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진한 ‘여자들의 우정’을 그리다

<거짓말> 임오정 감독

퍼플레이 / 2020-04-09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0.3.18|임오정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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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정 감독 필모그래피
2018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연출
2015  <쉘터> 연출
           <대세는 백합> 공동 연출
2013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출
2010  <저주의 기간> 미술
           <결정적 순간> 미술
2009  <거짓말> 연출
2008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연출부
2006  <해변의 여인>  연출부, 스크립터
2005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촬영
           <가려워> 조감독
           <극장전> 연출부
2004  <빛과 계급> 조명

임오정 감독 ©퍼플레이

그 누구보다도 여자들의 관계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내는 감독이 있다. 지난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로 30대 여성들의 찐득한 우정을 선보여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얻은 임오정 감독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굵직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여성’과 ‘우정’이다. 첫 연출작 <거짓말>(2009)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2013),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2018)까지 친구 간의 관계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 복잡다단한 심리 등을 세밀하게 때로는 거칠게 영화에 속속들이 담아낸다.

<거짓말>은 오래된 친구 사이인 이영희(이정아)와 최연희(이채은)가 함께 하루를 보내며 어떻게 위로를 주고받는지 보여준다. 어느 겨울 아침, 우연히 잘못 도착한 항공 편지를 들고 영희와 연희는 대학 선배의 결혼식에 간다. 낯선 곳에서 온 편지와 동행하는 여정이 어떤 결말을 불러올지 예측하지 못한 채, 영희와 연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둘은 생김새도 성격도 말투도 키도 다르지만 오랜 친구 관계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끈끈한 연결감을 발휘한다. ‘말이 필요 없는 말 많은 관계’. 영희와 연희를 말해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설명이다.

감독이 가지고 있는 모습 중 가장 극단에 있는 성격을 분배해 만들었다는 영희와 연희.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영희와 연희에게 더 밀도 높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난 후 동네친구인 이우정 배우 겸 감독을 만나러 간다는 임오정 감독에게서 영희가 살짝 엿보였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스틸컷

-지난해에 영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극장 개봉을 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이제 장편을 써야 하지 않나 싶어요. 더 미룰 수가 없다 싶어서 시나리오 아이템들을 구상 중이에요. 올해 안에 씨앗을 틔어볼까 생각중이죠. 시나리오를 써서 내년에 촬영하는 게 목표예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나왔나요?
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 거기서 출발해요(웃음).

-어떤 이야기를 들고 오실지 궁금해요.
여러 개 중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스릴러적인 요소가 있는 장르도 해보고 싶고요. 그런데 제가 주로 다루는 이야기가 우정에 관한 거다 보니까 이걸 어떤 그릇 안에 담아낼지가 고민이에요.

임오정 감독 ©퍼플레이

-지난해 씨네21 인터뷰를 보니 “어렸을 때부터 무턱대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어느 날 영화가 마음에 들어왔다”고 하셨더라고요. 영화가 마음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아버지가 예술을 동경했지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엄마도 책을 좋아하시고요. 그래서 저도 왠지 모르게 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어요. 근데 분야를 선택하진 못했죠. 저희 오빠는 그림을 잘 그렸는데 저는 잘 못 그렸고, 음악은 좀 나았던 것 같은데 돈이 많이 들어서 못했죠. 이런 저런 것들에 의해서 머리로 영화를 선택하게 됐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저기에 다 담겨있구나’ 싶었죠.

-이 생각을 언제쯤 하신 거예요?
중학교 때요. ‘음악을 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후에 결정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은 사진과를 가셨어요.
영화과에 떨어졌었어요(웃음). 고집스러운 면도 작용했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걸 어려워해서 직접 카메라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촬영을 직접 하고 싶어서 사진과에 가게 됐죠. 이렇게 말하니 뭔가 오류로 점철된 인생 같은데(웃음).

-음악을 하고 싶었던 던 구체적으로 악기를 다루고 싶으셨던 건가요?
피아노를 했었는데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지휘자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해석하고 표현하고 협업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감독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영화감독으로서 하는 일도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거든요. 그게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거짓말> 스틸컷. 집 앞에 잘못 도착한 항공 편지를 보고 있는 영희.

