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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나를 해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아가는 일

<코>

정다희 / 2021-05-06


〈코〉   ▶ GO 퍼플레이
윤한나|2019|드라마|한국|27분

<코> 스틸컷

현수와 한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내가 10대 때 이모는 혼자 다치기 애매한 곳을 가끔 다쳤다. 가족 식사를 먹으러 가는 길, 눈가를 왜 다쳤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이모는 전봇대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이모는 저녁에도 선글라스를 썼다. 멍을 가리려고. 밤에 선글라스를 낀 어색한 모습을 보며 나는 순진하게 전봇대로 그렇게 다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코>(윤한나, 2019)를 보면서 나는 이모를 떠올렸다. 우리는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에 대해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나와 친밀할수록 나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나를 때린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 채(어떨 땐 알고 싶어도 알지도 못한 채) 보이지 않는 곳이나 보이는 곳이 다친 모습으로 거울을 바라보게 된다.

연애 대상의 성별이나 연령대에 관계없이,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코>의 주인공 ‘한나’(임선우)도 어린 시절 ‘너를 괴롭히는 남자애는 너를 좋아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까? 나는 들은 적이 있다. 좋아하는 대상이 나를 괴롭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란 셈이다. 한나의 어린 시절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주인공 한나는 그렇게 애매한 상황에서 현수(방주환)와 연애를 시작한다. 현수에게 이미 호감이 있어서인지 현수가 동의 없이 집에 들어와 반려동물을 괴롭히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지 말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까지 하는데, 한나는 현수와 연애를 시작한다.

놀랍게도 자신을 해하는 상황에 무감한, 또는 알면서도 약간은 무시하는 우리는 한나와 닮았다. 폭언을 쏟아붓거나, 만나는 친구를 통제하거나, 반려동물/주변인을 괴롭히거나, 성관계나 연애 관계를 강요하더라도, 상대가 나와 가깝고 내가 좋아할수록 그게 폭력이라고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연애에 독점욕과 관계 통제, 성적 행위가 포함된다고 전제한다면, 위 행동들은 (상대가 우기는 대로) 애정 표현처럼 읽히기도 한다. 거기에 젠더 위계까지 있으면 손목을 잡아채고 기습 키스하는 것이 남성적인 행동이라는 식으로 상황이 심각해진다. <코>는 로맨스로 포장된 상대방의 이상한 태도를 관객이 다시 발견하게 한다. 알아차려야 떨어져 나온다. 한나의 멍든 코는 알아차리기 위한 첫 단추였다. 다친 코는 한나가 자신을 해치는 것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는지도.

<코> 스틸컷

미옥과 한나: 자신을, 서로를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기
영화는 복수극이 아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는다. 한나가 현수 집을 찾아가지만, 집에는 현수가 없다. 현수 어머니인 미옥(신혜경)이 있다. 한나는 당황하다가 미옥에게 “왜 현관문을 열어 놓고 짐 정리를 하세요, 불안하게”라며 걱정하는 말을 한다. 미옥은 자신을 때린 (전)애인의 어머니로 등장하지만 한나는 미옥에게 폭력 피해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다.

자신을 해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단순히 그 상황에 자신을 포기하고 내맡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알든 모르든, 자신을 지키는 일에도 익숙해지는 것이다. 서로를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늦은 밤 택시를 탈 때 긴장하는 사람은 친구 귀갓길이 무사한지를 확인한다. 그렇게 한나는 미옥의 제대로 닫히지 않은 현관문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현수가 과거에 자해한 흔적을 가려주려고 손목시계를 사기도 한다. 한나는 영화 속에서 자주 불안한 위치에 놓이지만 고립되지 않는다. 한나는 불안 속에서 고성을 내고,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신고하고, 당황하고, 분노하는데, 그것들은 여느 감정들처럼 나타나고 사라진다. 한나는 일상을 이어가고 타인의 취약함에 연결되는 행동으로 감정 이상의 것들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폭력 피해자의 나약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다양한 서사가 필요하다. <코>의 장면들에서 한나는 뿌리치고 말하고 당황하고 분노하고 연결된다. 한나가 현수의 이삿짐을 싸는 상황은 한나가 ‘현수의 피해자’로서 절망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여서 답답하고 싫을 수 있다. 한나는 나약하지 않고, 나약해서 피해자가 된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는/어떤 젠더에게는/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적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각본이 갑작스레 한나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았을 뿐이다. 한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고, 상대가 아무리 이상한 플러팅을 하거나 중년 여성이 자신을 평가하는 발화를 하더라도 호의에 기반하여 누군가를 도우려는 사람이다. 가해자의 엄마를 도와 이삿짐을 싸주는 피해자, 그 모습이 피해를 보고도 침묵하고 도망치거나 싸우는 ‘피해자상’을 혼란하게 하더라도 한나는 그렇게 움직인다. 폭력 이후의 현장에는 상처 입고 부서진 피해자만 남는 것이 아니다. 생활은 이어지고, 그 생활은 다시 고쳐지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기회를 찾아낸다.

한나는 결국 미옥을 다치게 한 서랍장을 고쳐낸다.

<코> 스틸컷

영어 스터디 모임과 한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물어봤다면
극 중에서 한나는 코를 다친 이유를 내내 얼버무리다 딱 한 번 제대로 대답한다. 영어 스터디 모임에서다. “누가 때렸어?”라는 질문에 한나는 “예스”라고 대답한다. 아무도 듣지 못한다. 한 번의 SOS, 미세한 목소리.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더 정확하게 잘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어떻게 들을 것인가의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달변가가 되기도, 말이 몸에 갇힌 것처럼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말하기는 같이 추는 춤이다. 한나는 한 발 내디뎠다. 작게 내딛은 움직임에 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하는 곳과 질문 내용, 질문하는 사람이 한나에게 조금씩 맞춰지는 상상을 해본다. 한나를 무시하는 과외 학생 앞에서가 아닌, 때린 사람의 어머니 앞이 아닌, 한나의 말 내용보다 영어 실력만을 평가하는 곳이 아닌, 어떤 곳.

나는 이모를 좋아했지만, 이모에게 좋은 이야기 상대는 아니었다. 자주 상상 속에서 대화를 시도하지만 솔직한 말을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말하는 한나에게 필요한 ‘듣기’의 장소와 사람도 아직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뾰족하게 날 선 청자들 사이에 안심되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 때에야 우리를 해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실 나는 메신저로 이모가 자주 보내는 성경 구절도 잘 읽지 않고 있다. 속으로만 이모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가 싫으면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코>를 이모가 먼저 볼 수 있다면 좋았을까. 한나가 반창고를 마지막에 혼자 떼어내듯이 그런 후련한 순간이 일찍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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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수상한 소설 클럽 운영인. 매달 3편 이상 재미있는 소설을 써서 보내주자는 목표로 ‘비밀독자단’을 만들어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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