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삶을 위로하는 ‘춘희’의 찬가

<태어나길 잘했어> 최진영 감독

퍼플레이 / 2022-04-14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2.4.8.|최진영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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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감독 필모그래피 
2022  <태어나길 잘했어> 감독 
2021  <가장 환하고 따뜻한> 감독
2018  <연희동> 감독
2017  <뼈> 감독
2016  <반차> 감독, 각본, 제작, 편집
2014  <낙원동> 감독, 각본
2012  <노스페이스> 감독 
2010  <마리와 레티> 감독 
2007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감독, 각본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춘희(강진아)는 삶이 아닌 땀에 ‘쩔어’ 있다. 다한증 때문에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다. 영험한 기운을 가진 벼락이었을까. 그날 이후 춘희의 눈에는 10대 춘희가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나’는 과연 고난일까 구원일까. 

최진영 감독의 꿈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그 원형 또한 흥미롭다. 벼락을 맞은 후 자아가 남자와 여자로 분리돼 서로 사랑을 나눴단다. 그렇게 써내려간 초고에서 방향을 틀어 설정을 바꾼 것이 <태어나길 잘했어>(2022)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험한 사회적인 죽음은 고등학생이었던 최진영에게 공포였고 90년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기가 됐다. 스스로를 90년대에 멈춰있는 사람이라고 칭한 그는 그때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하고 넘어가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감독과 춘희는 자신에게 공포였던 시기를 직면하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외갓집 다락방에 얹혀살던 춘희는 성인이 된 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비로소 나를 사랑할 힘을 얻게 된다. 

과거의 상처로 한없이 무너지려 할 때, 산다는 건 무엇인가 회의감에 젖어 무력해질 때, 어떤 쓸모도 발견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내가 싫어질 때 이 영화는 우리를 꽉 끌어안으며 말한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 세상에는 한 가지의 색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 모두 각자의 빛깔이 있어. 태어나길 잘했어. 

최진영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감독님은 이 영화를 통해 90년대에서 벗어나게 되셨나요?
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사춘기도 겪고, 관계 맺음에 서툴기도 했고, 막 나가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그래서 90년대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예요. 물론 10대의 내가 꼴 보기 싫을 때도 많은데 이 영화를 하면서 좀 덜 미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제목을 단 이상 제게도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제목을 통해 저 역시 못된 생각들을 많이 고치고 있어요. 여전히 자기혐오 세고 자존감도 낮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에요.

-10대 때는 유라(춘희의 사촌) 같았다고 했는데 그 시절의 최진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싸가지가 없었어요. 친척언니랑 같이 살았는데 너무 막 대했죠. 그래서 언니한테 많이 맞았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과학 영재였어요. 중학교 때 과학을 잘하게 되면서 대학 원서로 물리 화학을 마스터하고, 특차로 과학고를 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는데 결국 가진 못했죠.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지적 욕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아리랑』, 『태백산맥』, 고등학생 때는 전혜린, 사르트르 읽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아했는데 어떤 말들에 상처를 받아서 우울한 척도 많이 했어요. 그때 생각하니까 꼴 보기 싫어요(웃음). 보통의 10대였는데 이상하게 그 시기가 저에겐 아팠던 것 같아요. IMF 터지고 나서 보기 싫은 뉴스 봐야 하고, 수학여행 못 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고통스러웠고요.

-사회적인 아픔 때문에 겪은 성장통이었을까요?
국가부도가 나서 일가족이 사망한다는 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같은 동네에 사는 옆 학교 학생의 소식을 듣고 정말 충격 받았었어요. 구조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때였는데 처음으로 사회적인 죽음을 겪은 거죠. 너무 슬펐어요. 노숙자들도 그렇고요. 그분들을 보면 여전히 마음이 힘들어요.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노숙자에게 특히 마음이 쓰이시나 봐요. 이번 영화에서도 노숙자 캐릭터가 등장하잖아요. 
지금 준비 중인 영화 제목이 ‘20세기 소녀들’인데 이 작품에도 노숙자가 등장해요. 배경이 99년도예요. 90년대를 못 벗어나는 사람이죠(웃음). 여기서는 그 사람이 왜 노숙자가 됐는지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제 버전에서 사운드 믹싱과 색 보정을 다시 하셨다고요. 기존보다 톤이 더 밝아졌나요?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길어서 오리지널 버전에선 잘랐어요. 근데 그 장면에 쓰인 대사가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 개봉 버전에 다시 넣었어요. 영화 후반부쯤 박혜진 배우의 클로즈업 신을 좋은 걸 발견해서 넣었고요. 마지막 내레이션도 바꾸고 DI(Digital Intermediate) 색보정도 기사님이 전체적으로 톤을 잘 잡아주셨어요. 사운드도 손을 봤는데 부족한 룸 톤과 앰비언스를 더 넣었죠. 

