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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도상희 / 2019-12-16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리뷰   ▶ GO 퍼플레이                  
박강아름|2015|다큐멘터리|한국|93분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스틸컷

2008년. 스물일곱의 박강아름은 외롭다. 남자친구를 원한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소개팅은 번번이 실패다. 아름은 궁금하다. ‘나는 왜 남자친구가 안 생겨?’ 이 질문으로부터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5)라는 셀프 다큐는 시작된다.

“선생님은 자신을 더 아름답고 여성스럽게 가꾸셔야 해요. 남자들이 좋아하게요.” “얘가 그랬는데요. 선생님은요. 전신을 다 고쳐야 된대요!” “넌 그 머리가 안 어울려. 약간 보이시한 머리 해봐. 그런 바가지 스타일 머리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요청에 아름이 임시교사로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동료 교사의 무례한 답안이 쏟아진다. 

아름은 거울 앞에 선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몸과 얼굴을 비디오 다이어리 형식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사적 다큐멘터리’ 혹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등으로 설명되는, 자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60년 이상 이어져 왔다. 1960년대 시네마 베리테의 참여적 태도에서 발아해 1990년대 마이클 무어의 작품들로 한 번의 전기를 맞이했고, 이후 가볍고 저렴한 디지털 캠코더와 편집기의 보급화를 비롯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누구나 ‘나’에 대해 영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스틸컷

아름이 자신을 찍으며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낮에 들은 사람들의 말 속에 존재하는 대상화된 몸이다. 아름은 자신의 입으로 타자의 시선을 말한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생겼지? 다리는 무다리고.”

아름은 자신을 바꿔서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노력’을 시작한다. 화장을 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새 옷과 구두를 사 자신을 끼워 맞춘다. 네 번째 소개팅 끝에 아름은 첫 남자친구를 가진다.

여기에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모습으로 바꿨더니 남자친구가 생겼어요’라는 결론을 갖고 말이다. 그러나 아름은 잠수 이별을 당한다. 이제부터 ‘가장무도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한 아름은 긴 머리를 치렁거리는 집시가 되기도 하고, 파란색 아이섀도를 칠하고 링 귀걸이를 한 일명 ‘재미교포 스타일’이 되기도 하고, 교복을 입기도 하고, 히잡을 써보기도 한다.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수행적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서의 ‘가장무도회’ 파트는 가장 흥미롭지만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노력해 만들어낸 가짜 모습으로 얻는 사랑은 결국 공허함으로 끝난다는 것을 아름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가면이 벗겨지면 상대는 떠나고 만다는 것, 그런 식으로 받는 거짓 사랑은 자신의 외로움을 더 깊게만 하리란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애써보고 싶었던 마음을 탓할 수 있을까.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포스터

몇 번의 가장무도회가 끝나고 바뀐 씬은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며 급작스레 아름의 연애와 결혼 소식을 알린다(박강아름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박강아름 결혼하다>에 등장하는 ‘외길식당’을 운영하는 남편 정성만씨다). 아름은 어떻게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없다.

허무한 가장무도회가 끝난 뒤, 아름은 자신을 대상화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낸 것일까? 이 영화는 ‘자신의 본 모습과 내면을 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다 해결됩니다. 모두 행복해질 수 있어요!’로 무책임하게 끝나게 되는 걸까? 싶은 순간, 아름은 결혼 후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학생들의 수업만족도 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듣는다. “선생님도 서비스직인데 옷 좀 신경 써주세요.” “보기 불편한 옷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는 끝없는 외모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스틸컷

다섯 살짜리 소녀 중 40%가 ‘날씬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회(정신과 전문의 하지현)다. “거울 속의 내가 너무 별로여서 약속을 취소한 적 있다”는 고백에 한 교실의 여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웅진지식하우스, 2017). 내가 좋아서 입는 옷,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치장들에 대해 타인들은 저마다 지적하고 상처 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아름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과감히 드러냈다. 애인과 헤어진 후 우느라 일그러진 얼굴, 뱃살 접어 보이기, 허벅지 살 드러내기, 속옷만 입고 거울 앞에 서기. 그 모든 이미지는 이미지로서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나는 이렇게 생겼다!’ ‘이것이 나의 몸이다!’ ‘이건 내가 가진 신체일 뿐이다!’ 아름의 노출은 미디어를 통해 매끈하게 다듬어진 신체만을 소비해왔던 관객에게 처음에는 생경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속되는 아름의 영상 일기를 통해 우리는 점차 그의 몸을 보는 일에 무감해지고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게 된다. 그 몸은 한 사람이 이 땅에 발 딛고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형식으로 보일 뿐이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스틸컷

가장무도회라는,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방식에서 시작해 연애와 결혼을 겪고 자신의 몸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을 아름(그 과정에서의 고민 해결 과정이 좀 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은 영화의 말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상처를 받았어. 상대방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어. 그런데 그 말들이 나한테도 영향을 끼쳤어. 그런 말들이 내가 나의 외모를 점검하게 하는 하나의 가시처럼 됐어. 나조차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조금 달라진 지점이, 지금은 그 어떤 얘기를 들어도 불편할 뿐 상처는 안 돼. 왜냐하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의 문제니까.”

박강아름은 ‘남자친구 찾기’로 시작된 질문을 발전시켜, 자신의 외모를 긍정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하나의 답을 전한다. 외모 평가의 화살이 나에게 박히게 놔두지 않고 땅에 떨어지도록 관조할 것. 그저 자기 자신이 될 것.


*제목은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에서 따왔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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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DMZ국제다큐영화제 홍보마케팅 스태프, 2019 인디다큐페스티발 홍보마케팅 스태프,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출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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