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싱글맘의 독박 육아가 호러다

<바바둑>

홍재희|영화감독 / 2020-01-16


<바바둑>(The Babadook)
제니퍼 켄트|2014|공포, 스릴러|오스트레일리아|93분

<바바둑> 스틸컷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이혼 후 3교대 간호사로 혼자 아이를 키우던 애인의 엄마는 어느 날 자식 셋을 불러놓고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1년 365일 야간 교대 간호사를 하면서 돈 벌어 너희들 먹여 살리고 집에 와서도 못 쉬고 또 일하고. 난 너무 지쳤어. 그래서 오늘부로 너희들 엄마를 졸업한다. 이제부터 빨래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밥도 스스로 챙겨 먹도록 해라.’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에는 ‘외국 엄마라서 다른가 보다. 그 어머니 신기하다, 대단하다’라는 생각만 했다. <바바둑>(제니퍼 켄트, 2014)을 보면서 불현듯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엄마를 ‘졸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일일까. 몸이 성하지 않았던 나의 어머니는 종종 ‘나 대신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당신이 아니면 난장판이 되는 집안 꼴을 두고 볼 수 없어 기어이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가족을 위해 또 밥을 차렸다. 엄마라는 존재는 으레 장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원래 가족을 돌보고 살림하는 게 천성인가보다 생각했다. 나이 들어 집을 떠나 홀로 서게 되면서 내 손으로 밥을 해 먹고 모든 대소사를 처리하게 되어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얼마나 오래 어머니의 노동에 한마디로 ‘기생’(!)하며 살았는지.

공포 스릴러 영화 <바바둑>. 국내에는 2015년 개봉이 추진됐지만 안타깝게도 불발되었고 VOD 시장으로 직행했다. 이 영화의 진가를 몰라본 한국 현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바바둑>은 호주 여성 감독 제니퍼 켄트가 자신의 단편 <몬스터>(2005)를 바탕으로 만든 장편 데뷔작이며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미국의 영화 전문 매체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 <컨저링> <렛미인> <겟 아웃> 등의 유명 공포영화를 누르고 지난 10년간 상영된 영화 중 최고 호러 영화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바바둑> 스틸컷

줄거리는 호러 영화에서 식상할 정도로 흔한 공식을 기반으로 한다. 아멜리아(에시 데이비스)는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당시 태어난 아들 사무엘(노아 와이즈만)과 단둘이 살고 있다. 사무엘은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어 가뜩이나 지쳐 있는 아멜리아를 더욱 힘들게 한다. 어느 날 사무엘이 우연히 발견한 그림책 ‘바바둑’을 아멜리아에게 읽어 달라 조른다. 그런데 바바둑은 그저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라 악령의 저주가 담긴 금서였다. 바바둑은 두 모자의 삶 속에 스멀스멀 파고들기 시작하고 아멜리아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바바둑과 처절하게 사투를 벌인다.

영화 초반부에는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노동자의 고단한 일상이 이어진다. 일과 살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아멜리아.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사무엘은 매번 엄마를 불안에 빠트린다. 사무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격적 성향 탓에 학교에서 요주의 아동으로 지목받고 아멜리아는 번번이 아들의 학교로 불려간다. 그는 아들이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여기서 아멜리아의 직업이 남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라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멜리아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에,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 노동으로 파김치가 된다. 그에게 집이란 휴식 공간이 아니라 할 일이 겹겹이 쌓인 노동 공간일 뿐이다. 아멜리아는 치매 노인들을 돌보면서도 정작 제 자식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이런 지경이니 당연히 자기 자신을 돌볼 여력도 없다.

<바바둑> 스틸컷

제니퍼 켄트 감독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아멜리아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의도적으로 길게 보여준다. 아멜리아의 텅 빈 눈동자는 피폐해진 내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말 그대로 신경 쇠약 직전인 워킹맘의 표정이다. 아멜리아는 직장에서는 불안에, 집에서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점점 번아웃(burnout)된다. 그렇게 일상과 내면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 바바둑이 나타난 것이다. 겁에 질린 아멜리아는 동화책 바바둑을 태워버린다. 하지만 다시 나타난 바바둑은 아멜리아를 비웃는다. “네가 부정할수록 난 더 강해져. 들여 보내줘! 내가 들어가면 넌 변하기 시작해. 바바둑은 네 안에서 자라날 거야. 어서! 어서 봐. 아래(지하실)에 뭐가 있는지!”

