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사랑도 액션도 물 흐르듯이

<아토믹 블론드>

장영선|영화감독 / 2020-07-16


<아토믹 블론드>
데이빗 레이치|2017|액션|미국|114분|청소년관람불가

<아토믹 블론드> 스틸컷

어찌된 일인지 액션 영화만 보면 자꾸 졸려져서 이 영화도 영원히 안 보게 될 영화로 남을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이 영화가 퀴어영화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영화 소개에도 그런 말이 없고 예고편을 봐도 긴가민가.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기어이 마지막 문을 열고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봐야 하는 법이라는 비장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장르를 공고히 하겠다는 듯 극악무도한 액션 장면이 펼쳐지고, 이윽고 얼음물 속에 잠겨있던 주인공, 로레인 브로튼(샤를리즈 테론)이 보인다. 로레인 브로튼은 유능한 MI6 비밀요원으로 살해당한 동료가 갖고 있던 리스트를 되찾기 위해 베를린 장벽 양쪽을 누비며 활약한다. 나는 이 부분을 쓰기 위해 잠시 영화의 줄거리를 다시 찾아봐야 했는데, 그만큼 리스트와 그 외의 임무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로레인 브로튼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이다. 그에게만 집중하면 이 영화 감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토믹 블론드> 스틸컷

로레인 브로튼은 우리가 그동안 익히 보아왔던 스파이와 비슷한 인물이다. 냉혹하고, 그렇기에 외롭고, 그렇지만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기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 그런 그가 영화 시작 15분 후 베를린 주재요원인 데이빗 퍼시벌을 만날 때, 그리고 데이빗 역을 맡은 배우가 제임스 맥어보이란 것을 알았을 때, 게다가 로레인이 데이빗의 첫 인상을 미남이라고 표현할 때, 익숙한 불안감이 밀려왔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다. 퀴어영화라고 하더니!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오고! 이게 다 무슨 일인지!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뺀질이’같은 캐릭터로, 첫 만남부터 까딱하면 로레인에게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버릴 뻔한다.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으로, CIA와 MI6가 참관한 자리에서 로레인이 베를린에서의 비밀 업무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기준 삼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로레인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주먹으로 때려눕힌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복잡한데 그에 비해 힌트가 친절하게 제시되지 않아 길을 잃기 쉽지만 그럴 땐 그냥 로레인의 액션을 보면 된다.

그의 액션은 과장되게 손쉬워 보이거나 음악이나 편집의 리듬에 많은 공을 맡기지 않는다. 그저 피치 못할 상황에 놓였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람을 때리는 것이란 대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했을 때 답을 찾을 수 있는 액션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그는 신체의 모든 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가격하고, 온 힘을 다해 가격한 뒤 곧바로 무게중심을 자신에게 옮겨 반동으로 균형을 찾는다. 상대방이 쓰러진 만큼 자신에게도 타격이 있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단연 이 영화의 장르적 백미라고 할 수 있는 10여 분간의 롱테이크 액션 장면을 보고 있자면, 시원한 쾌감보다는 싸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어떤 사유를 하게 된다. 치열하게 때리고, 맞고, 경계하고를 반복하는 시간은 피곤하고 괴롭다는 현실감각 자체가 오히려 로레인에게 빠져들게 한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여성 스파이의 비현실적으로 멋진 액션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토믹 블론드> 스틸컷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 중반부쯤, 아무렇지도 않게 로레인과 델핀(소피아 부텔라)이 만난다. 붉은 네온사인 빛이 두 사람에게 내리쬐듯 비추는 가운데 이미 서로의 정체를 아는 두 사람은 그 사실을 감춘 채 아무렇지도 않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눈다. 직업과 이름, 친구의 클럽 같은 것들에 대해서. 그 누구라도 꿰뚫어 볼 것 같은 로레인의 눈빛을 마주하고 천진하게 떠드는 델핀은 지금껏 영화에 등장했던 그 누구와도 달라서 생경하기까지 하다. 누구도 믿지 않으며 그 누구라도 배신할 수 있는 베테랑 스파이 로레인과 일이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이젠 무섭다고 울먹이는 1년차 스파이 델핀. 두 사람은 단번에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이렇게 금세 연인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너무 동아시아의 퀴어영화들에 익숙해진 탓일까? 하지만 북미에서 만들어진 퀴어영화라고 해서 크게 다른가? 게다가 영화가 시작할 무렵 로레인에게는 남성 연인도 있었던 것 같은데… 등등의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클럽의 좁은 복도에서 시작된 로레인과 델핀의 키스 장면은 곧바로 로레인의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의 모습으로 전환되고, Re-Flex의 ‘Politics Of Dancing’이 더없이 경쾌하게 흐르는 가운데 열정적인 섹스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다정한 러브신들이 지나가고 나면 로레인은 다시 냉혹한 세계의 차가운 스파이가 되어 동독과 서독을 오간다. 내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며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되새기지도 않는다. 그는 여전히 누군가를 속이고, 누군가를 배신하며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아토믹 블론드> 스틸컷

<아토믹 블론드>는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영화로, 감독은 사람들이 사랑했고 자신이 사랑한 수많은 영화 속의 요소들을 보란 듯이 배치해 모두 함께 즐기자는 마음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델핀 역시 스파이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연인 역할과 다를 바 없는 캐릭터를 수행한다. 그는 아름답고, 순진하며,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주인공은 세상 모두에게 차갑지만 연인에게만은 다정하고, 원래 그런 존재는 잃게 되는 것이 그 세계의 법칙이므로 델핀 역시 그에게서 허무하게 떠난다. 이런 전개를 우리는 언제나 보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당연한 것들을 모두 여성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주인공의 연인도 모두 여성이다. 게다가 그 사실에 대해서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다. 놀라는 사람도 없고 우려하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신선한 지점이다. 

퀴어영화란 무엇인가. 네이버 어학 사전에 등재된 바에 의하면 ‘동성 간의 애정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 동성애자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아토믹 블론드는 퀴어영화로 분류되진 않을 것이다. 아토믹 블론드의 주요 내용은 로레인과 델핀의 애정이 아니고, 이 영화의 수많은 목적 중에는 동성애자의 권익 보호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것이 주요한 목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 영화는 들썩들썩한 음악들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주인공의 화려한 패션 감각 같은 것이 먼저 보이는 대중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퀴어적 장면들마저도 이런 것들에 섞여서 어느샌가 흘러가버리고 만다.

나는 한 때, 왜 퀴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영화의 고전적인 장르는 모두 잊혀지고 그 영화가 ‘퀴어영화’라는 단일 장르로 구분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아토믹 블론드>가 비로소 그 의문의 답이 되어주었다. <아토믹 블론드>는 내가 바라는 퀴어영화의 미래다. 최대 관객수를 겨냥하고 만드는 다양한 장르의 대중영화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퀴어가 등장하고 그들의 사랑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영화들이 많아진다면 나는 더 이상 ‘퀴어영화’라는 장르에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더 이상 동성애자의 권익보호가 영화의 주 목적이 되지 않아도 되는 날 또한 올 거라고 믿는다. 모두가 이미 알고 당연히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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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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