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퀴어 053> 출연진 배진교
퍼플레이 /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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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 <퀴어 053> 스틸컷
-이번 영화가 대구퀴어문화축제의 10년 발자취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세월 동안 축제를 만들고, 지키고, 키워온 소감이 어떠신지요.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참여해 오롯이 관객으로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알게 됐어요. ‘우리가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고요. 영화에 나온 분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만나서 소주 한잔하며 축제 얘기도 했는데 참 고맙더라고요.
-다큐멘터리에 인터뷰이로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우선, 박문칠 감독님 혼자서 장비를 하나하나 직접 세팅하고 진행하시는 게 놀라웠어요. 조명을 담당하는 분 정도는 같이 계신 줄 알았거든요. 하하. 인터뷰를 진행했던 장소가 게이바 골목에서 유일한 레즈비언바였거든요. 3~40대 이상의 레즈비언들을 위한 장소였는데 모일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4년 동안 운영하던 바였어요. 지금은 다시 게이바가 됐는데 그 장소가 영화 안에 같이 남아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특별한 에피소드로 남습니다.
<퀴어053> 스틸컷
-대구퀴어문화축제의 10년 역사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영화가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값진 것 같습니다. <퀴어 053>이라는 작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기를 바라시나요.
‘공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퀴어들은 늘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양한 방식과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 여러분들과 똑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지요. 퀴어문화축제가 다소 생소하고 낯설기도 하겠지만 그 생소함을 받아들이고 저장해주세요.
-처음 행사를 시작하실 때 주변에서 ‘지속성’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우려를 떨쳐버리고 지금까지 지속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 또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고, 지역에서의 깊고 넓은 ‘연대’가 원동력이고 비결인 것 같습니다. 1회는 ‘해보자’는 의욕으로 치를 수 있었는데 다음 해가 되니 막막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언제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2회, 3회가 되었고 함께 해준 분들이 계셔서 매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퀴어 053> 스틸컷
-지난 10년간 행사를 진행해오시면서 참 많은 일을 겪으셨겠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해 혹은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년 그 해만의 의미와 사건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긴장을 많이 하고 고민이 많았던 해는 2014년 6회 때입니다. 점점 축제가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2.28기념공원 사용이 불허가되면서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전국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공공에 악영향을 미치고 아직 대구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불허 사유였는데, 이에 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대구시에 항의하고 대구시청 앞과 동성로 광장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들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대구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대구기독교총연합이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대구기독교총연합이 축제를 막겠다는 공식선언을 했고, 조직위원회는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지키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이 각자의 진영에서 총집결하게 된 이유가 되어 실제로 반대 측 관광버스 수십 대가 전국에서 대구로 몰려들었고 축제를 지키려는 퀴어들도 ‘퀴어버스’를 조직해 대구로 모였습니다. 경찰에서도 양측의 충돌을 예상해 전국의 의경과 전경 소집령을 대구로 내렸을 정도니까요. 혹시나 제가 테러를 당할까봐 정보과에서는 제 주변을 사복경찰들로 에워싸기도 했었습니다. 대구기독교총연합과 한국기독교총연합의 공식선언이 가져온 긴장감은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더 깊게 연대하도록 도왔고, 그 연대가 빛을 발하던 해였습니다. 또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전국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고, 혐오세력의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반대에도 마침내 자긍심의 행진이 성공을 이루며 축제를 지키려는 이들의 자부심이 어느 해보다 강했던 여름이었죠.
<퀴어 053> 스틸컷
-대구를 시작으로 지역 내 퀴어문화축제가 활성화됐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보람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새삼스러우실 테지만, 축제의 조직위원장으로서 소회가 어떠신지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대구지역에서 축제를 이어간다는 것이 많은 지역에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축제를 열고 싶어하는 지역을 찾아가 준비과정과 경험을 들려주는 강연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지역에서 축제 첫 회를 맞을 때는 정말 보람됐고 대구에서 1회 퍼레이드를 할 때가 떠올라 벅차기도 했습니다. 서울과 대구에 이어 부산, 제주에서 축제가 생겨나자 ‘축제연대’를 만들었어요. 매년 2월 워크숍을 열어 한 해를 평가하고 준비하는 시간과 선경험 지역에서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갖습니다. 축제연대에서 경험들이 잘 공유되어 더 작은 마을까지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길 바랍니다. 어디에든 퀴어들은 존재하니까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예전만큼 퀴어문화축제를 치르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누구보다 아쉬움이 크실 것 같아요. 이러한 시국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점이 답답함을 키우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시기를 잘 견뎌내야 앞으로를 내다볼 수 있을 텐데요. 어떻게 헤쳐나가고자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다섯 지역(광주, 춘천, 인천, 대구, 제주)을 연결하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3일에는 “2021년 연결된 축제, 하나의 목소리”라는 슬로건으로 축제 개최를 알리는 선포 기자회견을 가졌고요. 10월 10일, 광주부터 시작되는 ‘연결된 축제’가 진행됩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혐오가 성소수자 집단으로 향하기도 했고, 동료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연이어 겪은 성소수자들에게 위로와 지지가 절실하다고 생각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하나로 내기 위해 좀 더 단단하게 지역을 연결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 전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해봤을 때 퀴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봐도 될지 궁금합니다.
아직 더 가야겠지만,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퀴어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집회신고를 할 때 ‘퀴어문화축제’라고 적어도 경찰들이 ‘퀴어’인지 ‘큐어’인지 몰라서 다시 물어보기도 했었고요. 저희가 첫 회 때부터 동성로 한가운데서 축제를 진행했는데 시민들이 싫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신명나는 풍물이나 음악이 나오면 자리에 앉아 구경할 정도였는데 ‘퀴어’라는 뜻을 몰라서 같이 즐긴 거죠. 이렇게 편견 없이 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입니다. 시민들의 인식이 나아지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높아질수록 반대하는 세력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 세력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 경험을 계기로 자신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0명 중 9명이 ‘나도 차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고,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고, ‘성적 지향·정체성’과 관련해서도 응답자의 73.6%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 <퀴어 053> 스틸컷
-혐오와 차별이 담긴 발언과 시각은 때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든 있어 왔지만, 최근에는 체감상 발화 수준이나 내용이 과거보다 더욱 심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디지털 시대, 퀴어 가시화 등 환경 및 사회 변화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할 테지만요.)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고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차별하는 사람, 혐오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차별해도 되는 사회가 있을 뿐이죠! 차별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혐오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기 어려운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차별을 발견해내야 하고, 차별을 알아차리는 만큼 철폐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역사니까요.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고자 할 때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논란이 배제되었던 존재를 등장시키고 평등한 사회로 안내하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등은 차별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으며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활동가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어떠한 꿈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제가 꿈꾸는 세상은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존중받고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산책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거리의 인파속에서도 눈에 띄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것. 이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퀴어문화축제도 혐오세력으로부터의 안전을 고민해야 하는 축제가 아니라, 집회신고를 위해 몇날며칠을 밤새워 줄을 서야 하는 축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최자와 참가자들이 즐거울까?’만 고민하면 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우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방법 중 가장 알려져 있는 방법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세상과 자유롭고 탄탄하게 연결되길 바라봅니다.
-퍼플레이를 통해 <퀴어 053>을 보게 될 예비 관람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지역, 지역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도시 대구, 그 대구 중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관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나를 온전히 설명하려면 하나를 더 꺼내야 했기에 언제나 나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나를 증명해내고 같은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장이었고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내가 퀴어로 한국사회를 살아간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에는 저희의 동료시민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라봅니다. 관람하시는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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