영화는 바바둑에게 사로잡힌 아멜리아가 아들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바바둑이 엄마 마음을 먹어치울걸”이라던 사무엘의 걱정대로 아멜리아는 급기야 아들을 죽이려 든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자식 살해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멜리아가 미쳐가는 과정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호러 <샤이닝>(1980)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샤이닝>에서 아버지 잭 토렌스(잭 니콜슨)가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 한 이유는 아멜리아와 전혀 다르다. 잭이 알콜 중독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복선이 깔려 있긴 하나 그가 미친 이유는 자신이 작가로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이 원인인 것이다. 반면 아멜리아는 남편의 죽음이 계기가 된 극심한 산후우울증 또는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독박 육아 스트레스에 완전히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바바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바둑은 문자 그대로 호러 장르에 흔히 등장하는 원초적 악령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스트레스로 신경 쇠약에 걸려 황폐해진 아멜리아의 마음, 내면의 풍경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하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 바로 내면의 어둠을 의미할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남편을 잃은 날 태어난 아이에 대한 미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에 괴로워하는 아멜리아. 자식을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남편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자식을 증오하는 스스로에게 죄의식을 느껴 분노의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한 아멜리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무서워서 그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어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히고 봉인해뒀지만, 남편이 아니라 차라리 아들이 죽기를 바란 심정은 그의 마음속 깊이 감춰둔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내였기에 아이를 위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자기 암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결국 처절한 고립감과 소외감을 아들에게 전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은 엄마와 아빠 역할에 차이를 두고 여성의 모성을 신성시한다. 가부장제 사회가 찬양하는 모성이란 임신 출산 육아에만 올인하는 모성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제도로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기만적인 모성애, 즉 모성이 아니라 모성애‘착’이다. 이처럼 왜곡된 모성애만을 절대시할 때 어머니가 된 여성 개인의 존재는 철저히 지워지고 역할만 남는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성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조건 자식을 위해 ‘엄마답게’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 설령 그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이거나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싱글맘이라도 상관없다. 여성은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하면 욕을 먹는다. 반면 남성은 아빠 코스프레만 잘해도 칭찬받는다. 엄마 역은 대충하면 비난받고 아빠 역은 시늉만 잘해도 표창 감이다. ‘프렌디’는 있어도 ‘프렌맘’은 없는 이유, ‘딸바보’ 아빠는 자랑이지만 ‘아들 바보’ 엄마는 공포인 이유다.

<바바둑> 스틸컷

대다수의 여성들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리고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좀 더 잘하면, 내가 좀 더 참으면, 내가 좀 더 상냥하면 상황이나 상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식조차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가사노동과 육아 그리고 임금노동이라는 삼중고에 허덕이는 가난한 싱글맘에게 척하면 알아서 뭐든 해결해주는 요술봉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한결같은 미소로 반응하는 엄마, 아이의 끊임없는 요구에 화 한 번 내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가?

“네 머리통이 박살 나 으스러질 때까지 후려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아들에게 고래고래 악을 쓰며 폭력을 휘두르는 엄마, 아멜리아의 모습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어머니는 자식에게 언제나 자애롭다’는 모성 이미지를 여지없이 박살 낸다.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아이, 잠을 자지 않는 아이, 24시간 엄마만 찾는 아이, 한눈을 파는 순간 사고 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면 독박 육아와 초과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은 어떤 기분이 들까. 아이에게 화를 내고 해치고 싶은 폭력 충동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멜리아의 처지에 공감해 속이 후련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여성이 더 많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 동시에 불현듯 밀려드는 죄책감과 슬픔에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일지라도 그 자식이 인내심을 극한까지 시험할 때 천사처럼 미소 지을 수 있는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건 정말 인간답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강철 인간은 없다. 성별에 따라 나약함의 정도가 달라지지도 않으며 자식 유무에 따라 천하무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여자든 남자든 삶이라는 무게에 지치고 힘들어하며 외로워하고 상처받기 쉬운 개인이라는 점은 똑같다. 부모라는 역할을 떠나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일 뿐이다. 어머니이기 전에 우리는 그저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바바둑> 스틸컷

바바둑에게 잠식당해 미쳐가는 아멜리아에게 사무엘은 외친다.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거 알아. 바바둑이 그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난 엄마를 사랑해.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의 행복은 엄마에게 달려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엄마인 여성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지치고 힘들고 주저앉고 싶고 소리치고 울고 화를 내고 싶어도 나는 ‘엄마니까’ ‘엄마라면’ ‘엄마가 되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못된 거라고 억누르면서 ‘괜찮다, 괜찮다’라는 주문을 외는 것은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 ‘바바둑’을 키우는 길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내면이 병들고 감정이 죽어버리고 자아가 붕괴하는 길이다. 그때 부정하고 억압한 무의식은 바바둑이 되어 되돌아온다.

<바바둑> 스틸컷

마지막 엔딩이 길게 뇌리에 남는다. 이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쫓아냈으니 더 이상 공포는 없을 것 같지만 그건 영화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여성들은 바로 자기 내면의 바바둑을 들여다봐야 한다. 아멜리아에게 바바둑은 없어지거나 사라진 게 아니다. 잠시 가둬두었을 뿐이다.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내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그가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서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영화 속 대사처럼 감독은 이 세상 모든 아멜리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써 괜찮을 필요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정말 짧아요.” 세상에 태어난 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바로 생 하나뿐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삶,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함께’ 살아야 한다. 내 안의 두려움을 알아차리는 것도 용기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용기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진짜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공포영화를 보고 싶은데 무서워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바바둑>이 제격이다. <82년생 김지영>(김도영, 2019)의 호러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솔직히 무섭고 잔인하기보다 아프고 슬펐다. 이 영화가 오금 저리는 공포감을 선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처연하고 슬펐던 이유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오늘도 자신의 ‘바바둑’에 맞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싸우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 너무 많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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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암사자(들)> 등 연출, 『그건 혐오예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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