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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씨네펨X퍼플레이] 퍼플프레임 기획전 ➃전부 치는 여자들

<전 부치러 왔습니다><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마더 인 로>

퍼플레이 / 2021-12-28


2021.9.23.|[씨네펨X퍼플레이] 퍼플프레임 기획전 ➃전부 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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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시네마테크 ‘씨네펨’과 퍼플레이가 만났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는 [퍼플프레임] 기획전을 9월 한 달간 매주 목요일 저녁 트위터 ‘스페이스’를 통해 진행합니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연결돼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주고받는 영화 토크를 퍼줌에서 만나보세요.
진행자: 아카(씨네펨 운영진)
토커: 춘삼, 핑구(씨네펨 운영진), <마더 인 로> 신승은 감독


<전 부치러 왔습니다>(장아람, 2019)

#첫인상 

춘삼
: 이번 기획의 이름과 비슷한 제목의 영화잖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기대를 갖고 봤는데 참 재밌었어요. 오민애 배우님이 나오셔서 너무 반가웠고요. 주인공 형기(김병춘)가 갱년기잖아요.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엉엉 우는 장면들이 있는데 한국영화에서 질질 우는 중년남성을 잘 보지 못했던지라 그런 점에서 신선했고 굉장히 재밌는 단편이었어요. 

<전 부치러 왔습니다> 스틸컷


아카: 갱년기를 맞은 아빠 홍기가 외로움에 사무쳐서 사과 한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딸이 있는 부산으로 달려가잖아요. 출발할 때 깔리는 BGM이랑 슬로우 모션이 명절 영화 같지 않게 힙하게 느껴졌어요(웃음). 이 영화는 나를 웃기려는 목적이 있구나 싶었어요. 아버지인 홍기가 무해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그것도 신선하다고 느껴졌어요. 아버지의 눈물이라고 하면 보통 영화에선 숭고하고 거룩한 느낌인데 이 영화에서는 볼품없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거죠. 가부장의 대표인 아빠가 무해한 캐릭터로 나왔다는 게 새롭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핑구: 이번에 두 번째 보는 거였는데 또 봐도 웃기더라고요. 촬영이 돋보이는 영화였어요. 

아카: 트위터에 밈이 있잖아요. ‘전 부치러 왔습니다’, ‘전부 치러 왔습니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돌 때 전 부치러 간 며느리가 빡쳐서 모든 걸 뒤엎는 영화인 줄 알았어요. 

춘삼: 누가 페미니즘적인 코미디 호러 명절 영화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아카: 한국판 미드소마. 

춘삼: 차례상에 절할 때마다 제 스스로가 바보 같거든요. 몸은 절을 하면서 공포영화 찍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언젠가 한번 그런 영화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카: 신승은 감독님은 첫 인상 어떠셨나요? 

신승은: 좀 부러웠어요. 감독님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절대 아버지를 저런 식으로 그릴 수 없거든요. 귀여웠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셔서 반가웠습니다. 오민애, 안민영 배우님과 이번에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여러모로 반가운 영화였어요.


#가장 좋았던 장면
 

춘삼
: 은영(류아벨)과 홍기가 바다에 온 김에 사진 찍는 장면이요. 둘이서 사진을 찍는데 얼굴이 화면에 꽉 차서 뒤에 바다가 하나도 안 보이잖아요. 은영이 핸드폰을 들고 있고 홍기에게 뒤로 가라고 해요. 그럼 홍기가 또 고분고분 뒤로 가서 수그려줘요. ‘바다 잘 보여?’ 물어보고. 그게 너무 귀엽고(웃음). 그런 부녀관계 저는 가질 수 없었지만 영화로라도 보니까 귀엽고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전 부치러 왔습니다> 스틸컷


아카: 홍기가 온 이후로 시댁의 명절 풍경이 달라지잖아요. 그게 기이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홍기가 오기 전에는 며느리만 일을 한단 말이에요. 가부장적 질서 아래서는 ‘당연한’ 풍경인데 사돈어른인 홍기가 와서 전을 부치는 순간 깨지죠. 다른 집안의 가부장이 와서 가부장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니까 다들 거실에 모여서 전을 부치거든요. 이 영화가 단순히 재밌는 명절 코미디라기보다는 호르몬 하나로 좌지우지되는 남성성을 꼬집고 가부장제의 허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코미디라는 장르를 택하신 것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메시지는 강렬하다고 느꼈어요. 

신승은: 오민애 배우님과 안민영 배우님이 만나게 되는 장면, 두 집안이 위계 없어 보이는 장면이 좋았어요. 

아카: 명품 스카프도 사돈 따뜻하게 가시라고 매주잖아요. 그 마음이 너무 훈훈했어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이나연, 2018) 

아카: 지혜, 지훈, 지윤 세 남매가 모여서 김장을 하는 영화죠. 

