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나의 첫 영화 연출기

믿음으로 밀고나가기

<비하인더홀> 제작기

신서영|영화감독 / 2020-06-18


‘처음’이란 말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설렘이기도 두려움이기도 한 그것! 우리가 사랑하는 여성 감독들의 처음은 어땠을까요? 여전히 두근두근 소중한 기억일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부끄러움의 시간일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감독들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첫 영화 연출기’를! 영화제작 과정부터 우당탕탕 좌충우돌, 따뜻한 메시지까지 < MY FIRST >에서 만나보세요!
신서영 감독 필모그래피
2019  <비하인더홀> 연출

<비하인더홀> 스틸컷

<비하인더홀>(2019)은 2018년도 졸업영화로 제작한 단편이다.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2018년 5월에 소재를 정한 뒤 10월에 촬영을 시작했고 지난해 3월 최종 후반을 마쳤다. 제작 과정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써본다.

#계기

종종 ‘현실이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여자 화장실을 가면 심심치 않게 벽의 구멍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구멍들은 휴지, 실리콘, 퍼티(빠데·표면에 생긴 흠집을 메울 때 쓰는 아교풀 같은 것) 등으로 메워져 있었다. 

뉴스를 보면 매번 비슷한 헤드라인이 반복됐다. 범죄자들의 직업만 다를 뿐 뒤에 붙는 말은 하나같이 ‘화장실 불법촬영하다 걸려’ 같은 것들이었다. ‘몰카금지 응급키트’란 이름의 상품이 판매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멍 뒤에 실제로 몰래카메라 렌즈가 있는지 체크할 수 있는 작은 송곳도 포함되어 있었다. (송곳으로 구멍이 있는 곳을 뚫어 렌즈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 몰카가 설치돼있는 것이다.) 이게 블랙코미디가 아니면 뭘까?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회의 단편들을 모아 블랙코미디를 찍기로 했다. 

<비하인더홀> 스틸컷

#겁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를 소재로 정하고 나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회적으로 한창 예민한 소재를 푸는 것, 그것도 코미디란 장르로 풀려는 것, 결말이 너무 충격적인 것 등등. 그런 우려를 들을 때마다 겁이 났다. ‘내 그릇에 넘치는 소재를 다루려는 걸까?’ ‘내 의도가 정반대로 왜곡되어 전달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이 소재와 형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불법촬영’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아울러 이런 사회 문제들을 하나하나 풍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블랙코미디 장르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겁이 나긴 했지만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드는 내내 이에 대한 고민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공감이 갔다’ ‘결말이 통쾌했다’ 등의 이야길 들으면 얼마나 큰 안도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정희

주인공 정희(정수지)는 내가 관객으로서 보고 싶었던 캐릭터였다. 미디어 속 많은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거나 어떤 문제에 감정적인 반응만 보여주다 끝나는 것에 지쳤었다.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영화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캐릭터 정희가 나왔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땐 정희가 왜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는 신을 넣었었다. 불법촬영 범죄에 왜 이렇게 크게 불안해하는지, 왜 무뚝뚝한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정희가 과거 이 범죄를 겪은 피해자였고 그로 인해 마음을 닫게 됐다는 식의 신을 넣었었다. 하지만 정희에 대한 윤곽이 잡혀갈수록 오히려 그 이유는 없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화장실을 못 갈 만큼 두려움을 느끼는 것, 젊은 여자가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성격인 것 모두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이었다. 수정 단계에서 정희의 성격에 대한 설명 신을 모두 빼버렸다. 잘한 선택이었다. 

<비하인더홀> 스틸컷

#캐스팅

캐스팅을 잘했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캐스팅에 있어선 정말 운이 좋았던 편인데 두 주연 배역 모두 오디션 없이 한 번에 캐스팅에 성공했다. 처음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내 머릿속엔 박 부장(김재현)과 정희의 이미지가 선명했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 단편 영화와 웹드라마들을 보며 배우를 찾다가 재현 님과 수지 님을 보았다. 내가 찾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는데 이상하게 ‘이 분이다!’ 하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직접 뵙기도 전 이미 나는 두 분과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두 분 모두 시나리오를 좋아해 주셔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두 분과의 작업은 정말 행복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매력적으로 캐릭터를 표현해주셨다. 무엇보다 두 분 다 정말 따뜻하셨다. 열악한 환경에도 항상 밝게 스태프들을 배려해주시고 나를 응원해주셨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비하인더홀> 촬영 현장 ©신서영 감독 

#촬영

이 영화를 전담해줄 조연출을 끝내 구하지 못했었다. 총 7회차를 촬영했는데 회차마다 조연출을 새로 구해야 했다(그래서 조연출 크레딧에는 5명의 이름이 뜬다). 전담 조연출의 부재는 촬영감독님이 대부분 메워주셨다. 그 부분이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촬영감독님은 내가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꼭 함께하고 싶었던 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가장 잘 담아내 주실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삼고초려하며 부탁드렸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잘했던 일 중 하나였다. 

제작 과정 내내 많이 의지했다.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쏟아졌는데, 그때마다 바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제안해주셨다. 쏟아지는 문제들로 멘붕에 빠졌던 나는 덕분에 금방 빠져 나와 계속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정말 배우고 싶은 태도였다.

<비하인더홀> 촬영 현장 ©신서영 감독 

#세트

현실적인 부분에서 가장 걱정했던 건 화장실 칸 내부 촬영이었다. ‘그 좁은 곳에서 대체 어떻게 촬영을 하지?’ 한 두 컷 찍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화장실 내부는 메인 장소 중 하나였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키 스태프들과 회의 후 화장실 세트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두 미술 감독님께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두 분의 능력과 고생으로 화장실은 멋지게 완성됐지만 세트 촬영은 정말 쉽지 않았다. 카메라 위치가 바뀔 때마다 벽을 해체하고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또 워낙 좁은 공간인데 반해 중요한 감정 신이나 까다로운 액팅이 많아 여러모로 어려움이 컸다. 세트 촬영은 이틀하고 반나절이 걸렸는데 고생 끝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계속 걱정했던 것을 끝냈다는 것이 신기했고,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이게 진짜 잘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마주해야 했다. 불안하고 막막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무작정 밀고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믿으려 노력했고 다행히 그 믿음대로 영화는 잘 완성됐다. 요새는 다음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언제 소재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일과 병행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또다시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이번에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될 거야’라고 무작정 믿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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