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나의 첫 영화 연출기

말도 안 되는 유행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제작기

배꽃나래|영화감독 / 2020-06-11


‘처음’이란 말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설렘이기도 두려움이기도 한 그것! 우리가 사랑하는 여성 감독들의 처음은 어땠을까요? 여전히 두근두근 소중한 기억일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부끄러움의 시간일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감독들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첫 영화 연출기’를! 영화제작 과정부터 우당탕탕 좌충우돌, 따뜻한 메시지까지 < MY FIRST >에서 만나보세요!

배꽃나래 감독 필모그래피
2019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연출
2016  <트러스트폴> 공동연출
▶ GO 퍼플레이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스틸컷

할머니의 적당한 핑계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걸 평생 모를 뻔했다. 그는 은행에 갈 때마다 초등학생인 나를 데려갔다. 은행은 꽤 멀리 있었는데 늘 따라갔다. 은행에 다녀오는 길이면 아이스크림을 사줬기 때문이다. 처음 은행에 간 날은 더운 여름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민은행 ATM기 앞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기계 앞에 서 있었고, 나는 에어컨 아래 있었다. ATM기 화면을 만지작거리다가 글씨가 잘 안 보인다며 나를 불렀다. 할머니가 할머니라(?) 기계를 잘 못 다루는 줄 알았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할머니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적당한 핑계를 대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할머니는 친구를 따라 한글학교에 간다고 했다. 그때도 할머니가 기억력이 나빠져서 한글을 까먹었구나 싶었다.

영화를 찍게 된 계기
2018년 3월 홍콩에 다녀왔다. 관광객이 적은 곳을 알아보다가 라마 섬이라는 섬을 알게 되었다. 같이 간 친구가 주윤발을 좋아했는데, 그 섬이 주윤발의 고향이기도 해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 그 섬에서 파는 냉 두부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냉 두부 집을 찾아갔다. 메뉴판이 전부 광둥어로 적혀 있어서 영어로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었다. “Ice! Ice!” “Cold! Cold!” “Tofu! Tofu!” “두부요 두부.” 온갖 단어로 냉 두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손을 불면서 추운 흉내도 내보고, 두부를 만드는(?) 흉내도 냈다. 역시 실패했다. (이 모습을 촬영했다면 정말 웃긴 장면이 탄생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두부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줬더니, 사장님이 알아챘다는 눈빛을 보내며 두부 한 그릇을 내오셨다. 두부 사진을 찍고, 한 숟가락 먹는데 따뜻한 열기가 입에 찼다. 따뜻한 두부였다. 머쓱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읽지 못하는 문자로 둘러싸인 세상에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얼마큼의 시간을 문자 앞에서 두리번거렸을까.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을 기록하지 못하고 산다는 건 어떤 걸까.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스틸컷

영화를 기획하면서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는 여성과 문자, 기록, 권력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문자를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이 어떻게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는지. 역사는 권력이 있는 사람의 손과 입을 통해 전해지고, 주로 그 손과 입을 가진 사람은 남성이었다. 처음 한글이 만들어졌을 때의 기록을 찾아봤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글이 암글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암글은 ‘여자들이나 쓸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을 낮잡아 이르던 말’이었다. 반대로 한문은 수글이라 불렸는데 이는 ‘배워서 잘 써먹는 글’이라는 뜻이었다. 문자 세계에서 배제된, 한문을 배우지 못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한글. 한글의 창제 순간에서도 여성은 감히 낄 자리가 없었다.