춘삼: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드는 영화예요. 보면서 저희 남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어떤 결의 작품인지 분류하기가 어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얼리즘에 가깝기도 하고 표현주의적인 장면도 있고 무슨 결의 영화일까 하면서 봤는데 아직까지도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인 것 같아요. 중반까지는 픽스된 카메라 앞에서 인물들이 계속해서 대화를 해요. 실없는 듯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데 뒤에 가서 갑자기 엄마가 나타나서 춤을 춰요. 그때 범상치 않은 영화구나 생각했어요.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인상적으로 활용되는 장면도 있잖아요. 무키무키 만만수의 이민휘 님이 영화음악을 맡으셨더라고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스틸컷


아카: 저는 페이크 다큐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디렉팅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해주시는 분이 있는 반면 배우님들에게 맡기는 현장이 있잖아요. 이 영화는 배우들의 자유도가 높은 현장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미지 없이 대사만 들어도 재밌을 것 같았고요. 완벽한 감독판 시나리오를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핑구: 영화가 하이퍼 리얼리즘이죠. 남매간의 대사도 그렇고. 막내도 집안에서 본 듯한 막내 느낌. 남동생은 진짜….


#좋았던 장면

춘삼: 아프리카 옷을 입고 엄마와 춤추는 장면이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마술적인 장면들을 좋아하거든요. 그 장면에 훅 빠졌다가 컷하고 없었던 장면인 것처럼 넘어가잖아요. 엄마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장면에서 그런 게 느껴졌어요. 

아카: 세 남매가 유자차 마시면서 방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풀샷 픽스로 쭉 흘러가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요. 감독님께서 대사를 워낙 물 흐르듯 재치 있게 잘 쓰시기도 하고 배우들이 찰떡같이 살려주셔서 너무 재밌게 봤어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스틸컷


춘삼
: 남동생이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는데 그 타이밍들도 너무 적절하고 대화도 현실적인데 재밌어요. 엄청난 무용담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얘기인데 왜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유자차를 담아 마시는 컵도 옛날 할머니 집에 가면 있을 법한 것들이잖아요. 너무 다 리얼리즘적이라서 이런 미술을 어떻게 했을까 싶었어요. 

핑구: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보내준 옷을 세 남매가 나눠 입는 장면도 좋았어요.


<마더 인 로>(신승은, 2019)

아카: 딸의 자취방에 반찬을 주러 온 엄마 형숙(안민영)이 딸의 동거인 민진(손수현)을 만나게 되는 영화죠. 손수현, 안민영 배우 두 명의 호흡으로 꽉 채운 작품입니다. 

춘삼: 중간 중간 챕터처럼 타이포가 뜨잖아요. 맨 처음에 형숙이 들어오자마자 크게 ‘누구?’라고 뜨는데 거기서부터 너무 웃기고 좋더라고요. 한 공간에서 대화로만 이끌어가는 영화라 몇 막 몇 장같이 적어놓은 것처럼 느껴져서 연극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카: 대사에 티키타카가 잘 살아있는 영화라 소리만 들어도 재밌겠다, 극본집만 봐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춘삼님이랑 비슷한 감상을 적어놨어요. 연극으로도 보고 싶더라고요. 한 공간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인데 소품이나 장면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고, 리얼 타임으로 연극처럼 한 호흡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핑구: 그것 자체가 재치가 있잖아요. 언제 들킬지 모르는 조마조마함. 

아카: 다 같이 속으로 ‘좆됐다’를 외치게 되는 그 장면(웃음). 


#좋았던 장면 

춘삼: 엔딩에서 형숙이 ‘샐리’ ‘오드리’ ‘마더 인 로’가 쓰인 종이를 달라고 하잖아요. 딸 현서(임새라)가 헤테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형숙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종이를 챙겨갖고 간 건 형숙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제스처라고 느껴졌어요. 이 영화 보고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떠올랐고요.

<마더 인 로> 스틸컷


아카
: 저도 <너에게 가는 길>이 떠올랐어요. 만약에 <마더 인 로 2>가 나오게 된다면 형숙이 조심스럽게 성소수자부모모임에 가서 조언을 얻게 되는 장면이 나와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숙의 표정이 급변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민진의 성적표를 보고 나서예요. 민진이 장학생인 걸 알게 되자마자 태도가 살가워지는 게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급물살을 타는 관계가 재밌었죠. 그전에는 민진 혼자 안절부절 못하면서 혼자만의 상견례를 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놓였어요. ‘얘 좀 괜찮은 애였네?’라고 보는 형숙의 눈이 너무 재밌었어요. 근데 어느 정도 부드럽던 민진과 형숙의 관계가 민진이 딸의 애인인 걸 알게 되는 순간 확 얼어붙잖아요. 관계의 흐름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어요. 플롯의 힘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쥐었다 폈다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승은 감독에게 묻다

춘삼: 마지막에 형숙이 종이만 챙겨가지고 가잖아요. 그 장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텐데 다른 버전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신승은: 다른 버전은 없었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희망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잖아요. 어찌 됐든 여지가 있는 걸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 딸 여자친구 있었어? 같이 살아서 잘됐네~’ 이건 현실을 외면한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너 우리 딸 여자친구였어? 짐 싸서 나가!’ 이런 건 고통을 재현하는 것밖에 안 되죠. 그 사이에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고통을 재현하지 않고 희망을 한 스푼 넣고 싶었어요. 

