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씨네펨X퍼플레이] 퍼플프레임 기획전 ➁여성의 몸 탐구하기

<머리카락> <겨털소녀 김붕어> <개학>

퍼플레이 / 2021-12-21


2021.9.9.|[씨네펨X퍼플레이] 퍼플프레임 기획전 ➁여성의 몸 탐구하기 
<머리카락>  ▶ GO 퍼플레이
<겨털소녀 김붕어>  ▶ GO 퍼플레이
<개학>  ▶ GO 퍼플레이 

여성영화 시네마테크 ‘씨네펨’과 퍼플레이가 만났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는 [퍼플프레임] 기획전을 9월 한 달간 매주 목요일 저녁 트위터 ‘스페이스’를 통해 진행합니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연결돼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주고받는 영화 토크를 퍼줌에서 만나보세요.  
진행자: 춘삼(씨네펨 운영진)
토커: 핑구, 아카(씨네펨 운영진), 
<머리카락> 이미해 감독


<겨털소녀 김붕어>(정다히, 권영서, 2017)

춘삼: 오늘은 여성의 신체에 대해 여러 시각을 다루는 여성영화 세 편을 묶어서 소개합니다. 이미해 감독님의 <머리카락>은 다른 두 단편을 다룬 뒤 세 번째 작품으로 다룰 예정이에요. 먼저 소개드릴 작품은 <겨털소녀 김붕어>인데요. 이 작품은 러닝타임 7분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정다히, 권영서 두 감독님의 협업작이죠. 제목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이전부터 알고 있던 작품이에요. 김붕어라는 14살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고, 수영을 굉장히 잘하는 친구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겨드랑이 털이 나기 시작하죠. 털이 자아를 갖고 행동해서 붕어가 털을 자르려고 하면 잘리지 않기 위해 털이 이리저리 피해 다니잖아요. 발상이 너무 독특하고 귀여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은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핑구: 보통 처음에 우리가 2차 성징을 겪을 땐 굉장히 당황스럽잖아요. 저도 겨털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처음엔 한 가닥이 났어요. 어렸을 땐 ‘이게 뭐지?’ 하고 손으로 뽑았죠. 근데 너무 아픈 거예요. 겨털을 자르려고 잡아당기는 붕어가 딱 저였어요. 붕어한테서 저의 초등학교 6학년 때가 보였죠. 아직도 기억나는 게 털을 뽑았는데 다음 날 또 난 거예요. 너무 화가 났죠. 그래서 가위로 잘랐거든요. 근데 뽑으면 더 두껍게 나잖아요. 돌아버리겠는 거예요. 붕어도 털을 자르려고 하는데 점점 수북해지고 머리카락보다 길어지니까 감당을 못하잖아요. 2차 성징을 겼었을 때의 감정이나 경험을 애니메이션으로 재미있게 표현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아카: 겨드랑이 털이 나던 순간을 목격한 경험은 없어서 처음 생리했을 때 감각을 기억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속옷에 피가 묻었을 때 창피하고 당황스러웠거든요. 서랍이나 지퍼 백에 숨기고 그랬죠. 저도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처음 접했는데 제목부터 굉장히 강렬하고 보고 싶게 만들잖아요. 영화제에선 매진돼서 못 봤었는데 이 작품이 퍼플레이에 딱 있는 거예요. 정말 반가운 마음이었고,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좋았던 장면 

춘삼: 엔딩크레딧 다음에 나오는 장면이 좋았어요. 엔딩크레딧을 보면 엄마와 붕어가 함께 앨범을 넘겨보는 장면이 있어요. 옛날 사진에 붕어 엄마도 겨털이 엄청 길었던 시절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엄마와의 관계도 짚고 넘어가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핑구: 붕어가 겨털을 자르려고 하는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거기서 겨털이 자아를 갖고 있는 게 드러나잖아요. <겨털소녀 김붕어> 2편이 나온다면 그 친구의 고집을 집중적으로 담아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겨털이 고집이 있지만 도와줘야 할 땐 도와주는 친구잖아요. 수업을 들을 때 붕어가 모르는 문제에 대신 답을 해준다거나 하는 장면이 있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비범하고 영재적인 겨털의 면모가 드러나는?

