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비혼 여성으로, 함께 살아가다] <나를 깨우는 바람> 출연진 곽민지 인터뷰

퍼플레이 / 2021-09-06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1.7.31.|<나를 깨우는 바람> 출연진 곽민지(비혼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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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나를 깨우는 바람>(김민주, 2020)은 결혼과 비혼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결혼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살아가자고 말한다. 비혼은 ‘순간’의 선택이 아니다. 비혼을 결심하는 것 그리고 결심까지의 과정만큼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비혼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 비혼을 선택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며, 어떤 노년을 꿈꾸고 있을까? <나를 깨우는 바람>의 감독과 출연진 인터뷰를 통해 비혼으로서의 삶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나를 깨우는 바람> 출연진 곽민지(비혼세)

Q1.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비혼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를 진행하고 있는 ‘해방촌비혼세’ 곽민지입니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비혼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창작활동을 하고 있어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을 쓴 에세이스트이기도 하고, 방송작가이기도 해요. 

Q2. 출연 동기
김민주 감독님께서 이메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비혼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취지도 좋았고, 사려 깊고 정중한 메일도 좋았고요. 여성 영화 감독님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그게 출연이 될지는 몰랐네요. 다양한 비혼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 일이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Q3. 내가 뽑은 하이라이트!
‘분홍색 머리’ 이야기가 좋았다고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고마웠어요. 저는 언제나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했으면 생각하는데, 당시 염색을 앞두고 있었어서 그런지 인터뷰중 생각이 나서 이야기했어요. 내가 분홍색 머리를 하고 싶은데, 밖에 나가보니 갈색머리조차 없다면 마음이 너무 외로워진다, 하지만 연두색 머리도 있고 보라색 머리도 있는 세상이라면 덕분에 내가 분홍색 머리를 하는 데에도 용기가 된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다양한 비혼과 다양한 결혼 서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요. 사실 이 이야기는 그 날 저희 집에 촬영을 하러 온 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한 것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거 찍고 나서 실제로 분홍색 머리 했어요.

<나를 깨우는 바람> 스틸컷

Q4. 나에게 비혼이란?
나의 자연스러운 상태. 비혼에게 비혼이 된 계기를 많이 물어보시는데요. 특별한 계기라는 것은 인생의 특별한 전환을 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지 원래 내 모습대로 사는 사람에게 계기는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물론 특별한 계기를 거쳐서, 원래 결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다가 접은 비혼자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혼자 지내는 저의 삶이 그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을 뿐이에요. 누군가와 법적으로 묶여 공동생활을 하는 삶은 지금껏 상상하거나 시도한 적이 없어요. 개명하지 않은 사람에게 ‘개명하지 않은 계기’를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운데, 그런 질문을 많이 받게 돼요. 살던 집에 살고, 먹던 것을 먹듯이 자연스러운 제 일상이 비혼이에요.

Q5. 비혼으로 사는 삶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돼요. 비혼을 떠올리면 ‘고립’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사람에게 한 명의 법적 파트너가 있는 것을 디폴트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배우자가 없다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종속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해요. 비혼자는 고립된 게 아니라 모든 관계에 열려있고,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저희 집 거실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고, 전국 혹은 전세계 각지에 사는 친구들의 삶에 언제든 숨어들어 며칠간 휴식할 수도 있지요. 비혼의 삶은 모두와 연결되고, 운신의 폭이 넓고, 기동성이 좋은 삶이에요. 저는 비혼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개방성과 연결감이 즐거워요.

Q6. 나는 ( )과 동거한다.
저는 가능성과 동거해요. 일주일의 절반은 친구들과 지내거나 친구들의 집으로 가요. 원가족과도 끈끈하게 지내요. 언제든지 무겁게 약속 잡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서울 곳곳과 성남시, 광명시, 제주, 파리, 도쿄에 있는 셈이에요. 휴가 시즌에는 누구의 가족이 될지 고민하고요.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장되는 느낌이지요. 누구에게도 갈 수 있고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탑재되어있는 느낌이에요. 연애를 할 가능성, 하지 않을 가능성과도 동거하지요. 집에는 언제나 여분의 칫솔과 많은 술잔, 여분의 이부자리가 있어요. 누군가 올 가능성에 맞추어 설계되어있죠.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 커뮤니티형 주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비혼의 친구들 혹은 기혼이어도 함께하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특정 단지를 이뤄서 서로의 반려동물이나 자녀도 공동양육하고 서로를 돌봐주는 커뮤니티요.

<나를 깨우는 바람> 스틸컷

Q7. 어떤 비혼 여성으로 늙어가고 싶으신가요?
지금처럼 비혼의 삶을 덤덤히 보여줄 수 있는 비혼으로 늙고 싶어요. 팟캐스트 <비혼세>에서는 3~40대의 비혼자가 출연하는데, 50대의 비혼, 70대의 비혼, 90대의 비혼자 이야기는 많이 들리지 않지요. 비혼을 평생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 삶을 유지하는 생애 비혼주의자에 한정하지 않고 현재 기혼상태가 아닌 모든 사람으로 규정할 때,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비혼 여성 노인이 있지만 그 삶에 대한 데이터는 너무 적잖아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노인의 비혼 일상은 어떤지 이야기하는 비혼자가 되고 싶어요.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전시로 결혼하지 않은 삶을 상상하게 해줄 수 있는 노년의 비혼자가 되고 싶어요.

Q8. <나를 깨우는 바람> 추천사
꼭 비혼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되는 일이에요. 스스로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도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걸 흥미롭게 구경해주면 좋겠어요. <나를 깨우는 바람>은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나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영화예요. 내 곁의 존재들이 내놓는 이야기를 편안히 들어주었으면,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꼭 어딘가에 꺼내어놓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Q9. 마지막 한마디
여성의 이야기가 점점 다양해지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판단 없이 일단 들어보는 것보다 단단하고 다정한 연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일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퍼플레이와 <나를 깨우는 바람> 팀에 응원과 감사를 보냅니다. 그 노력을 봐주는 관객까지 포함해, 이 일련의 싸이클이 우리를 매일 조금씩 더 자유롭게 해주고 있다고 느껴요. 계속해서 이야기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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