-<거짓말>이 벌써 10년 전 작품인데 당시에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돌고 돌아서 영화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뭘 찍어야 될지 모르겠고 두렵더라고요. 영화과에 들어가기 전에 사진을 전공했는데 과제를 하려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 마련이에요. 그러다가 겨울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녹색 훌라후프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되게 이상하고 풍경이 저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우연을 만난 게 반갑기도 하고, 저 구멍으로부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됐죠.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재미난, 우연한 사연이 있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들이 무언가로 맞닿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편지’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죠.

-<거짓말>은 ‘항공’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중간에 등장하는 예식장 이름도 ‘공항’웨딩문화원이에요. 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은데 ‘항공’과 ‘공항’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국내에서 발송한 편지보다 비행기를 통해 물 건너온 편지가 더 간절하고 절실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연희 캐릭터는 마음이 들끓는 상황인데도 그걸 누르고 쿨한 척하거나 당당하게 보이려고 하잖아요. (편지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마주한 연희와 영희가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온도 차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항웨딩문화원은 실제로 있는 곳인가요?
네. 마침 이종필 촬영감독님이 강서구 방화동, 화곡동 쪽에 사셨어요. 영화에 항공편지가 나오니까 그쪽으로 헌팅을 하다가 발견한 곳이에요. 뭐랄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우연 같은 느낌이 담겼으면 했어요.

<거짓말> 스틸컷. 영희(왼쪽)와 연희.

-<거짓말>을 두 여성의 로드무비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형식으로 만드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거짓말>은 어떤 이야기를 형식적인 틀에 맞춰서 전달하려고 쓴 건 아니에요. 로드무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이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 같이 따라가 보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빛났는데요. 영희와 연희의 성격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이정아, 이채은 배우님이 캐릭터에 정말 ‘찰떡’이었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영희는 물 흐르는 것처럼 살지만 고집이 센 인물이에요. 뭔가 하나를 좋아하면 꾸준히 좋아하죠. 고집스럽고 우둔한 면이 있는 캐릭터예요. 반대로 연희는 시류를 따라가는 편이고, 세속적인 느낌이 있죠. 영희 역의 이정아 배우는 원래 촬영을 전공했어요. 이종필 촬영감독님에게 촬영을 부탁드렸는데 시나리오를 읽으시더니 ‘네가 좋아할 만한 느낌의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 친구가 연기 경험이 한번 있었는데도 연기하는 걸 두려워해서 ‘카메라가 안 느껴지게 해주겠다. 편하게 재밌게 해보자’고 설득해서 함께 하게 됐죠. 그래서 <거짓말>을 보면 카메라가 거리를 두고 배우들을 찍어요. 그 이후로 이정아 배우는 촬영감독으로 일해 왔어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촬영감독도 이정아 배우예요. 

이채은 배우도 이종필 촬영감독님이 소개를 해주셨는데, 예전에 이채은 배우랑 같이 작업을 하셨었어요. 추천해주셔서 만나봤는데 진짜 최연희 같더라고요(웃음). 얼핏 깍쟁이같아 보이지만 속은 여리고 맑은 게. 그래서 배우들을 만나보고 느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한 번 바꿨어요. 수정하기 전에는 영희와 연희의 성격이 비슷했어요. 둘 사이에 차이를 많이 둔다고 해도 크게 안 났는데 두 배우 분을 직접 만나 뵙고 나니까 구분이 되더라고요.

-두 배우 분들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정아는 오히려 최연희 같고, 채은이는 연희 같진 않아요. 똑 부러지지만 귀여운 면이 있는 타입이라서 그런 건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채은 배우는 욕을 안 하거든요(웃음).

임오정 감독 ©퍼플레이

-캐릭터에 감독님의 실제 성격이 녹아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기 모습이 바뀌잖아요. 편한 사람을 만나면 푸근했다가 어색한 자리 가면 딱딱하게 구는 것처럼 저한테도 극단적인 모습이 있는데 하나는 영희의 모습이고 하나는 연희의 모습인 것 같아요. 제일 끝에 있는 저의 두 모습을 영희와 연희에 담았어요.

-감독님은 영희와 연희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다 영희 같다고 하는데 저는 연희라고 생각해요(웃음).

