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보말, 노루, 비자나무, 사람>과 <비건 식탁>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이아림 / 2023-06-01


<보말, 노루, 비자나무, 사람>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박한나|2022|다큐멘터리|한국|23분 43초|월드 프리미어
<비건 식탁>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김문경, 허성|2022|다큐멘터리|한국|20분 29초


<보말, 노루, 비자나무, 사람> 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보말, 노루, 비자나무, 사람>은 ‘휴지를 먹는 다람쥐’를 보았다는 한 활동가의 목격담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목도하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는, 파괴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서 시작되는 영화가 스크린상에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제주의 자연이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활동가들의 자기 진술은 대부분 자연의 경고를 몸소 느꼈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수치로 나타난 객관적인 지표, 즉 당장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정보가 아니라 내일이라도 얼마든지 나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는 촉각적 위기감은 매일 바다에 나가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습관을 만들고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만든다. 과거의 경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급변하는 자연의 소용돌이 앞에서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모색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개인의 행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벽을 느끼고, 제주에서 벌어지는 환경 위기에 대한 증언으로 시작한 그들의 목소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무기력으로, 그리고 종국엔 기후 위기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설득적 메시지로 변모한다.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며,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관객인 당신의 행동이 촉구된다고 역설한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증언, 그리고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강한 설득의 목소리와 실제 그 심각성을 감각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결합된, 다분히 의도적인 형태를 가지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설파한다.

하지만 두 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스크린에 담긴 제주의 자연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자연의 모습은 거칠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는데, 자연 그 자체의 모습과 인간이 조성한 인공 자연, 그리고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이 그것이다. 이 영상들이 무작위로 배열되면서 과연 인간은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인지 질문한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존재인가? 환경을 파괴하는 데 있어서 철저하게 행동의 ‘주체’였던 인간이 환경 파괴를 저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화면 바깥의 활동가들의 회의와 희망이 겹쳐져 더 깊은 곳을 파고든다. 지구 공동체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노력해 보자’라고 발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것은 지구를 위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비건 식탁> 스틸컷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비건 식탁>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행동하지만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무기력함이 담긴 이러한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한 사례를 보여준다. 제주로 입도한 이후 비건을 시작했지만 버터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송현애는 캐슈넛으로 비건을 위한 버터를 만든다. 그러다 제주 한살림 조합에서 버터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통해 버터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제주산 타이거너츠를 활용한 버터가 탄생한다. 마치 <카모메 식당>,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등 고바야시 사토미 주연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초반부의 장면을 지나, 서울에서 송현애가 겪었던 전사(前史)가 잠시 스친 이후 그녀의 비건을 위한 버터 만들기는 ‘비건의 세계’로 그녀가 진입할 수 있게 만든 초대장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모두 ‘효율’과 ‘대량’을 추구하며 상처받은 모든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었다는 것 또한. 

직접 만든 비건 버터 판매를 문의하기 위해 방문한 한살림 조합 마켓에서 그들이 이미 현애의 버터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버터를 구매하기 위해 직접 매장까지 찾아준 손님들이 있으며, 타이거너츠 버터와 협업을 하고 싶다는 식당이 있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디서 왔는지, 누가 키웠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모두 알고 있는 식탁’이 되어 느슨한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비건 커뮤니티가 건강한 삶(들)을 잇게 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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