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압도적으로 당당하게 성큼성큼 나아가라!

다큐멘터리 < DRAGX남장신사 > 연출 3인 인터뷰

퍼플레이 / 2021-04-25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1.4.14.|김다원, 문상훈, 박예지 감독을 만나다
<드랙X남장신사> 제작비 펀딩 프로젝트 기념 인터뷰

<드랙X남장신사> 출연진. (왼쪽부터) 색자, 윤김명우, 테리, 나비 © 드랙X남장신사 

1960~80년대 한국사회를 관통해온 퀴어들은 중장년이 된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명동 샤넬 다방에서 모임을 갖던 퀴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해 여성과 퀴어의 역사를 추적하던 김다원, 문상훈, 박예지 감독은 네 명의 여성을 만난다. 20년째 레즈비언 바를 운영 중인 바지씨 윤김명우, 한국의 첫 레즈비언 모임 ‘서울사포’를 창립한 아름다운 테리,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대를 만들어온 MTF 트랜스젠더 색자, 트랜스젠더 자식을 둔 어머니이자 소방관인 나비.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그들의 이야기는 연극이 되었고 네 사람은 당사자이자 배우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올랐다. 

드랙킹 콘테스트 4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려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딱 하루 공연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의 행보는 그 자체로 역사다. 세 명의 연출자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공연 과정과 네 여성의 삶을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그 아이디어가 발전해 다큐멘터리 < DRAGX남장신사 >로 탄생했다. 제작진의 라인업도 화려하다. <굿 마더>(2020)의 이유진 감독이 PD로,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2019)의 배꽃나래 감독이 촬영과 편집에 함께했다. 

장르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드랙X남장신사>에서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면면을 발견한 제작진은 새로운 장르를 고안해내 ‘여성주의 퀴어 하우스 비디오’라고 이름 붙였다. ‘연출진과 출연진이 우리만의 집에서 홈비디오를 남기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서로의 삶을 교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담는다’는 뜻에서다. 연출자들은 퀴어 정체성을 밝히고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당사자의 시선으로 선배 퀴어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하고 객관적 거리를 두는 여타의 다큐멘터리와는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그랬기에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여성 퀴어들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기게 됐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앞으로 남은 여정을 들어보기 위해 연출 3인을 만났다. 그들이 풀어낸 제작기는 작품만큼이나 흥미진진했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절로 기대하게 만들었다.

(*퍼플레이는 이번 프로젝트에 홍보 후원 및 협력으로 함께합니다.)

<드랙X남장신사> 연출진. (왼쪽부터) 문상훈, 박예지, 김다원 감독 © 퍼플레이

-먼저 감독님들의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다원(이하 다원): 드랙킹 아장맨으로 활동 중이고요. 드랙킹 콘테스트 4기째 기획하고 있습니다. 

문상훈(이하 훈): 미술작가이고 드랙킹 콘테스트 1, 2기 때는 퍼포머로 참여하다가 3기부터 기획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박예지(이하 예지): 젠더문화연구자입니다. 가끔 영상도 찍고요. 드랙킹이 석사 논문 연구 주제라 인터뷰를 하다 다원 님과 훈 님을 알게 됐어요. 이분들에게 동화돼 드랙킹 콘테스트 4기부터 제작진으로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연애편지>(2018)라는 단편을 공동 연출하기도 했고요.

- 다큐멘터리 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훈: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한 시간 반 되는 공연에서 네 분의 삶을 충분히 다룰 수 있을까 싶었고, 이분들의 인생 구술사를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선공개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다원: 저는 유튜브 영상 만드는 데도 품이 드니까 그냥 공연에서 틀자고 했어요. 캐릭터마다 개인의 서사를 보여주는 식으로. 그런데 그렇게 하고 말기에는 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훈: 영상을 보신 분들이 너무 좋으니까 장편화 해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유진 감독님도 보시고 ‘장편으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면서 PD를 맡아주셔서 큰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된 거군요. 
예지: 처음엔 선배 여성 퀴어 분들의 인생사를 아카이빙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퀴어락(한국 퀴어 아카이브)에 기증하거나 보존을 하자. 그렇게 시작했는데 점점 일이 커졌죠.

