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우리는 매일매일’ 편지 이벤트] From 익명의 페미니스트 To 흐른

첫 번째 편지

퍼플레이 / 2021-08-12


이 편지는 <우리는 매일매일>의 개봉을 응원하며 퍼플레이에서 진행한 이벤트 ‘From 영영페미 To 영페미’를 통해 도착하였습니다. 관객들이 전해준 소중한 마음들 중 세 개의 이야기를 뽑아 조심스럽게 공개합니다.


#1-1  From 익명의 페미니스트  To 흐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익명의 페미니스트입니다. 영화 속 영페미 언니들처럼 멋진 별칭이 하나 있다면 좋을 텐데, 마땅하지가 않네요.. 하여튼 <우리는 매일매일>을 보고 어디 털어놓지 못한 벅차오르는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나마 전할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그렇습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퍼플레이에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영화를 보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새삼 내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90년대 여성주의 운동을 위해 앞서 나갔던 영화 속 인물들이 현재에는 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형태와 방식으로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에 위로를 받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 분들에 비해 나는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의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당연히 어떤 사안이나 이슈에 분노하고 제 나름의 액션을 취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페미니즘, 여성주의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을 때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반박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저도 틀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의견을 통해 저의 생각을 확장해나갈 기회가 있는데도 요즘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반성을 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제가 잘 모른다는 느낌도 들고요.. 페미니스트로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또 연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저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소극적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보면서도 저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됐어요. 결국 분노하고 목소리 내는 이들 덕분에 세상이 이만큼이나 바뀌어 왔는데 저는 왜 점점 소극적이어지는지.. 꼭 분노하고 힘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싶은 마음도 큰데 점점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우리는 매일매일>에서 보여지는 감독님과 친구분들이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단단한 우정이나 공통으로 공유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부럽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도 저런 동료이자 친구를 더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멋진 영페미 개개인의 삶 그리고 우정을 담아주신 덕분에 저에게 상상해볼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이 또 하나 생긴 것 같기도 하네요! 저도 멋진 친구들과 이 영화를 함께 보는 파티라도 계획해봐야겠어요(언젠가는 꼭!) 너무나 소중한 영화 감사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흐른


#1-2  From 흐른  To 익명의 페미니스트

안녕하세요, 익명의 페미니스트님.

저는 <우리는 매일매일>에 출연한 흐른이라고 합니다. 영화에 출연하고 개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영화를 매개로 익명의 페미니스트님과 인사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익명의 페미니스트님이 쓴 편지를 읽고 나니, 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졌어요. 영화에 제가 등장하는 첫 화면에서 저는 화장을 하고 있어요. 페미니스트가 화장이라니요. 숏컷을 하면 페미라고 외치는 어떤 분들은 화장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요? 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는 저는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의 전형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임을 의심하지 않아요. 숏컷 여부가 페미니스트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듯이, 긴 머리나 화장이나 치마 착용 여부가 페미니스트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페미니즘은 외모 뿐 아니라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익명의 페미니스트님처럼 화내길 부담스러워하는 페미니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혼자서는 많이 분노해요. 뉴스 보면서 분노하고 여성혐오 발언을 놀이 삼아 해대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분노하고 한국사회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지표를 보면서도 분노합니다. 그런데 눈 앞의 사람에게 분노하는 건 여전히 제겐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나는 유연한 걸까 아니면 비겁한 걸까, 저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어요. 

지금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아주 소심하게 늘려보자고요. 저는 지하철에서 모르는 쩍벌남에게 다리 좀 오므리라고 말할 용기는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제 친구가 싸움에 휘말릴 때는 같이 싸워줄 수 있어요. 근무 때문에 시위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그 시위의 의제에 대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토론할 수 있고요. 우주최고 소심왕인 저도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페미니스트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분노해도, 내가 목소리를 높여도 나를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인 것 같아요. 소극적인 페미니스트와 적극적인 페미니스트는 성격이나 성향의 차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이어도 안전한 환경에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거든요. 내가 페미라고 공격당하거나 조롱당하지 않고 배제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대담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익명의 페미니스트님이 말한 대로 동료이자 친구 페미니스트들을 더 찾는다면 ‘익명의 페미니스트님이 할 수 있는 만큼’도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우리는 매일매일>을 같이 보는 파티, 꼭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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