-영화에 무례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로 인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잖아요. 가령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연희와 영희를 무시하는 태도나 대학 선배와 동기들이 그들에게 하는 말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들을 겪을 때 감독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요. 그런 경험들이 영화 안에 녹아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문방구 아저씨 같은 경우는 많이 겪었어요. 중년 아저씨들이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반말을 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툭툭 하는 특유의 태도가 있죠.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저는 계속 곱씹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저 아저씨한테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는지. 저도 서른이 넘어서야 분명하게 얘기를 하게 됐어요. 지금은 연희처럼 ‘나 기분 나빴으니까 사과해’라고 얘기하는 당당함이나 편안함이 생겼죠. 어렸을 때는 왜 주눅이 들었었는지 모르겠어요. 불합리하다고 느꼈을 뿐 뭘 하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무례함이나 표정, 말투, 욕설 같은 게 자국처럼 남거든요. 영화에서 연희의 대학 선배가 자기 멋대로 남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지어내잖아요. 위로한답시고 더 뾰족한 말을 하거나 너스레를 떨면서 무례하게 구는데 저한테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연희의 입을 빌어서 하고 싶었던 얘기인 것 같아요.

<거짓말> 스틸컷

-평소에도 다른 감독님들과 도움을 주고받으시는 것 같아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촬영하실 때도 많은 도움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거짓말> 당시에도 여성 영화인들 간의 연대가 있었나요?
<거짓말>은 학교에서 찍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특별히 여성 영화인이라고 지칭할 만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때도 우정이가 왔었어요. 우정이가 정아랑 친한 친구고, 채은이랑은 작업을 같이 해서 절친한 감독과 배우 사이였기 때문에 현장에 와서 응원을 해줬죠.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이랑 만나는 자리에서도 우정이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촬영할 때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우리 팀의 여성 영화인들이었어요. 우정이, 민정이, 정아, 연출팀 친구들. 정말 큰 도움이 됐죠. 제가 쓰는 이야기를 재미있어 해주고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들의 힘이 컸어요.

-이우정 배우 겸 감독, 이정아 배우 겸 촬영감독과는 10년이 넘는 인연인데,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될 것 같아요.
서로 방황하던 시기가 비슷했어요. 2010년대 중반쯤에 각자 서른은 넘었는데 단편을 더 찍기에는 힘이 부치고 장편을 찍어야 할 수순에서 서로 한 발을 못 내딛고 있을 때였죠. 그때 ‘괜찮아, 조금 더 힘내보자’ 라는 식의 응원을 해줬었어요. 이번에 우정이가 장편을 찍었는데 정말 기뻐요.

<거짓말> 스틸컷

-영화는 역시 ‘시대’의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희가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는 장면이라든지, 영희가 떼어다준 고드름을 연희가 먹는다든지. 특히 고드름을 떼어먹는 건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죠.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이상한 것, 혹은 낡은 것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마주할 때 감독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고드름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도 의견이 분분하긴 했어요.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그 정도의 우정인 건가(웃음). 근데 시나리오 쓸 때는 고민 안 하고 썼던 것 같아요. 저는 친구들한테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제가 했을 법한 행동이고, 친구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제가 골목이나 낡은 풍경들 안에서 영화를 많이 찍어왔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그때는 골목에 빨래도 걸려있었고 이것저것 말리려고 내놓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려서 제가 좋아하는 고유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현해낼지 고민이 돼요. 특히 요즘 아파트 같은 곳을 배경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난감해요.

-<거짓말>의 영희와 연희,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영신과 우희. 이름에 ‘영’과 ‘희’자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름에도 캐릭터의 성격이 묻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인물들의 이름은 어떻게 짓는지 궁금해요.
원래 <거짓말> 제목이 ‘영희와 연희’였어요. 둘이 겉보기엔 달라 보이지만 이름은 비슷한, 비슷함과 다름의 사이를 찾다가 만들게 된 이름이에요. 그리고 우희는, 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중에 신우희라는 배우가 있어요. 제가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어리숙한 착함’ 같은 게 떠올라서 그 이미지를 가져와 우희라고 이름을 짓게 됐어요. 영신은, 저희 어머니 이름이 영선인데 결혼생활을 힘들어하는 여성의 대표주자로(웃음). 영신 캐릭터를 짜증이 많고 폐만 끼치는 인간처럼 볼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영신이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요. 보듬어주고 싶은 외로운 친구였기 때문에 더 정을 주고 싶어서 어머니 이름이랑 비슷하게 짓게 됐어요.

<거짓말> 스틸컷

-영희는 이름 자체에 둥글둥글한 느낌이 있고, 연희는 뭔가 뾰족한 느낌이에요.
예. 약간 처연한 느낌도 있고.

