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10년의 성장담,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
<퀴어 053> 박문칠 감독
퍼플레이 / 2021-10-18
<퀴어 053> 박문칠 감독 인터뷰 ▶ GO 퍼플레이 |
박문칠 감독 필모그래피 2020 <보드랍게> 감독 2019 <퀴어 053> 감독 2017 <파란나비효과> 감독, 촬영, 제작, 편집 2014 <마이 플레이스> 감독, 주연(내레이션 역), 촬영, 제작 2011 <이빨 두 개> 각본 <시선 너머> 각본, 제작부장 2009 <경북 문경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 음향 <나는 곤경에 처했다!> 조연출, 단역 2008 <안녕? 허대짜수짜님!> 조감독 |
<퀴어 053> 박문칠 감독 ©박문칠
-처음에 영화를 기획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요.
-영화에는 대구퀴어문화축제와 관련된 분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이분들을 섭외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그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통해서 관련자들을 섭외했는데, 처음에는 조직위원장이신 배진교 위원장이 저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하하.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그동안 언론 등에서 성소수자를 취재하는 태도나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자료 제공이나 인터뷰이 섭외를 위해 발 벗고 나서주셨고, 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습니다.
<퀴어 053> 스틸컷
-대구퀴어문화축제의 10년 역사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영화가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값진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시는지요.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혐오세력 때문에 좌절하거나 속상할 수 있습니다. 혹은 축제의 현재 모습만 보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축제의 10년 역사를 들여다보니까 성소수자 운동의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변화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사회적 시선의 변화도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퀴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꼈지만, 10년이 흐른 후에는 보다 자연스럽게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거든요. 이 작품을 통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이 펼쳐온 운동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왔는지 알려내고 싶었습니다. 사회적인 변화가 더뎌 보일 때도 있지만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움직임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함께 확인하고 싶었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전해지면 성소수자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자그마한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퀴어(문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 변화가 참 흥미로우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끼며 힘을 얻기도 했는데요.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도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특히 성소수자 운동은 어떤 인권운동보다 젊고 활기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대구퀴어문화축제도 참가자나 주최측 내부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많은 성장을 이뤄낸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현실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제 작품에서만큼은 축제가 만들어놓은 해방구 같은 느낌을 최대한 전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영화 전개나 연출이 전반적으로 빠르고 군더더기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영화에 한껏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이번 영화의 연출, 편집 과정에서 감독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받은 활기찬 기운을 최대한 전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요. 그러다 보니 편집 템포도 빨라졌고, 과감한 텍스트를 사용하거나 리듬감 있는 음악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퀴어 053> 스틸컷
-영화제 등을 통해 작품을 공개한 후 관객들로부터 들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대구가 아닌 타 지역에서 상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해당 지역의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기획단 분들이 단체로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끝나고 나서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울먹이면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성소수자 당사자이자 직접 축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가 남다르게 느껴지신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축제와 운동을 일궈나가는 데 이 영화가 작은 응원이나마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구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며 느꼈던 어려움 또는 자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신다면요?
처음 대구에 왔을 때에는 창작 환경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다행히 대구독립영화협회를 통해 비슷한 생각과 열정을 가진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영상미디어센터 씨눈 같은 기관들도 알게 되어 애초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보다 규모는 작지만 오히려 서로의 작업을 십시일반 도우며 한계를 극복해나가려는 끈끈한 노력들 덕분에 힘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다양한 소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지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지역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소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감독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무엇에 마음을 쏟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날씨가 점점 이상해지고, 기후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빈번해지다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저의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 같아요. 인간의 문명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퀴어 053> 박문칠 감독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신 지 어느덧 10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동안 작업을 해오시면서 창작자란 무엇인가 돌아보실 때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특히 부당한 일을 당한 소수자들일수록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편안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스트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고, 사람의 신뢰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고 느낄 때도 많지만, 진심어린 대화가 이뤄졌을 때의 희열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퀴어053 이후에 만든 장편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김순악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보드랍게>인데요. 코로나가 좀 잠잠해진 이후에 개봉을 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차기작에 대한 생각과 자료조사도 틈틈이 하고 있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착수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퍼플레이를 통해 <퀴어 053>을 보게 될 관람객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영화가 유쾌하고 재밌습니다! 대개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무겁고 가슴 아픈 경우들이 많은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대구라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일궈온 기분 좋은 변화를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어요. 모쪼록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고, 이 영화에서 받은 좋은 기운을 주변에도 널리 확산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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