다원: 저희가 계속 아카이브 부족에 대한 문제를 겪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실수를 하기도 하고. 퀴어영화제에서 어떤 관객이 ‘드랙퀸은 많은데 드랙킹은 드랙퀸을 따라하는 행보를 걷고 있지 않냐’고 해서 제가 ‘내가 최초의 드랙킹인데 독창적으로 가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끝나고 친구가 오더니 ‘너 최초 아니다’라고 말해준 거예요. 그만큼 자료가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통해 아카이빙하는 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드랙X남장신사

-이번 다큐멘터리 장르를 ‘여성주의 퀴어 하우스 비디오’라고 새롭게 정의하셨어요. 
예지: 저희가 처음부터 다큐를 생각하면서 찍은 게 아니라 약간 허술하고 웃으면서 찍은 것도 많아서 이걸 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떠오른 거예요. 

훈: 촬영을 저희가 직접 하다 보니 거리가 너무 가깝고 또 저희의 목소리도 그대로 담겼어요.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봤는데 저희가 선생님들과 너무 딱 달라붙어서 친해진 거예요. 거의 피를 나눈 우정!(웃음). 근데 찍힌 걸 보니 미학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나머지 작업도 그런 식으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예지: 보통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연구자들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관찰하며 거리감을 두고 작업하는데 아무래도 퀴어들은 자기 세계 내부다보니까 객관적으로 거리감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있는 것 같아요. 

다원: 선생님들을 만나면 “방송에 나온 트랜스젠더들 얘기는 다 뻥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진짜야.” 그러셨어요. 저희에게만 오픈한 밀접하고 내밀한 것들이 많아요. 이런 방식으로 안 찍으면 나오지 못하는 얘기들이 있거든요. 

훈: 맞아요. 그리고 식구라고 표현하세요. “너 우리 식구니?” 일단 이거부터 시작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말투가 딱 바뀌세요. “쟤 우리 식구야?” 거기서 더 나아가서 “쟤 너희 쪽이니 우리 쪽이니?” 이렇게도 나누시고(웃음). 

-그래서 다른 데선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거군요. 
훈: 네. 그러면서 사실 편집도 많이 했어요. 근데 또 고민되더라고요. 우리는 일반 사회가 정해주는 퀴어의 모습으로만 살아야 하나?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되나? 이런 고민들 때문에 편집 방향이 바뀔 때도 있었죠. 

<드랙X남장신사> 공연 무대에서의 테리(가운데)와 윤김명우(맨 오른쪽) © 드랙X남장신사

-네 분을 어떻게 섭외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섭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훈: 일이 커진 순서대로 만났어요. 

다원: 조개 줍다 보니 해일이(웃음). 

훈: 설날에 레스보스를 갔는데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고 할리 데이비슨 재킷을 입은 분이 계신 거예요. 완전 불 다이크(bull dyke). 모델 같았어요. 그게 테리 님이었죠. 그래서 섭외를 했고, 테리 님이 명우형이랑 오랜 친구시거든요. 명우형도 얘기를 듣더니 ‘나도 할게’ 해주셨죠. 
나비 님은, 저희가 기획 단계부터 계획한 대로 부모모임을 찾아갔어요. 드랙에는 ‘수행성’이란 게 있잖아요. 그래서 드랙을 수행하면서 퀴어적 모먼트를 경험해보며 자식을 이해하실 분을 찾으려고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연락을 드렸는데 그중에는 없으셨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파고들었죠. 드랙킹 콘테스트 2기에 퍼포머로 참여하신 봉레오 님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그분의 어머님인 나비 님을 섭외하려고 삼고초려 했죠.

다원: 그리고 색자 님을 섭외한 게 정말 기가 막혀요. 