촬영 에피소드
카메라를 들고 집에 가서, 할머니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까 카메라 치우라는 말만 했다. 할머니가 치우라고 할 때마다 카메라를 내려놨다. 그렇게 녹화 버튼과 정지 버튼을 누르면서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왜 이렇게 진동(당시 키우던 개)이처럼 자기를 쫓아 다니냐고 했다. 그러다 카메라 치우라는 말을 하지 않던 날, 첫 인터뷰를 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짜이씨!”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저는 안치연입니다. 안자 치자 연자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자기소개를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나는 어디 가서 자기소개 못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 인터뷰가 끝난 뒤 할머니의 유전자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영화에는 할머니와 같이 한글학교에 다니는 여성들이 나온다. 이분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녀회장인 엄마 찬스를 쓰기도 했고, 워낙 재밌는 분들이기도 했다. 내 머리가 짧아서, 손자가 무슨 일로 따라왔냐는 질문에 손녀라는 것만 증명(?)하면 됐다. 처음 한글학교에 따라간 날은 핸드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다음은 땅콩사탕과 캠코더, 그다음은 과일과 캠코더, 삼각대를 들고 갔다. 이런 식의 단계를 밟으며 수업을 촬영했다. 그러다 좀 친해지면 집에 놀러갔다. 이 여성들은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걸 재밌어했다. 한 번 인터뷰를 하러 가면 기본 2시간을 넘겼다. 나이 많은 여성들이 말 많다는 얘기를 다시 생각해봤다. 어쩌면 이 여성들은 말을 통해 서로에게 기억되고, 기록되는 게 아닐까.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스틸컷

한글이 아닌 다른 방식의 기록
오랜 시간, 여러 번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한글을 왜 배우지 못했는지, 한글을 읽지 못해서 서러웠거나 외로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몰래 학교에 가려고 보리밭에 숨어 있다가 엄마가 보리밭까지 쫓아와서 두들겨 맞았던 일, 결혼 후 남편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가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을 들었던 일, 식당에서 메뉴를 읽지 못해 가격만 읽었던 일. 할머니는 계속 자신이 못하고, 모르고, 부끄러운 얘기만 하니 재미없어 했다. 나도 재미없었다. 할머니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문득 그가 예전에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한테 문신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주신 몸에 무슨 여자가 문신을 하냐면서 혼을 냈다. 그러다, 그런데 자기도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비슷한 걸 하면서 놀았다고 하더라. 실에 먹물을 묻히고, 바늘로 살을 떠서 몸에 점을 남기는 게 유행했다고 했다. 그 점을 새기고 노는 걸 ‘기릉지’라고 불렀다고. 난생처음 들은 단어였다. 인터넷에 기릉지를 검색했더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말이었다. 대신 점상 문신이라는 말은 있었다. 한국의 현대 타투는 과거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점상 문신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재밌는 얘기가 알려지지 않았다니. 기록하지 않기에는 너무 아까운 역사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은 그 점에 대한 영화이다. 종이 위에도 없고, 명확한 이름도 없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그 점.

<누구는 알고 누구는모르는 > 스틸컷

어려움과 고민
촬영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촬영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냐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오히려 여성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힘이 생겼다.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재밌었다. 90살이 다 된 할머니가, 어른들 몰래 둥글게 모여 팔에 점을 새겼었다고 말하니, 꼭 나도 그 무리에 있던 사람처럼 팔 언저리가 저릿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어려웠던 건 돈 버는 일, 그뿐이었다. 평일 밤에는 밤새 알바를 했고, 퇴근하면 편집실에 갔다. 낮에는 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는 촬영하러 논산에 내려갔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내내 회의감이 들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작업한다는 건 사치 아닐까.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한다. 먹고 사는 일 말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온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면 좋겠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사치라는 생각 없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영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궁리 중이다. 영상을 매체로 작업하는 일은 재밌다. 영상은 내가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이다. 이 일을 그만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 즐거움을 어떤 다른 일을 하면서 대체할 수 있을지 아직 찾지 못했다. 큰일이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스틸컷

끝내며
처음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날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왔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 몇 분이 할머니한테 와서 티켓 위에 할머니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은근 관종(?)이라 즐기다가 가셨다. 당분간은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를 GV에 부를 수 없어 아쉽다. 얼른 이 상황이 끝나면 좋겠다. 할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영화에 나오는 진동이는 2019년 1월 5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근황을 궁금해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덧붙입니다.)

최근에는 다른 여성 감독님들의 소식을 본다. 인터뷰 영상이나 팟캐스트도 한 번씩 듣는다. 주변에 영화하는 여성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들의 소식을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다들 영화로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다. (퍼플레이 관계자분들 포함, 저도 포함…)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좋은 영화,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게을러진다. 덜 검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외장하드에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만큼 망한 영화가 5000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게 시작하고 대충 끝내고 싶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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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트러스트폴>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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