-감독님이 좋아했다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90년대에 사촌오빠가 술에 취해 춘희에게 “너만은 변하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청계천 8가’ 노래 가사를 언급하며 산다는 건 참 위대한 것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춘희는 부모를 잃고 외갓집에 기거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일가족 자살 사건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이란 말이에요. ‘네가 산다는 게 뭔지 알아?’라고 오빠에게 되묻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10대의 춘희는 그 말을 못하고 듣기만 하죠. 


-영화 후반부에 춘희가 사촌오빠에게 묵혀뒀던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신에서 오빠는 비추지 않고 오로지 춘희만 보여준 게 좋았어요.
마지막에 춘희가 비로소 자기의 말들을 발현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본래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드러내지 못했다가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인의 방식대로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춘희만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춘희는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자랐지만 그늘이나 구김살이 없어요. 이런 특징은 강진아 배우의 피드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춘희는 원래 어둡고 답답한 캐릭터였어요. 그걸 보고 진아 씨가 독립영화 특유의 우울한 캐릭터를 깨보면 안 되겠냐고 했죠. 우리 영화도 그렇게 밝은 영화는 아니지만, 춘희를 사랑한다면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진아 씨가 한 번 더 확인해줬고요. 춘희를 너무 박복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자는 게 모토가 됐죠. 그렇게 캐릭터 톤을 중화시켜나갔어요. 

-춘희는 고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타인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 같아요. 주변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쓸 줄 알고요. 노숙자 황소정에게도 끝까지 도움을 주고 도망치잖아요. 어떻게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요?
춘희는 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식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과가 방어기제를 만들었죠. 하지만 스스로 결핍감을 잘 알고 있기에 반대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숙자에게 신발을 줄 수 있었던 거고요.

-노숙자 캐릭터의 서사도 궁금했어요. 전사가 따로 있나요? 
춘희가 시나리오 초고에선 친척 오빠가 운영하는 학원의 과학 선생님이었어요. 그래서 노숙자와의 우정이나 연대를 생각했을 때 노숙자도 춘희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정형화된 노숙자 캐릭터에서 벗어나려고 나사(NASA)에서 일하다 쫓겨난 박사님으로 설정했는데 너무 간 것 같다 싶어서 걷어냈어요.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춘희는 왜 하필 마늘을 까게 된 건가요.
초고에 썼던 학원 선생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한증이 있지만 손으로 뭔가 잘 하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춘희가 장애라고 느낀 것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실제로 다한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다른 사람들과 손도 못 잡고 주눅 들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주황 역시 말은 더듬지만 태평소를 잘 부는 인물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어요. 

-주황은 춘희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인물이죠. 그 마음이 예뻤지만 자칫 잘못하면 폭력이 될 수도 있잖아요. 남성 캐릭터를 그릴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지점인 것 같은데 그런 점에 있어서 주황은 섬세하게 설계된 것 같았어요. 
서툴지만 자기감정에 충실하되 선을 넘지 않는 남자 캐릭터를 만든 건 의도적이었어요. 제가 에릭 팬인데 <또 오해영>에서 에릭이 연기한 캐릭터가 보여주는 ‘박력’이 싫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영화에서는 덜 비호감인 남자가 나오길 바랐어요. 사실 “내가 지켜줄게요”라는 대사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어요. 네가 뭔데 지켜주냐고요(웃음). 그런데 주황이 수문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게 자기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남성 자아를 과거의 자신으로 변경한 게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후 바꾸게 된 설정이라고요. 
처음엔 주인공이 남자 자아를 만나 사랑에 빠져 스스로를 사랑하는 서사였어요. 그런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이성으로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구원 서사로 가기보다는 내가 지나왔던 시절의 모습, 공포라고 생각했던 한 시기를 끄집어내 직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원래 춘희와 주황이 재회하는 신이 있었는데 내가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촬영 전에 다 뺐어요. 

