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아이들>
유자 / 2020-11-05
〈아이들〉 ▶ GO 퍼플레이 류미례|2010|다큐멘터리|한국|68분 |
〈아이들〉 포스터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여자와 어머니를 분리하는 이 말처럼 우리에게 ‘엄마’는 ‘아이가 딸린 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 아이를 낳으면 갖게 되는 모성애는 숭고하고 위대해서 엄마는 여자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 격상된다.
하지만 정말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자연히 모성애를 갖게 되는 것일까. 정말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자발적으로 그들을 위해 희생하게 되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열 달 동안 뱃속에 아이를 품었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
류미례 감독은 다큐멘터리 <아이들>(2010)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준비 없이 결혼하고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는 감독은 자신의 12년 육아일기를 통해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자연히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오히려 아이와 함께 성장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며 엄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담아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아이들〉 스틸컷
20대 중반,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감독 역시 결혼과 정착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적령기 신화에 따라 20대 청춘들은 전부 결혼을 목표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남들은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에 대뜸 다큐멘터리 일을 하겠다는 감독을 보며 그의 어머니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결혼 생각은 없었지만 만남은 우연히 찾아왔다. 장애인 센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기 시작한 감독은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원하는 대로 다 해줄 것이라던 그의 말처럼 남편과 함께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애초에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자체가 모험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서로 부단히 노력할 때라야 비로소 지켜질 수 있는 것이었다.
첫째 하은을 키우는 일은 감독에겐 자신의 욕심, 그리고 이를 뒤따르는 죄책감과 싸우는 일이었다. 아이는 사랑스러웠지만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그는 오로지 자기만을 봐주길 원하는 아이의 요구를 전부 들어줄 수 없었다. 일과 육아 중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자 감독은 자연스레 자신이 하는 일의 실효성을 따지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족을 위해 얼마나 쓸모 있는 일일까. 생각해보면 가정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도 않으면서 일을 하려는 자신이 어느 순간 이기적으로 느껴졌고, 일 때문에 떼어놓았던 아이가 분리불안을 겪자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스틸컷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느끼는 죄책감도 컸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홀로 하은을 돌봐야 했던 감독은 아이가 울까 무서워,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육아 책에는 뛰어난 엄마들이 참 많았고 여러 명의 아이를 낳고 길러온 엄마와 언니, 수많은 여성들을 보면 자신의 고초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온 엄마들의 희생, 고생, 노력은 초보 엄마인 감독에게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혹독한 기준으로 다가왔다.
결국 이 모든 자아분열은 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한정지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아이는 부부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모성애와 엄마의 역할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육아를 여성만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 여성에겐 부족한 엄마라는 낙인을 찍어 왜곡된 자기혐오를 심는다. 애초에 여성에게만 일이냐 아이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이 문제였다. 감독은 윗세대를 기준으로 하면 자신은 한참 못하고 남편은 한참 넘친다며 부조리함을 토로한다. 남편은 다정했지만 육아를 돕지 않았고 그런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할 때면 엄마와 남편은 감독을 부족한 엄마라고 나무랐다. 여성에게만 육아를 요구하는 사회에 감독은 불편함을 느꼈고 일에 대한 욕심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그는 집 근처 씩씩이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스틸컷
어릴 적 잃어버린 한 달을 메우기 위해선 열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어린이집 이모의 말을 듣고 감독은 둘째 한별이 태어나자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로 한다. 한별을 돌보면서 감독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법과 육아의 행복함을 동시에 배우게 되었다. 감독의 언니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나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독은 한별을 키우면서 비로소 언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아이를 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감독은 일을 그만두고 오로지 육아에 전념하면서 다큐멘터리 말고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유대감을 쌓는 일은 그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감독은 사람들 사이에서 카메라를 들 때 비로소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주는 기쁨은 컸지만 그것이 아이를 향한 절대적인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감독은 다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셋째 은별을 낳으며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감독은 작업은 하지 못하지만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영화제에 참여한다. 영화제에서 오고가는 최신 동향을 들으며 감독은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조바심이 났고 그럴 때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속한 자리를 확인했고 불안감을 달랬다.
〈아이들〉 스틸컷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다큐멘터리 감독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고민했던 감독은 결국 절충안을 찾게 된다. 이는 엄마만이 찍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각자의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곁에서 함께 시행착오를 겪는 감독 역시 엄마로 성장시켰다.
작품 말미에 감독은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종국엔 더 큰 세상을 만나 더 많이 사랑받길 바란다고 말한다. 성숙하지 않은 상태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성장하면서 감독 역시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때로는 실수하고 다른 사람과 협업하고 아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며 여성은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모든 어머니들의 모성애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신성화된 모성애는 신화가 되어 많은 여성들을 옥죌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모성애가 신화임을 보여주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성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작품은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가장 공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것 역시 보여주었다. 감독은 세상에 나 같은 엄마도 있다는 것을 쑥스럽게 고백하는 작품이라고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감독의 소개처럼 그의 진솔한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전하고 있다.
PURZOOMER
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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