훈: MBC <시사직격>이란 프로그램에 나비 님이 나오셔서 처음엔 나비 님을 보려고 틀었어요. 근데 거기에 색자 님도 나오시는 거예요. 딱 저희가 찾던 분이었죠. MTF인데 킹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걸 이미 하고 계셨어요. 색자 님이 자주 가시는 옷가게에서 <시사직격> 촬영을 했더라고요. 그 부근이 제가 살던 동네라 한눈에 알아봤죠. 그래서 가게를 찾아갔어요. 저희가 기획하는 게 있는데 색자 님을 한 번 뵙고 싶다, 혹시 연락처를 건네주실 수 있냐 부탁드렸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다원 님과 함께 색자 님을 만나러 갔는데 색자 님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잖아요. 파란색 원피스에 형광색 신발을 신고 나타나셨는데 완전 반해버렸어요. 직접 얘기를 들어보니 더 대단한 분이셨죠. 1세대 트랜스젠더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거든요. 

예지: 저희가 처음부터 부치, 성소수자 부모, MTF 트랜스젠더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퀴어 여성으로 구성하려고 했어요. 특히 트랜스젠더 혐오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더 이분들을 모시고 싶었죠. 그리고 색자 님은 드랙퀸 쇼를 하는 분인데 드랙킹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젠더 유연성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테리 님은 카메라 공포증이 있는데도 출연을 승낙해주셨어요.
예지: 처음엔 몸만 찍으라고 하셨어요. 얼굴만 안 나오면 된다고 하셨죠. 

-무대에도 서야 하셨잖아요. 
예지: 그래서 엄청 설득했죠. 워킹만 시켜드리겠다. 근데 워킹도 안 하고 앉아만 계셨어(웃음). 

훈: 지금 생각해보면 초반 인터뷰는 되게 딱딱하게 진행됐어요. 그때는 테리 님과 별로 안 친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술술술 다 말해주세요. 

예지: 그래서 다시 인터뷰 촬영하기로 했어요. 이제 거리감이 허물어져서 얼굴까지 허락을 해주셨거든요.


-공연 준비를 하며 좌충우돌도 있었을 거라 생각돼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훈: 여러 극장을 찾아봤는데 극장들에서 호모포비아적인 말을 하며 거절했어요. 어떤 극장은 ‘가족이 오는 곳이라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코로나 때문에 대관이 정말 힘들었어요. 거의 6개월 넘게 걸렸죠. 그러다가 세종문화회관이 됐는데 딱 하루 대관, 하루 공연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관료가 너무 비쌌거든요. 

다원: 퀴어 페미니스트 연극으로 입지를 다진 구자혜 연출님을 섭외했는데 처음엔 단번에 거절하셨어요. 

훈: 이 예산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못한다. 소극장으로 바꿔보는 것 어떠냐고 하셨죠. 

다원: 스케일이 너무 커서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거의 1~2 정도를 기다렸죠. 결국 함께해주셨는데 연출님이 저희와 선생님들 사이에서 중심을 너무 잘 잡아주셨어요. 저희가 엄청 친밀한 관계로 선생님들을 대했다면 연출님은 배우로 대우해주시면서 프로페셔널하게 조율해주셨죠.  

(왼쪽부터) 박예지, 김다원 감독과 나비 © 드랙X남장신사

-네 분의 인생사를 극본으로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극본 작업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요?
훈: 네 분의 인생사를 중심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쓰자는 거였어요. 

다원: 저는 모든 정념을 담아서 노래 가사를 썼어요. 제목이 <바지씨 연가>인데 ‘바지씨들이 집에서 존재감 없는 딸로 살다가 부치 데뷔!’ 이런 내용이에요. 

훈: 가사 정말 잘 썼어요. 노래도 진짜 좋아요. 이지구 님과 안마루 님이 작곡해주셨는데 이번에 노래가 크게 선방했죠. 

다원: 음이 너무 좋아요. 슬프고 처량한 느낌. 

-창작곡으로 무대를 구성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훈: 약간 무모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해요. 

예지: 기존의 곡을 사용하면 돈을 더 많이 내야 돼서 작곡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훈: 공연이 뮤지컬 형식으로 흘러가니까 대사를 노래에 담아야 하잖아요. 딱 맞는 노래가 없다 보니 작곡을 하게 된 건데 마침 운 좋게 다원님의 작사 재능을 발견한 거죠. 

<드랙X남장신사> 공연 무대에서의 나비 © 드랙X남장신사

-세종문화회관에 무대를 올린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 제작진 분들이 느꼈던 감상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예지: 커튼콜 할 때 아장맨 님 펑펑 울었어요. 