아카: 라따뚜이 같이. (웃음) 
저는 털 때문에 실의에 빠져있는 딸에게 엄마가 다가가서 엉킨 털을 빗어주며 “에센스도 발라볼까?” 했던 장면이 좋았어요. 한창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고 염색하는 붐이 있었잖아요. 반려동물처럼 브이하고 사진도 찍고 SNS에서 붐이 인 적이 있었죠. 같은 털인데 머리에 붙어있으면 길게 유지하면서 빗어주고 펌도 하고 에센스도 발라줘야 하는 관리 대상인 반면, 겨드랑이나 다리, 인중에 붙어있으면 척결의 대상이 되잖아요. 그게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는데 그런 관념들을 뒤집은 장면인 것 같아요. 붕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걸 제거하기보단 긍정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인식을 전환하게 해주는 장면이었죠. 

<개학>(김경주, 2019) 

춘삼: <개학>은 박수연 배우님 주연의 작품으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죠. 김경주 감독님이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시는 것 같아요. <개학>은 당장 다음날이 개학인 여성 청소년이 남자 의대생에게 낙태 시술을 받게 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중간 장면까지 너무 두려웠어요. 주인공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낯선 어른과 함께 있는 여성 청소년을 볼 때 들게 되는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운 감정들 때문에 저에게는 공포영화처럼 느껴졌어요. 주인공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시술을 받으러 가기 전에 주인공이 공중화장실에서 우비를 꿰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벽에 피가 묻어 있잖아요. 그것들을 보면서 이 청소년을 여기까지 몰아넣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은 영화의 첫인상이 어떠셨는지요. 

<개학> 스틸컷

핑구: 저도 굉장히 불안했어요. 보통 여성 청소년과 낯선 성인 남성이 함께 있거나 특히 침침한 여관 같은 곳에 있는다고 했을 때 다른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보통 여성이 해코지를 당한단 말이죠. 그래서 혹시라도 이 친구가 그런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한편으론 문제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저는 너무 힘들어서 안 봐요.

아카: 임신이 굉장히 무섭게 다가왔어요. 현실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을 보면 걱정을 안 할 수 없게 되죠.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어요.

춘삼: 미국 텍사스주의 심장 박동법이 최근에 문제가 됐죠. 이에 대해서 여러 여성 영화인들도 저항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게 임신 6주 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으로 알려져 있어요. 근데 사실 6주까지는 (티가 별로 안 나기 때문에) 자신이 임신했는지를 쉽게 알 수 없고 강간, 근친에 의한 임신이더라도 낙태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법안이죠. 그래서 저도 이 영화 볼 때 그 법안이 생각났어요. 

#좋았던 장면
 

핑구: 낙태시술을 해주는 의대생이 주인공을 협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스트 샷으로 인물의 표정만 보여줌으로써 두려움을 묘사하고 둘 사이의 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춘삼: 두 캐릭터가 대치하는 장면들이 보는 이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잖아요. 그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고민이 보인 것 같았어요. 누굴 더 길게 잡고 짧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잘 나타나서 연출의 세심함이 느껴졌습니다. 

아카
: 좋았다는 표현으로 수식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모든 장면이 너무 무섭고 걱정되고 두렵다보니까 ‘저것은 영화다’라는 분리된 감각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어요. 다행인 장면을 꼽는다면 주인공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장면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돌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춘삼
: 저도 그 장면 꼽고 싶었어요. 주인공이 낙태 시술을 마치고 개학 당일 등교하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잖아요. 그래서 등교하는 장면만 앞 장면들과 톤이 달라요. 앞 장면까지는 회색 톤에 색감이 거의 없는 어두운 톤의 영화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화사해지면서 끝나죠. 보통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 여자는 불안한 삶을 살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밝게 끝냄으로써 그 시선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엔딩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머리카락>(이미해, 2020)

춘삼: <머리카락>은 제목에서부터 짐작 가능하듯이 탈코르셋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코르셋과 그 코르셋을 벗어난 여성들이 나오죠.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인터뷰이들을 섭외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머리카락> 스틸컷