-변화한 가치관으로 시나리오 상에서 바뀐 지점이 또 있다면요?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게 워낙 뚜렷했기 때문에 크게 바뀐 건 없어요. ‘나 스스로를 여유 있게 안아주자’가 모토였죠. 다만 에피소드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외숙모. 그런데 생각해보면 외숙모도 시집살이를 하며 조카를 먹여 살려야 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가 느낀 고충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시기의 가정주부로만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담배도 피고 욕도 당당하게 하는, 뚜렷하고 명료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최진영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외갓집 식구들을 보면 외삼촌보다 외숙모가 더 춘희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외숙모에게서 희미하지만 연대의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고요. 
여성연대를 위해 나아가는 영화는 아니긴 한데 어느 정도 반영하긴 했어요. 노숙자나 외할머니와의 관계도 그렇고, 춘희에게 음료수를 건네주는 갈빗집 사장님도 그렇고요. 연대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긴 하지만 실제로 주변에 좋은 여성분들 덕분에 위로를 받곤 하니까요. 

-외삼촌은 너무 쌀쌀맞더라고요. 
여동생의 딸을 데리고 살겠다고 결정했지만 춘희를 온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세팅했어요. 남자 어른의 어떤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죠. 물론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진 않지만요. 외삼촌이 공무원인데 취미로 시를 쓰잖아요. 시를 쓴다고 다 감수성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도 있고요. 

-춘희도 갈빗집에 데려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어요. 
초고에서는 외갓집 식구들이 방에서 문 닫고 자기들끼리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이었어요. 저희 조감독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먹는 거 갖고 치사하게 왜 그랬나 싶어요. 당시에는 약간 자극적으로 쓰고 싶었나 봐요(웃음). 

-강진아, 박혜진 배우는 생김새보다는 풍기는 분위기가 닮은 것 같아요. 두 분을 함께 봤을 때 첫 느낌이 어땠나요. 
두 분 다 키가 큰데 생각보다 안 닮았더라고요. 그런데 얼굴이 묘하게 슬프고 사연 많게 생겨서 춘희가 갖고 있는 외로움이나 결핍감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죠.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어린 춘희와 어른 춘희가 함께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춘희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셨나요? 
시나리오를 디벨롭하면서 연출부, PD와 그 얘기를 많이 했어요. 10대의 춘희는 대체 언제 발현되는 것이냐고요. 춘희가 슬플 때? 힘들 때? 근데 저는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것이야말로 어릴 때의 평범하고 보편적인 모습이라고요. 두 사람이 붙는 장면 중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소각장 신이에요. 영화의 주제가 드러나는 장면이고 두 분 다 너무 잘해주셨죠. 그 장면은 저도 울면서 편집했어요. 

-그 장면 속 대사가 참 좋아요. 
원래 대사가 없었다가 편집하면서 ADR(Automated Dialog Replacement·후시녹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춘희들이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았냐’는 모진 말이었잖아요. 그런 말로는 제대로 못 보내줄 것 같았어요.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라고 해줘야 그 시기를 잘 보내줄 수 있겠다 싶었죠. 대사를 넣고 나서 ‘그래, 이거 말하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후반부쯤에 어린 춘희가 어떤 빌라로 들어가잖아요. 저는 그 집이 춘희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본 어른 춘희의 감정이 복잡한 듯 보였는데 그때 춘희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그게 어린 춘희는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여학생이었어요. 어른 춘희가 그 여학생을 따라가는데 다른 집으로 들어가잖아요.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본 게 헛것이었다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은 거죠.

<태어나길 잘했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춘희 방에 붙어있는 민달팽이가 마치 춘희 같았어요. 집이 없는 것도, 움직일 때마다 점액을 남기는 것도요. 춘희를 표현하는 비유로서 활용하신 건가요?
초반엔 비슷한 오브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민달팽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춘희가 유심히 바라보는 무언가가 벽에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집이 없는 것도, 점액질을 남겨놓는 것도, 천천히 가는 것도 서로 닮았더라고요. 

-춘희의 다락방은 처음엔 좁고 낯선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외톨이로서의 아픔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식처가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외갓집 식구들이 아파트로 이사 간 후에도 춘희는 큰 방으로 옮기지 않아요. 왜 그런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 당시엔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춘희에게도 익숙함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다락방을 나와 새롭게 시작하는 게 춘희의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감독님은 만약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어릴 때 창피한 기억이 많아서 일단 엉덩이를 빡 쳐주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저 역시도 안아줄 것 같아요. 40년 살아온 게 기특하거든요. 그리고 빨리 가라고 하겠죠. 어서 가. 내 안에서, 90년대에서 제발 벗어나줘(웃음). 

-어제를 버티고 오늘을 살아낸 춘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버틴다는 말이 참 슬퍼요.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잘 버텨냈으니 내일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건강했으면, 덜 슬펐으면, 이제까지 살아온 시기들을 덜 미워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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