세밀히 묘사한 탓에 생존 스릴러보다 피 칠갑 호러에 가깝다. 2017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을 당시, 과장을 좀 보태 영화를 보다 실신한 관객이 속출(믿거나 말거나)했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나 마나 한 킬링 타임 B급 영화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영화적 몰입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201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부천 초이스’ 작품상을 수상한 완성도 높은 영화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여성 감독 코랄리 파르쟈의 장편 데뷔작. 데뷔작으로 피 튀기는 복수극을 선택한 감독에게 짝짝짝 큰 박수를.

<리벤지> 스틸컷 ©다음

부유한 유부남 친구 세 명이 사막으로 사냥 여행을 떠난다. 사냥은 이들만의 연례행사. 하지만 이번엔 그중 한 명인 리처드(케빈 얀센스)가 애인 젠(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을 데려온다. 아름답고 섹시한 젠은 곧 다른 남자들의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리처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성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젠이 성폭행을 신고하면 자신의 외도가 들통날까 봐 합의금으로 젠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리처드. 분노한 젠이 거절하자 리처드는 그에게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른다. 공포에 질려 도망친 젠은 세 명에게 쫓기다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그리고 젠이 죽은 줄 알고 안도한 세 명의 남자들에게 무자비한 복수가 시작된다.

영상미가 빼어난 영화 <리벤지>는 잔혹하고 통쾌한 여성 액션을 볼 수 있는 복수극이다. 그렇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서사를 핑계 삼아 폭력을 미화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홍콩 느와르의 대부 오우삼 감독의 영화는 총알이 난무하고 사방에 피가 흘러넘쳐도 액션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주인공이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도 육체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존 윅> 시리즈도 있다. 그에 반해 <리벤지>에서는 등장인물이 배를 관통한 나무 조각을 빼낼 때의 고통, 유리 조각에 베인 발바닥이 느낄 고통을 말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고통을 상상하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남 일처럼 가만히 앉아서 재미로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리벤지>는 고통 없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젠이 높디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나뭇가지에 몸을 관통당하고 피를 한 바가지 넘게 흘리고도 멀쩡히 살아났다는 사실에 뻥이 지나치다고,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딴죽을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쉽게 죽어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던가.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장르의 법칙이다. <람보>에서부터 <엑스맨>, <어벤져스>까지 액션 영화의 수많은 남성 영웅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거나, 죽을 뻔한 위기를 구사일생으로 넘긴다. 이렇듯 영웅 서사에서 고난과 시련(죽음)을 이겨낸 주인공은 기적처럼 부활하여 초인으로 재탄생한다. 그런데 영웅은 왜 꼭 남성이어야 하나. 영웅 서사에 왜 성별과 젠더에 차이가 있어야 할까. 이 영화가 기존의 복수극과 다른 미덕이 있다면 장르 영화의 성별 역학관계를 전복한다는 것. <리벤지>는 영웅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어 놓는다.

<리벤지> 스틸컷 ©다음

죽음의 코앞에서 사경을 헤매던 젠은 리처드가 자신에게 잘 보관하라 건네줬던 마약 성분의 천연 약초가 있다는 걸 기억해낸다. 영리한 감독은 영화 초반부에 환각에 취하면 제 다리를 잘라내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라는 대사를 복선으로 심어둔다. 그리고 이 복선은 약에 취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된 젠이 스스로 상처를 절개하고 관통한 나뭇가지를 손으로 끄집어내는 개연성으로 작동한다. 성폭력으로 살해당한 채 사막에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힐 뻔했던 젠은 태초에 생명을 품은 어머니, 여성의 자궁을 연상시키는 동굴에서 극한의 고통을 이기고 장렬하게 부활한다. 유부남 애인과 밀회를 즐기는 것 말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평범하기 그지없던 한 여성이 상상할 수 없었던 폭행을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복수를 감행하는 초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젠의 아랫배에는 콘도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선명하다. 출혈을 막고자 불로 지진 화상 흉터가 날개를 활짝 편 콘도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콘도르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을 지닌, 아메리카의 원주민 잉카인들이 신성시한 새다. 잉카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굳게 믿었다. 성폭력 피해자인 젠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여 전사로 거듭난다. 다시 태어나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콘도르가 된 것이다. 젠은 총을 들고 가해자들을 찾아 복수에 나선다. 그리고 그가 가해자 남성들을 처단해 나가는 과정 내내 아드레날린을 장착한 선혈이 스크린에 낭자하다.


<리벤지>는 자극적이지만 감각적인 영상미와 도발적인 음악이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70년대 유럽 예술영화를 연상시키는 듯 화려한 색감과 구도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영화 곳곳에 서양문화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상징과 은유, 비유적 장치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도입부에 카메라는 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클로즈업한다. 이후에도 썩어가는 사과가 등장하는데 사과는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와 겹친다. 리차드는 ‘아담’처럼 벌거벗은 채 피범벅이 된다. 성폭행을 저지른 리차드의 친구는 혀를 날름거리는 도마‘뱀’으로 형상화된다. 별장 거실에 걸린 성녀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그림도 의미심장하다.

부천영화제 기간에 내한한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말이다. “사막의 별장은 남성들의 권력과 힘, 부유함을 상징하죠. 하지만 이들이 약해지면서 그들의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해요. 영화 마지막 장면은 다시 별장으로 돌아가죠. 결말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은 남자들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젠이 승리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어요.”

영화는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여겨 성폭행을 저지르는 남성과 성폭행을 목격하고도 이를 방관하는 남성 그리고 성폭행 자체를 묵인·동조하는 남성이 범죄를 공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우월주의와 남성 권력의 속성을 세 남자의 캐릭터를 통해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감독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감독은 또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이 세상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당연히 남성과 같은 권력과 자유를 지녀야 해요. 페미니즘의 끝은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때 완성됩니다.”

<리벤지> 스틸컷 ©다음

성별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는 세상은 누구에게나 진정 자유로운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한 쪽 성에게만 안전과 자유가 주어지는 세상이란 불완전한 세상이다. 성별과 젠더의 구별 없이 한 사람의 인간 그 자체로서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가능하지 않은 판타지라면 스크린 속에서나마 이에 도전하고 현실을 전복하는 꿈을 꿀 수 있는 법.

실제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사막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엄청나게 피를 흘려도 죽지 않고 남성의 이마에 총질을 서슴지 않는 여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별이 달라진다고 해서 액션 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쾌감에 차이가 나야 할 이유는 없다. 가해자에게 총구를 겨냥하며 피비린내 나는 복수에 나선 여성 주인공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그야말로 성별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것이다. 감독이 영화적 리얼리티를 과감히 건너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리벤지>는 수천 년간 남성 우월적인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은 ‘이브’의 처절한 복수 판타지는 아니었을까.

(덧붙여 남성 감독이 연출한 <리벤지>(호세 마뉴엘 크라비오토, 2015)라는 동명 미국 영화도 있다. 성폭행이라는 범죄에 희생된 여성 주인공이 가해자를 찾아 응징한다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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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암사자(들)> 등 연출, 『그건 혐오예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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