-연희가 당차고 할 말 다 하는 캐릭터라서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처연한 느낌도 있다고 하시니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이미지도 떠오르네요.
사실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간다는 것 자체가(웃음). (그 결혼식은 도대체 왜 간 건가요?)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있었겠지만 거기에 가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 허무함으로 괴로워하잖아요. 반지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온 것에서 알 수 있듯 결혼식을 보고 나서야 끝나버린 사랑의 마음을 정리하죠. 그런 게 연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처연함인 것 같아요.

임오정 감독 ©퍼플레이

-<거짓말>에서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실제 우리 삶은 무수한 거짓과 진실로 이뤄져 있고 그러한 세계를 살아나가는 힘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에게서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거짓말>을 통해 감독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거짓말 같은 우연들이 그들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죠. 근데 두 친구는 평소에 끊임없이 수다스럽게 대화를 나누지만 진심은 말하지 않아요. 영희 입장에서는 ‘너 힘드니까 결혼식에 가지 말자’고 말릴 수도 있고 연희를 다독이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은 못해요. 연희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말을 하죠. 위악적인 모습도 있는 것 같아요. 단단해 보이려는 위장술인 거죠. 결국 두 사람이 ‘오늘’에 대한 진심은 나누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 거짓말의 다른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 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럼에도 둘 사이에서 뭔가를 교감하는데, 그날 하루를 함께하며 같은 경험을 함으로써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었던 거죠. 친구라는 존재에 덧씌워진 우연 같은 것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영희와 연희는 동네에서 만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 사이로 보이더라고요. 과거에 나 가능한 친구 관계죠.
맞아요(웃음). 그 동네가 쌍문동인데 쌍문동에서는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영화에서 자세히 표현하진 않지만 영희는 연희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같은 과에 갔다가 수능을 다시 공부하는 상황이에요.

<거짓말> 스틸컷

-<거짓말>에서 감독님의 마음에 가장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진짜 가짜 같다”. 훌라후프를 보면서 제가 혼잣말로 했던 말이기도 하고, 그 말 때문에 거짓말을 테마로 가져오기도 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에 집 앞에서 영희와 연희가 헤어지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화면에 잘 담겨서 좋다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찍혀서 좋다기보다는, 그 장면을 찍을 때 현장에서 혼자 울컥했어요. 그 촬영이 평범해 보여도 장비 세팅과 섭외에 문제가 있었어요. 여러 난관이 있었죠. 스태프들이 힘들고 지친 상황이었는데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숭고한 느낌이 들었고 ‘앞으로 또 이런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용기가 생겨요. ‘그런 순간을 또 만날 수도 있어’라는 생각으로. 그래서 용기가 떨어질 때 그 장면을 생각하는 편이에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거짓말>,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통해 고등학생, 20~30대 여성 등 나이대별로 여성들의 우정을 이야기해오셨어요. 주인공들의 나이가 다르다보니 작품마다 톤도 약간씩 다른데, 연출하거나 시나리오를 쓸 때 각각의 작품마다 중점을 둔 게 있나요?
세대별로 다룬 건 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제 영화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 나와야 되거든요. 이를테면 저는 여전히 60대 여성을 귀여워하고 좋아해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6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쓰겠죠. 그런 것처럼 특별히 어떤 세대를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제가 영화에 비속어를 쓰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특정 나이 또래가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나 비속어, 말투를 써야 될 때가 있어요. 제가 느끼기엔 발성 방법도 나이 대에 따라 달라요. 10대들은 아기 같은 목소리로 표현한다거나, 나이가 있으면 좀 더 배에서 힘이 나온다거나. 그런 것들이 어우러지는 걸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나이에 따라 움직임의 속도가 다른 것 같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뛰어다니는 느낌이고 <거짓말>은 걸어 다니는 느낌이고,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주인공들이 앉아 있잖아요. 혹은 뛰지만 너무 지쳐 있거나. 그게 제가 생각하는 나이인가 봐요(웃음).

<개의 역사> 스틸컷

-마지막으로, 퍼플레이 추천작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개의 역사>와 <우리는 서로에게>를 추천하고 싶어요. <개의 역사>는 곁에 있는 존재들을 바라보고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는 사려 깊은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몇 년 전에 영화를 추천받았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고 궁금해 하던 차에 퍼플레이에서 소개해주셔서 감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는 다르지만 또 같은 세 모녀의 관계를 통해 그 안에 깔려있는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흥겹게 담아낸 영화라 감상할 때마다 더욱 더 마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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