춘삼: 딱 적절한 엔딩이었던 것 같아요. 쿠키를 넣으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승은: 현서가 뽀뽀만 하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웠어요. 그 다음 날의 모습, 어둡지 않은 환한 낮의 집, 둘만 있는 연인의 집을 보여주고도 싶었고요. 

춘삼: 초인종 소리는 다음 작품에 대한 예고인 걸까요?

신승은: 아니요. GV때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한데 매번 다르게 답해요. 택배다, 아빠다, 민진의 엄마다, 라고 답하곤 하는데 관객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춘삼: 민진의 전공을 영문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신승은: 소재를 생각하고 플롯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원 로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한국적인 공간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영어를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문과로 설정하게 됐습니다. 

핑구: 민진과 현서 사이에는 원래 더 많은 설정이 있었나요? 

신승은: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부터 말씀을 해드릴게요. 민진이는 영문과, 현서는 디자인학과인데 현서는 계획이 없는 아이예요. 민진이는 계획도 철저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교양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같은 조가 된 거죠. 사람들이 민진이한테 과제를 다 떠맡기고 아무도 안 하는 거예요. 그런 민진이가 불쌍한 현서가 발표 전날에 민진이네 집에 가죠. 여러분, 집으로 갔다고 해서 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웃음). 밤을 새서 과제를 하고 발표를 마치고 난 후 피곤한 상태에서 현서가 민진이한테 맥주 한 잔 하겠냐고 합니다. 둘은 술을 마시게 되고, 현서가 민진이한테 뽀뽀를 하고, 민진이가 키스를 하고. 그렇게 만나게 됐습니다.

<마더 인 로> 스틸컷


춘삼: 민진이가 바닥에 앉았다 의자에 앉았다 위치를 계속해서 바꾸잖아요. 어떤 계산 하에 집어넣은 설정이었나요?

신승은: 제가 처음으로 자취하면서 구매한 책상과 의자였어요. 싸구려를 사서 1분만 앉아 있어도 꼬리뼈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손님이 오면 바닥에 앉으라고 했는데 손님이 바닥에 앉는 상황이 재밌더라고요. 근데 그 상황에서는 형숙을 정말 배려한 거잖아요. 민진이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카: <마더 인 로>가 대사의 힘으로 끌고 가는 영화다 보니 한 번에 치는 대사 양이 길어요. 대사가 긴 편임에도 불구하고 연기 합이 정말 좋다고 느꼈는데요. 현장에서 혹은 프리 단계에서 디렉팅하실 때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신승은: 형숙의 감정이 변하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민진이가 형숙의 기분에 맞춰 잘 보이려고 계속 맞춰주는데, 자기가 이끌고자 하는 대화 방향으로 형숙이 안 가주거든요. 따로 가는데 티키타카가 되게 하는 것. 사실 배우님들이 다 해주셔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엄청난 연기력을 가지신 분들이라 제가 덕을 많이 봤습니다. 

<마더 인 로> 스틸컷


아카
: 그런 배우를 알아보는 것도 감독님의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진이 형숙에게 잘 보이려고 어머니 김치 맛있다고 연거푸 칭찬하는 장면 너무 귀엽지 않나요? (웃음) 

신승은: 그 장면을 편집할 때 ‘제발 그만. 민진아 제발 그만해라…’ 말하면서 편집했어요. 

아카: 미술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건이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지잖아요. 그만큼 로케이션 섭외와 미술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장소를 섭외하고 꾸미는 과정에서 무엇에 중점을 두셨는지 궁금해요. 

신승은: 복층이라서 둘의 침실이 보이지 않을 것. 형숙이 보이는 쪽에는 빨래나 청소기, 생활 용품들이 많을 것. 민진이 보이는 쪽에는 가위나 문구용품, 학습 관련 용품들이 많을 것. 형숙 위에 애매하게 둘의 커플사진이 걸릴 것. 근데 돌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도록 할 것. 그런 것들이었어요. 

아카: 아슬아슬함을 담으셨네요. 

신승은: 네. 그리고 둘 사이에 문이 배치될 것. 문이라는 물체가 저에겐 불안의 이미지거든요. 악몽을 꿀 때도 누가 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많이 꿔요. 그래서 둘 사이에 문을 두고 불안한 긴장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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