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너’와 ‘나’의 경계의 이름은 ‘우리’ - 영화 <잘돼가? 무엇이든> 리뷰
미디액트 ‘페미니즘 영화비평’ 수료작|<잘돼가? 무엇이든>
다솜 / 2021-03-31
[편집자주] 본 리뷰는 미디액트와 퍼플레이가 진행한 온라인 워크샵 <자기만의 글 - 페미니즘 영화 비평 쓰기> 1, 2차 강좌(주강사 : 김소희, 정지혜)의 수강생이 작성한 비평 수료작입니다. 교육 수료작으로서 수정없이 게재합니다. * 총 8편의 비평 수료작은 매주 2편씩 4주에 걸쳐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와 여성영화 온라인 매거진 퍼줌(PURZOOM)에 공동 게재됩니다. |
〈잘돼가? 무엇이든〉 ▶ GO 퍼플레이 이경미|2004|드라마|한국|36분 |
<잘돼가? 무엇이든>은 볼 때마다 의미가 발전해 나간 영화였다. 처음엔 이전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졌던 여성들 간의 경쟁구도를 해체하고 그들 간의 우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쟁’과 ‘우정’으로만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경쟁’이란 서로 앞다투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건데, 지영과 희진이 서로를 의식한 것이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우정으로 묶기에도 애매했다. 친구라고 하기엔 둘의 가치관이나 성격은 너무 안 맞았고, 대화도 대체로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 질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걸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확실한 관계보단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들이 더 많은 법이다. 그러므로 직장동료, 우정, 경쟁이라는 기존의 언어로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편협한 시도일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경미 월드에 사는 여성캐릭터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관점으론 포섭되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에게 있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그 시작이었다.
〈잘돼가? 무엇이든〉 스틸컷
영화는 지영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맞닥뜨린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된다. 택시기사나 사장같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다른 인물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지영의 대쪽같은 필터에도 쉽게 걸러지지 않는 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희진이다. 희진은 얼핏 평면적으로 그려진 얄미운 캐릭터 같지만, 다른 인물들처럼 쉽게 재단 되지 않는다. 그는 지영의 주변에 머물면서 그에게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지영은 희진을 만나면서 세상의 모순과 내적 갈등을 발화한다.
두 인물이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이 상이하다. 세상과 불화하는 지영의 입장에서 희진은 현실에 타협한 인물이다. 그러나, 왜 지영은 화를 내고 희진은 타협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지영이 느끼는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끼면서 희진을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다. 그보다 유니폼을 입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엄연한 불법인 탈세조작을 ‘신뢰’로 해석하게 되는지, 왜 부당함에 대해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결국 둘 사이의 차이는 같은 현실에 처해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임이 드러난다.
〈잘돼가? 무엇이든〉 스틸컷
지영과 희진의 관계는 회사라는 공간을 벗어나면서 변화한다. 때마침 당겨진 사이렌 소리는 사장을 향한 경고이자, 지영과 희진을 회사에서 구출하는 역할을 한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주제는 단연 회사 이야기다. 회사 내에서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유니폼이 회사 밖에선 두 사람을 묶어주는 상징으로 작동한다. 지영은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다 불질러 버리고 사표 내면 박사장 엿먹을 텐데’라고 말하는데, 머지않아 사장이 실제로 화재를 일으키며 지영의 말은 어느정도 현실이 된다. 지영과 희진은 사장이 실려간 병원 앞에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다시 대화를 나눈다.
지영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고, 희진이 건넨 위로 같지 않은 위로에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을 분출한다. 이때 지영이 문제 삼는 희진의 말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정말 희진은 사장을 두고 ‘제 불에 제가 타서 죽지’라고 말했을까? 진위여부를 떠나 지영의 착각은 그 자체로 희진과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희진이 지영을 반사하는 거울로 기능한 것이다. 지영은 이를 계기로 자신이 칼을 품고 살아왔던 것을 떠올리며,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살았던 편협한 의식을 깨닫게 된다. 울분을 토해내는 지영의 말 속엔 세상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진은 자신을 향해 우수수 감정을 쏟아내는 지영을 보고 당황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준다. 일어서려던 지영이 삐끗해서 주저앉자 희진은 ‘누가 뭐래요-’ 하며 다가와 지영이 의지하고 있던 각목을 잡아준다. 희진의 이 행위가 결국 지영에게 위로가 된다.
서로에게 부딪히는 과정을 겪으며 지영과 희진은 서서히 자신들의 경계에 도달한다. 둘 사이에 놓인 경계는 희진이 먼저 가보겠다며 건너간 횡단보도로 나타난다. 지영은 과연 눈 앞에 놓인 횡단보도를 건너 희진에게로 다가갈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지영이 서있는 길은 그 이전과는 다르게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와 ‘너’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 지었던 마음을 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초록불이 켜지고, 지영은 횡단보도를 건너 희진에게로 달려간다.
지영과 희진이 보여준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은 기존의 언어로 정의된 관계를 해체 시켰다. 결국 관계란 불변의 정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인식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영과 희진이 서로의 경계에서 발생한 사건을 겪은 것처럼 이경미 월드의 사는 다른 여성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과 종희, <비밀은 없다>의 민진과 미옥 – 또한 기꺼이 그 경계에 다가가 ‘우리’가 되길 선택하지 않았는가. 경계에 다가서야 우리가 될 수 있다면, 경계의 이름을 ‘우리’라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버스에서 조는 지영과 희진의 마지막 뒷습을 보며, 우리 모두가 자신이 마주한 타인과의 경계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길 바라본다. 더 많은 ‘우리’가 가능한 세상만이 ‘나’와 ‘당신’도 만나게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PURZOOMER
제주여민회의 소식지인 <제주여성>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10살인 반려견 마음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이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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