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사랑의 모양은 슬프지 않아

<연애편지>

윤고운 / 2020-02-20


<연애편지>   ▶ GO 퍼플레이  
김유월, 박예지, 위정연|2018|로맨스/멜로|한국|12분

<연애편지> 스틸컷

바야흐로 사랑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사랑에는 단계가 많다. 썸은 썸이고 연애는 연애고 사랑은 사랑이다. 각종 SNS에는 각각의 단계를 이런저런 식으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막상 ‘사랑’을 찾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연애와 사랑에 있어 매뉴얼을 찾고 있다. 그 매뉴얼 속의 썸도 연애도 아닌 애매한 연정들은 자꾸 흩어진다. 짝사랑은 ‘모던하지 못한 사랑’이고 가난한 사랑은 ‘정치적’이다. 이성애가 아닌 사랑은 ‘비극적 퀴어물’로 묶여버린다. 세상의 모양은 점점 다양해지는데 사랑의 모양은 자꾸 작아지고 비루해져 간다.

단편영화 <연애편지>(김유월·박예지·위정연, 2018)는 납작해진 사랑의 모양을 즐겁게 재조립한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도경의 식구들이 휴가를 떠났다. 도경(이민영)은 빈 집에서 여자친구 하영(임꽃신)과 함께 알콩달콩 시간을 보낸다. 즐거운 시간이 흘러가고 식구들이 돌아올 때가 되자 도경은 하영을 배웅한다. 애틋하게 헤어지는 순간, 하영은 도경의 집 거실에 ‘연애편지’를 놓고 왔다는 것을 떠올린다. 온갖 사랑의 밀어들이 적힌 편지를 도경의 식구들이 먼저 보게 된다면? 큰일이다. 도경은 식구들이 오기 전에 연애편지를 감춰야 한다.

<연애편지> 스틸컷

도경과 하영은 레즈비언 커플이다. 많은 콘텐츠들은 레즈비언 커플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 상황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헤쳐 나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사랑도 보통의 사랑과 다름없음을 인정받게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서사는 이들의 사랑과 보통의 사랑을 명확히 구별 짓는다. 더 고통스럽고 더 슬퍼야 숭고한 사랑이 되고, 숭고한 사랑이 되어야만 이성애랑 다르지 않은 사랑의 자격을 받는 것이다. 관객은 이런 이야기를 보며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는 위치에 있기 힘들다. ‘그들’의 사랑을 ‘우리’의 사랑으로 인정‘해주는’ 위치에 있게 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물론 ‘슬픈 영화’에는 죄가 없다. 특히 멜로를 딱히 즐겨보지 않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랑 영화는 ‘해피’하지 않은 결말의 영화들이다. 멜로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영화 중에는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 꽤 있다. 그러나 어떤 소재나 캐릭터가 항상 슬프게만 그려진다면 그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연애편지> 스틸컷

퀴어의 사랑 이야기는 왜 항상 슬픈가? 퀴어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는 왜 항상 비극적인가? 어떤 사랑은 점점 납작해져만 간다. 사랑은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할 것이 아니다. 그저 생활일 뿐이다. 생활은 납작하지 않다. 생활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말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 다양한 모양이 삭제되는 서사는, 글쎄, 일단 매력도 없고 재밌지도 않으며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모습을 소설가 박상영은 그의 책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 2018)에서 재치 있게 비틀기도 했다.

“그의 영화는 성소수자를 심하게 대상화하고 있었고, 80년대 퀴어 서사에나 적합한 신파 코드로 점철되어 있었다. 익숙한 게 좋다 이거겠지. 평론가 김은 심사평에서 오 감독의 영화를 두고, 성적 소수자의 고통을 잘 형상화해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경지로 끌어올린 수작이라고 평했다.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하는 보편적인 사랑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동성애자들이 뭐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하고 산다는 건지, 동성애자인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성애자가 연루되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주인공들이 너무 발랄해. 깊이가 없어. (…) 캐릭터들이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우기기는 하는데 가슴속에 우물이 없어. (…) 동성애자가 그렇게 별 고통 없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들이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건지.”

그렇다. 퀴어의 사랑은 고통을 겪어야만 보편적 사랑의 경지로 끌어 올려진다. 심지어 ‘동성애자’라면 ‘가슴속에 우물’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이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어떤 모습의 생활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들’이기 때문에 눈물로 가득 찬 우물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너무 나이브’한 태도다. 

<연애편지> 스틸컷

레즈비언 연인이 나오는 단편영화에서 기대되는 아련하고 뿌연 화면, 애절한 사랑, 이 사랑에 대한 세상의 훼방, 그 훼방에 고통받는 비극적인 모습…. <연애편지>에는 없다. 이 영화는 보통의 연인에게서 기대되는 보통의 연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귀여운 음악이 흐르는 고전영화(이때 영화 속 대사에 주목해야 한다)를 틀어놓고 (막 해 먹은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막 해 먹기 좋은, 집에서 연애하는 연인들의 대표 음식인 스파게티를 먹는다. 화면은 달콤하고 발랄하다. 이 사랑은 애절해 보이지 않는다. 싱글인 유성애자로서 볼 때 극도의 부러움이 유발될 뿐이다. 달달하고 풋풋하고 평온한 연애다.

영화 속에서 만약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연애를 인정하지 않을 식구들이 연애편지를 먼저 발견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닥치기 전에 연애편지를 감춰야 한다는 과제는 분명 ‘해피’하지 않다. 썸도 연애도 사랑도 자랑이고 명예인 시대에서 연애편지를 감추는 것은 ‘모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상황을 비극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절대로 슬프지 않다. 끝까지 슬프지 않다.

<연애편지> 스틸컷

오히려 재밌고 즐겁다. 도경이 먼 길을 되돌아 집으로 뛰어가는 과정은 웃기다. 그리고 그 웃음은 모두에게 무해하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참 대단하고 소중한 것이다. 웃음의 포인트를 하나하나 말하면서 그 소중함을 되짚어보고 싶지만, 그것은 영화를 감상하실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결말 역시 기대해도 좋다. 다만,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상상하지 않길 바란다. 특별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청량한 여름의 한복판에서 맛볼 수 있는 최선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1분 1초 흐를수록 이 청량함을 떠나 눅진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아쉽게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레즈 영화, 이렇게 해피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연애편지>는 충분한 존재 가치를 갖는다. 이 영화의 팬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사랑을 납작하고 슬프게 만들지 않는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랑의 모양은 슬프지 않다. 납작하지 않다. 사랑의 모양은, 그저 제각각의 사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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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보호> 공동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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