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주변’을 기록하는 강유가람 감독의 시선 - 영화 <모래> 리뷰

미디액트 ‘여성영화 비평쓰기’ 수료작|<모래>

이재아 / 2021-12-09


[편집자주] 본 리뷰는 미디액트와 퍼플레이가 진행한 온라인 워크샵 <여성영화 비평 쓰기>(주강사: 김소희)의 수강생이 작성한 비평 수료작입니다. 교육 수료작으로서 수정 없이 게재합니다. 
*비평 수료작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와 여성영화 온라인 매거진 퍼줌(PURZOOM)에 공동 게재됩니다.
〈모래〉   ▶ GO 퍼플레이
강유가람|2011|다큐멘터리|한국|49분


Q. (<우리는 매일매일> 후반부에 ‘페미니즘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하시는데)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면요?

A. 제 식으로 대답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의 여러가지 것을 바라보는 게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서부터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마리끌레르 2021년 7월호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나의 페미니스트 친구들’1) 中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엔 늘 ‘주변인’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영화에서 ‘주변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주변인’은 감독의 주변 사람들을 뜻한다. <모래>(2011)에서 감독은 자신의 가족들을 조명한다. 영화에서 감독과 감독의 가족들은 그들의 오랜 보금자리인 은마 아파트에 얽힌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새롭게 가닿는다. 두 번째로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보이는 ‘주변인’은 주변화된 여성들이다. <시국페미>(2017)는 촛불시위의 자명한 목표 의식 이면에 자행된 성차별의 부당함, 그리고 그로 인해 빼앗긴 시위자로서의 몫을 되찾는 페미니스트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이처럼 멀고도 가까운 ‘주변’과 함께 거하는 감독의 시선은 <이태원>(2016)과 최근작 <우리는 매일매일>(2021)로까지 이어지며 강유가람 감독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듯하다.
2)   

그렇다면 강유가람의 시선은 무엇일까? 이 글만으로 감독의 시선을 단번에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그녀의 입봉작인 <모래>에서부터 시작된 시선이 ‘주변인’들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겨내고, 그들의 다층적인 면모를 세밀하게 기록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 단편화, 대상화에 맞서는 감독의 시선은 강자/약자, 피의자/피해자, 기득권/비기득권 등의 프레임(frame)을 벗어난다. 대신 영화는 ‘주변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오롯이 논할 수 있는 몫, 즉 영화적 시공간인 영도(Degree Zero)
3) 의 프레임(frame)을 제공한다. 


<모래>에서 강유가람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마냥 다를 것만 같던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특히 그녀는 아버지와 자신의 거리감을 인지하고 있다. 영화 초반에 그녀는 아버지와 정치 성향, 자본주의 사회 속 추구하는 인생관 등에서 뚜렷한 의견 차이를 보인다.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러한 대립은 은마 아파트로 압축되어 있다. 가치가 마흔 배나 올랐다며 뉴스화되는 은마 아파트는 부의 불평등과 잘못된 투자를 연상시키며 감독을 부끄럽게 만든다. 따라서 감독의 집인 은마 아파트는 자신과 맞지 않는 지긋지긋하고 고리타분한 공간일 뿐이다. 한편 감독의 아버지에게 은마 아파트는 ‘내 집 마련’이란 사회적 꿈인 동시에 아버지 개인의 지난한 사회생활에 대한 보상이다. 따라서 아버지 개인의 인생 성공 여부와 재건축, 집값 상승 등의 사회경제적 요소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맞닿아 있다. 은마 아파트는 온기 어린 집보단 가족 간 첨예한 갈등의 역사이자 보상심리의 집합소이다. 

그러나 <모래>는 자신과 가족 간 가치관의 차이를 방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더불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오래 지속되어온 차이와 갈등에 치여 가족들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바라본다. 예컨대 영화 초반에 인터뷰와 내레이션으로 설명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보수주의자, 기성세대, 강남 중산층 등을 연상시킨다. 감독이 영화 도입부에 삽입한 아버지의 말들과 감독의 내레이션에서 아버지의 성향은 분명하다. 

<모래> 스틸컷

하지만 이내 감독은 아파트에 살기 위해 가족이 진 빚이 얼마인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이는 마치 감독의 시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회적 가치관에 기대어 바라보지 않기로 다짐한 듯한 전환이다. 그리고 감독의 시선은 자신이 몰랐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온전히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아버지가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갔던 당시 시댁으로부터 도둑 취급받았던 어머니의 기억, 술에 취해 은마 아파트에 천착하게 된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가 은마 아파트에서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동생의 기억 등의 인터뷰는 주관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만큼 더없이 사실적이다. 

감독의 시선에 의해 포착되고 선별된 각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각 사람의 인생의 무게를 재단하지 않고 몰입한다. 은마 아파트에 살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아버지의 과거, 그리고 아파트에서 계속 살며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아버지와 어머니의 현재와 미래는 뉴스의 주제나 통계 수치로 이해될 수 없다. 얼핏 독백 같은 가족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우리는 삶을 살아낸 이들이 자신만의 언어와 감정으로 본인의 경험을 읊을 때 오는 현전성을 실감하게 된다.

은마 아파트라는 한 장소에서 보낸 세월이 긴 만큼 감독은 자신의 주변인을 다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들은 가족 개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과 첨예한 갈등의 소재들을 파악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된다. 카메라 뒤편에 서 있는 그녀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카메라를 겨누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를 매개로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톺아보며, 그들의 사실에 귀 기울인다. 

무엇보다 감독의 시선은 자신에게도 머문다. 영화 말미에 감독은 혼자만의 공간을 꿈꾸는 자신의 희망과 아버지, 어머니가 천착하는 은마 아파트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엔 가족과의 차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라보던 그녀가 영화가 끝나갈 무렵엔 가족의 삶을 헤아리며 그들과 느슨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래>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감독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쳤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모래>는 아버지의 집을 소재로 한다.
4)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은마 아파트는 아버지의 인생일 뿐 부의 상징이 아니다. 아버지의 인생은 성별, 계층, 정치 성향 등을 기준으로 사유되지 않고도 귀하고 가치 있다.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과 동일한 의견을 지니지 않은 아버지를 자신의 시선과 사회적 시선이 아닌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차이를 극복하지 않아도 허용하며 서로의 삶에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명징한 공통점으로만 형성된 공감대와 연대가 아닌, 각자의 다름과 변화를 공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희망하는 감독의 시선은 이후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났다.
5) 곧 개봉할 <애프터 미투>에서 감독의 시선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되는 바다.


─────────

1)  나의 페미니스트 친구들|마리끌레르 (marieclairekorea.com)

2) 최신작 <우리는 매일매일>(2021)은 ‘열정 넘치던 페미니스트’라는 과거 자아를 공유하는 주변 친구들의 오늘날을 기록한다. 감독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친구들의 면모를 영화화함으로써 청춘과는 다르지만 꿋꿋히 계속되는 페미니스트적 태도와 연대를 포착했다. 마찬가지로 <이태원>은 역사 속 편견의 대상으로 치부되었던 세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특정 지역, 더 나아가 한국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이들의 삶이야 말로 이태원의 진실한 정체성이란 걸 이미지로 몸소 보여준다. 

3)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글쓰기의 영도>(Writing Degree Zero)에서 착안했다.

4) <모래>의 영어 제목이 ‘My Father’s House’라는 점을 토대로 해석했다.

5)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한국에서 페미로 산다는 건..."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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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문화를 탐구하는 초보연구자. 마음밭과 실력을 겸비한 연구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공부를 왜 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며, 다정하고 예리한 글과 연구를 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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