다원: 근데 아마 훈 님도 펑펑 울었을 거예요(웃음). 

훈: 사실 공연 당일엔 별로 안 울었어요. 왜냐면 연습할 때 너무 많이 울었거든요. 아장맨이랑 둘이 맨날 울면서 ‘야, 울지 마라’ 이러면서 서로 쳐다보고(웃음).  

-연습할 땐 왜 우셨던 거예요?
예지: 선배 분들의 연기를 보면 감동의 눈물이 나요. 

훈: 맞아요. 처음엔 명우형이 “나한테 왜 이렇게 대사 많이 시켜? 안 해!” 그러셨어요. 그래서 무대에 서계시기만 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애드리브를 치고 나오시는 거예요. “내가 이걸 왜 그만둬!”라는 대사였는데 눈물이 터졌죠. 노래 들으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특히 색자 님 노래는 정말 슬픈 스토리거든요. 그리고 저는 아장맨과 드랙킹 콘테스트 1기 때부터 같이 해왔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아장맨이 세종 무대에 오르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정말 감격적이었어요. 

다원: 원래는 깔깔 웃고 공연을 끝내는 연출이었는데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혐오 사건들 때문에 연출님이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비 님의 개인 곡을 살짝 개사해서 불렀죠. 젊은 퀴어들이 먼저 나와서 부르다가 중년 퀴어들이 사이사이를 메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마침 제 옆에 나비 님이 서계신 거예요. 눈물을 펑펑 흘렀죠. 

예지: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가사가 중심이 되는 노래거든요. 나비 님이 어린 시절 느꼈던 건데 퀴어들이 다 모여서 그걸 부르니까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드랙X남장신사> 공연 무대에서의 윤김명우 © 드랙X남장신사

-다큐멘터리는 출연자들의 매력이 중요한 장르이기도 하죠. 감독님들이 자랑하는 출연자 네 분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예지: 명우형은 레즈비언계의 대부 같은 분이에요. 너무 멋있어요.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식구로 맞아주시고. 누가 힘들다고 하면 힘을 북돋아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인배라는 걸 느꼈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지금까지 퀴어계에서 형님처럼 남아계셨구나 싶었죠.  

다훈: 테리 님은 일단 너무 잘생기셨고 또 사포를 만드셨다는 중요한 업적을 갖고 계세요. ‘서울사포’가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레즈비언 모임이에요. 그걸 시작으로 ‘끼리끼리’라는 단체가 생기고 <또 다른 세상> <버디>라는 잡지도 만들어졌죠. 사포가 인권활동을 했던 최초의 (퀴어) 단체예요. 그전까지는 대부분 사교모임이었는데 사포는 많은 활동을 했죠. 

예지: 근데 테리 님이 너무 압도적으로 잘생기셔서 저희가 각본 쓸 때 사포도 중요하지만 ‘잘생긴 바람둥이 부치’를 강조하려고 했어요. 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식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항상 평가 절하되잖아요. 근데 테리 님은 카사노바처럼 100명이 넘는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셨으니까 이런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레즈비언 여성도 충분히 즐기면서 살 수 있다. 이걸 포인트로 두고 싶었는데 거기에만 초점이 맞춰지니까 테리 님이 아쉬워하셨어요. 

<드랙X남장신사> 공연 무대에서의 색자 © 드랙X남장신사

-색자 님은요?
예지: 여왕님. 압도적으로(웃음). 모든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는 분이에요. 모두가 그분에게 빨려 들어가죠. 

다원: 젠더 이론은 요즘의 산물이라고 무심결에 생각하잖아요. 근데 색자 님은 스스로 너무나 이해를 잘하고 계신 거예요. 자신의 삶을 통해 배우신 거죠. 우리 젠더들은 제3의 성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정말 똑똑하시고 팔방미인이세요. 

훈: 또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제가 나비 님의 말을 많이 되뇌었어요. “압도적으로 당당하게 성큼성큼 가면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말을 계속 새겼죠. 힘든 삶을 살았지만 저렇게 당당히 우뚝 선 여성이 있구나 싶어서 감탄했어요. 