이미해: 제가 처음 영화를 기획했던 건 탈코르셋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6개월이 지난 겨울이었어요.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안 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었고 또 나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말을 들었고, 그 많은 말 중에 긍정적인 말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말도 있었죠. 이런 반응은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겪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사회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으니 나도 위로받고 그분들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는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적으로 기획해나가기 시작했죠. 제가 영상 동아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찍고 싶어서 아예 다큐멘터리 스튜디오를 만들어버렸어요. 공정하게 팀원들과 기획안 PT를 했고, <머리카락>이 결정돼서 본격적으로 만들게 됐죠. 가장 중요한 건 섭외였어요. 사실 저희가 대학 동아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섭외 메일을 보낸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답이 올 줄 몰랐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답을 주셨을까 생각해보니, 그 분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저예산으로 찍었기 때문에 적절한 비용을 드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죠. 섭외 과정이 힘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협조를 잘 해주셔서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어요.

아카: 영상미가 좋아서 예산을 많이 들인 다큐인 줄 알았어요. 

춘삼: 음악도 너무 좋고, 다큐의 구성 요소들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미해: 저예산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자고 결심했어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음악감독님도 섭외했죠. 제가 생각은 오래 하지만 한 번 해야겠다 싶으면 꼭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서(웃음). 

춘삼: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게 현재의 탈코르셋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요. 

아카: 단발령 이야기도 나오고요. 

춘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해서 남성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런 개념들이 사라지면서 남성은 짧은 머리, 여성은 긴 머리가 당연해지는 배경을 조명하기도 하고, 조선 최초의 단발기생 강향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루기도 하죠. 영화가 탈코르셋 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머리카락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머리카락> 스틸컷

아카: 저는 늦게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아직 내면화된 코르셋이 남아 있는 상태예요. 이상하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진 머리카락과 화장을 놓지 못하는 상태인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갔더니 탈코르셋, 숏컷 한 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어요. 그래서 머리를 확 잘라버릴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 그러던 와중에 이 다큐를 만나서 아주 기분 좋은 자극을 받은 상태예요(웃음).

춘삼: 영화의 마지막에 “탈코르셋을 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도 페미니스트가 맞다”는 자막이 나오는데 그걸 볼 때 연대감과 위로받는 기분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이미해: 탈코르셋은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고, 이걸 안 한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너무 큰 부담을 안 가졌으면 좋겠고, 그걸로 자신을 옭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속도에 맞게 편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았던 장면
 

아카: 인터뷰이 중 “나의 디폴트를 바꾸는 걸로 생각의 전환을 끌어냈다”고 한 분이 계세요. 여성의 어떤 상태가 디폴트로 정의되느냐에 따라 저처럼 소극적인 페니스트들도 다른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해: 제 영화니까 다 애정하기는 한데 마지막 부분을 가장 좋아해요. 아직 머리를 자르지 못하신 배우님이 본인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설명하면서 울컥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는 그 부분을 볼 때마다 울어요. 그분의 마음에 너무 공감하거든요. 여성들이 나아갈 길이 이렇게 까마득하구나,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연대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그 부분이 가장 좋아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거든요.  

아카
: 저는 여성 감독님의 두 번째 차기작을 항상 기다리는데요. 앞으로도 영화 해주실 수 있으실지 묻고 싶어요. 

이미해
: 가장 발목을 잡는 게 자본이에요. 지금은 방송국 PD를 하려고 준비 중인데, 방송국 PD로서 다큐를 열심히 찍은 후에 커리어와 자본이 준비되면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저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실력을 쌓은 후에 영화판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카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미해
: 네. 탈코르셋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는데, 그 무게감에 짓눌리지 마시고 훌훌 털어버리고 모두 일상을 잘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일상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아까부터 들어주신 빨간 자동차님, 음기님, 하깃님, 루나컵님 감사합니다. 진행해주신 세 분도 감사드리고요.  

핑구
: 여자가 세상을 살린다. 아자아자 여성연대! 

아카
: 다시 돌아오시는 날 꽃다발 준비할 테니 차기작 소식 알려주세요.

이미해
: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게요. 

춘삼
: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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