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나의 첫 영화 연출기
나빠져도 버티기 위하여
<채민이에게> 제작기
배채연 / 2022-09-27
‘처음’이란 말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설렘이기도 두려움이기도 한 그것! 우리가 사랑하는 여성 감독들의 처음은 어땠을까요? 여전히 두근두근 소중한 기억일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부끄러움의 시간일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감독들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첫 영화 연출기’를! 영화제작 과정부터 우당탕탕 좌충우돌, 따뜻한 메시지까지 < MY FIRST >에서 만나보세요! |
배채연 감독 필모그래피 2020 <채민이에게> 감독 2019 <내 사랑, 그대를 사랑하오> 감독 ▶ <채민이에게> 보러 가기 |
졸업이고 뭐고 편지를 쓰고 싶었다
2월 27일, 네덜란드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고 3월 15일, 전국적인 락다운이 시작됐다. 학교를 포함해 ‘필수 업종’을 제외한 곳이 모두 문을 닫았고, 장을 보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 되었다. 당시를 통과하던 수많은 이들처럼 온종일 새로고침하며 확진, 입원, 죽음을 세는 숫자를 확인했다. 1월 20일에 첫 확진자가 나온 한국은 이미 수백 명의 확진자에 번호를 붙이며 동선을 공개하고 있었다.
2020년의 이야기고,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 전시는 7월에서 9월로 미루어졌고, 그보다 준비하고 있던 졸업작품이 쓸모없게 느껴졌다. 지금 디자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이데거의 표현으로는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보는’ 상상을 매일 했고, 그냥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채민이에게>는 시작됐다. 시각언어에 훈련되어 있었고 분명히 그렇게 끝나야 졸업을 할 테지만 다짜고짜 편지를 쓰고 고치기만 반복했다.
<채민이에게> 스틸컷
오토픽션이라는 형식
“반틈은 고백이었고, 반틈은 소설이었다. 거짓은 없었다.” (채민이에게, 2020)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이 “이기적”이고 “불쾌한” 일이 되었을 때 (박준홍 등 2020), 아시아인 얼굴을 한 나는 장을 보러 오가며 ‘코로나’ 소리를 들었다. 팬데믹은 한국의 퀴어 커뮤니티와 유럽의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더욱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한국의 퀴어도, 아시아계 유럽인도 아닌 채로 무력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적 관찰자(view from above)도 아닌, ‘벽에 붙은 파리(fly on the wall)’ 같은 1인칭 관찰자도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눈으로, 몸으로부터의 시선(view from a body)으로 팬데믹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Haraway 1988).
그래서 오토픽션이었다. 함께 코로나19를 통과하고 있는 퀴어/아시안/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들을 증언대에 세우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하고 싶었다. 팩트와 픽션의 경계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삶을 모을 수 있었다. 신문 기사, 블로그 게시물, 학술 논문과 문학 작품을 ‘인용’하고 애인(들)과 친구(들), 가족(들)의 이야기로 재편하면서 친밀한 공동체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보단 디자인의 태도로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의 사이를 탐색했다.
이 이야기가 지나갈 것은 알지만
“이 편지의 수명이 짧을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말이 지나간 이야기가 될 것도. 그렇지만 기억을 위해서 썼다.” (채민이에게, 2020)
이전에 계획하던 졸업 작품을 진행했다면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채민이에게>를 쓰고 만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작업’이 수명이 짧으리라고도 추측했다. 팬데믹은 언젠가 끝날 테고, ‘뉴노멀’의 시대에서 이 작품이 순간에 대한, 그래서 지나간 이야기가 되기를 나도 바랐던 듯하다. <채민이에게>에도 그런 표현을 쓰긴 했지만, 작품을 다듬어 나갈수록 이 팬데믹의 이전과 이후의 날카로운 분리가 낭만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만 팬데믹은 끝이 나는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나 기대가 없어도 삶과 운동은 지속”되는 것처럼, “더 나은 미래라는 착각” 없이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루인 2019).
이런 점에서 제작을 마치고 2년이 지난 지금, <채민이에게>가 아카이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오토픽션 영화를 이론화한 Forné and López-Gay (2022) 의 말처럼 이 형식은 개인의 입장에서 현실을 아카이브 하면서 집단적인 기억(collective memory)을 형상화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감상하는 입장에서 기억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기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연대의 정치에 기여하게 된다면 <채민이에게>는 그 역할을 다한 것 같다.
<채민이에게> 스틸컷
영화가 될 줄은 끝까지 몰랐다
졸업하면서 선생님이 주신 영화제에 출품해보라는 조언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만큼이나 전시와 상영의 경계를 오갔다. 분명히 영화로 명명되면서 더 넓고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연출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분들과 함께 대화를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채민이에게>에서 어디까지가 고백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도 또 다른 어디에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바로 그 모호함에서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이런 방식의 말하기를 허락해 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그리고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 누구보다도 채민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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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루인. 2019. 더 나은 미래라는 착각. 핀치. Accessed September 10, 2020. https://thepin.ch/think/msb1N/ruin-column-2019-01.
-박준홍, 백지혜, 이지나, 정희선. 2021.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를 통해 본 소수자에 대한 사회공간적 배제: 이태원 클럽 감염을 중심으로.” 국토지리학회지 55 (2): 137–54.
-Forné, Anna, and Patricia López-Gay. 2022. “Autofiction and Film: Archival Practices in Post-Millennial Documentary Cinema in Argentina and Spain.” In The Autofictional: Approaches, Affordances, Forms, edited by Alexandra Effe and Hannie Lawlor. Palgrave Studies in Life Writing Series. London: Palgrave.
-Haraway, Donna. 1988. “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 Feminist Studies 14 (3): 57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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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이에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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