예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 영화에 출연하시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 뚝심 있게 “너희도 당당하게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해주시니까 힘이 많이 됐어요.


-인터뷰를 통해 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을까요? 
훈: 한 단계 더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그동안 제가 퀴어로 살면서 (저를 이해해주는) 어른을 못 만나서 인정 투쟁만 했던 것 같아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 근데 이분들을 만나면서 관계의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겠죠. 
훈: 같이 있는 것 자체로 정말 즐거워요. 기본적으로 삶이 무료하잖아요. 근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즐겁죠. 

다원: 색자 님이랑 명우형이 공연 끝나고 저희에게 울면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다큐 1차 상영회 때 테리 선배는 막 펑펑 우셨어요. 그런 식으로 북받쳐 오르는 순간이 많았죠. 

(왼쪽부터) 김다원 감독, 나비, 문상훈 감독, 윤김명우 © 드랙X남장신사

-앞선 시대를 살아온 퀴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는데요.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지속할 계획이 있나요?
다원:정도로 크게는 다시 안 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어요(웃음). 

예지: 저는 다른 퀴어들의 인생사 연구도 하고 싶어요. 10대 청소년에 대해 또는 2~30대 부치의 직업에 대한 연구 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제작진 크레딧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굿 마더>의 이유진 감독님이 프로듀서로,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의 배꽃나래 감독님이 촬영 및 편집에 참여하셨죠. 
훈: 이유진 감독님은 2018년도 ‘여성 괴물’ 세미나에서 만났어요. 그리고 배꽃나래 감독님과 이유진 감독님은 단편 영화 현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계세요. 이유진 감독님의 <굿 마더>와 <나들이>에서 배꽃나래 감독님이 조연출로 함께하셨죠. 또 저희가 배꽃나래 감독님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감독님과 함께 편집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유진 감독님 통해서 부탁을 하게 됐죠. 

-올해 8월까지 촬영이 남아있죠. 남은 촬영분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인가요?
훈: ‘짠! 우리 공연 멋있지!’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계속되는 선배님들의 삶도 함께 담고 싶어요. 

예지: 저희가 뒤풀이를 아직 못했어요. 그래서 뒤풀이 장면도 촬영하고, 주조연 배우님들과 연출가님의 후기도 찍고 추가 인터뷰 작업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될 것 같아요. 어찌됐든 이 영화는 젊은 여성 퀴어들이 선배 퀴어들을 찾아가 관계성을 맺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유념해서 촬영하려고 해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의 말과 시선이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이 그에 대한 유쾌한 반격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지: 그래서 다큐에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레스보스에 앉아있으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와 부치 사이에 있는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오고 가거든요. 그런데 다들 ‘퀴어’라는 것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그런 문화와 분위기를 다큐에도 많이 담고 싶었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정체성을 너무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훈: 혐오는 일반 사회가 더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특정 집단이라기보다. 

다원: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국가 답변도 (어이가 없잖아요.) 한 명의 인권을 위해 다수의 행복권을 짓밟을 수 없다니.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행복권이 짓밟힌다는 건지. 그런 말을 하는 사회야말로 거대한 혐오 주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다큐멘터리가 그런 사회를 향한 단단한 공격이 되면 좋겠어요. 

<드랙X남장신사> 연출진. (왼쪽부터) 문상훈, 박예지, 김다원 감독 © 퍼플레이

-펀딩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말씀과 펀딩 독려를 위한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훈: 50만원 후원해주신 사랑해 작가님 최고! 정말 좋은 공연이었고 또 너무 좋은 다큐이니 많은 후원 부탁드려요. 

다원: 저는 결과물 완성도가 높아서 정말 감탄했어요. 유튜브 세대라 긴 영상을 잘 못 보는데 그런 제가 봐도 정말 재밌고, 강렬한 사건과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니 집중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만큼 아주 매혹적인 작품입니다. 

예지: 선배 퀴어 분들을 아카이빙한다는 게 굉장히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도 의의가 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가 꼭 제대로 완성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열악하게 시작해서 스태프 분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못해드렸는데 의의에 공감하고 끝까지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펀딩에 참여해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원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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