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나의 괴물 같았던 시간을 고백하다

<까치발> 권우정 감독

퍼플레이 / 2021-06-03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1.5.26.|권우정 감독을 만나다

권우정 감독 필모그래피
2021  <까치발> 감독 
2010  <땅의 여자> 감독, 촬영, 편집
2006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감독 
2004  <농가 일기> 감독, 각본, 촬영, 편집 
2001  <농가부채특별법 그 후, 우리농업의 살 길은 무엇인가> 감독

<까치발> 스틸컷

까치발로 걷는 아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는 불안하다. 까치발이 뇌성마비의 징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엄마는 고뇌하고, 아이가 까치발만 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었음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깨닫는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묻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엄마는 ‘괴물 같았다’고 말했다. 

<까치발>(2021)은 권우정 감독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느낀 불안을 솔직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카메라에 담는 데 익숙했던 감독이 가족의 내밀한 속사정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그래서 처음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어딘가 2% 부족했다. 결국 화자는 내가 되어야 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은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권우정 감독 © 퍼플레이

-전작 <땅의 여자>(2010) 이후 10여 년만의 영화 개봉입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제(5월 25일) VIP 시사회를 했는데 지인들과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함께해주셨어요. 여성분들의 공감도 좋았는데 남성분들 중에도 우시는 분들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다들 비슷하구나 싶었고, 가족 관계 안에서의 고민들을 수 있어서 좋았죠.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었던 데는 동료들의 힘도 컸겠다 싶었어요. 크레딧을 보니 ‘고마운 사람’에 마민지, 부지영, 강유가람, 남순아 등 반가운 여성 감독들의 이름이 있더라고요. 서로 어떤 도움을 주고받으셨는지 궁금해요. 
특별한 인연이 있진 않아요. 그냥 영화를 계속 만드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더라고요. 끊임없이 제작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것들을 응원하고 싶은 거죠. 그분들도 저에게 구체적으로 응원의 말을 해준다기보다는 십시일반 지원을 해주거나 모니터링을 해주곤 해요. 

-후배 감독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나요?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아요. 안타깝긴 한데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더라고요. 여성주의 이슈로 어떤 활동들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생각하는 젠더에 대한 이슈도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까치발> 스틸컷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가치관이 변화하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이전의 작업들과 비교해봤을 때 차이점을 느낀 게 있나요.
관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겪었어요. 내가 누구인지 균형을 잡는 게 어려웠죠. 도대체 왜 나는 유달리 아이의 성장 과정에 불안함을 갖고 까치발에 심각함을 느꼈을까 생각해보면, 엄마나 아내보다는 감독이거나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정체성이 제겐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빨리 ‘정상성’의 위치에 올려놔야 제 정체성이 회복될 거라는 생각이 강했던 거죠.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저를 마주 보게 됐어요. 

-딸 지후의 까치발을 보고 심각성을 느꼈던 계기가 있을까요?
아이가 미숙아였다는 게 제겐 꼬리표였어요. 우리나라는 정상성에 대한 강박이 크잖아요. ‘어머니, 몸무게는 이만큼 키워주셔야 해요. 이때는 기어야 돼요. 이때는 앉아야 돼요.’ 이런 말들이 계속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돌 때 아이가 걸으면서 불안감을 해소했는데, 저처럼 미숙아를 낳은 아이의 엄마가 지후의 까치발을 보더니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작은 병원에 갔는데 그땐 뇌성마비라는 얘기보다는 잘 못 걸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부터 불안이 내재되기 시작했죠. 

-영화를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신 건 이번 작품이 처음이죠. 줄곧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건 꽤 큰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저는 자전적 다큐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게 컸죠. 이번에도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을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거리를 두고 얘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장애인을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당사자들의 다큐는 있어도 가족의 얘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다만 <땅의 여자> 때처럼 온전한 에너지를 쏟으면서 같이 생활하며 찍을 수는 없으니 팟캐스트라는 방식을 택했죠. 근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가 좋긴 한데 너무 정리된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마치 명언을 듣는 것처럼. 명언도 나의 경험과 연결이 될 땐 깊이 와 닿지만 그렇지 못할 땐 공감이 쉽지 않잖아요. 내가 느낀 불안이나 갈등 과정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것을 올곧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우리 가족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가족의 얘기를 담기 시작했어요.

-남편분이 반대하진 않으셨어요? 
처음에는 왜 찍냐고 그랬어요. 제일 미안하고 고맙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숙명인 것 같아요. 영화감독을 아내로 둔 사람의(웃음). 아이와 남편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보편성이 영화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남편을 설득했어요.

<까치발> 포스터

-까치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딸에게 했던 무심한 말들과 행동을 다시 보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고 변화해나가야 할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의 재미있는 요소죠. 영화와 함께 감독도 변하고 성장하거든요. 이 영화가 아니면 나 자신을 그렇게 내밀하게 들여다보지도, 엄마를 찾아가서 고백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거리두기를 통해 ‘나는 왜 이랬을까’ 묻고 직면하다 보니 엄마하고의 관계, 아이와의 애착 관계를 들여다보게 됐고 그걸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상담도 받고 엄마와 얘기도 나누게 됐고요.

-이전에는 어머니와 그런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나요? 
없죠. 근데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딸로서 죄책감을 갖고 있긴 했어요. 엄마 입장에선 제가 되게 자유로운 영혼이었잖아요(웃음).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결혼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론 항상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결혼해도 감독이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 우리 아이는 잘 컸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처음으로 나누는 진지한 대화에 어머니가 당황하진 않으셨어요?
표정에서 보이잖아요(웃음). 당황하셨죠. 그러면서, 결혼을 반대했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사과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엄마 입장에선 곱씹어보는 계기가 됐나 봐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표현은 잘 못 해요. 뭘 얘기하면 엄마는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길게 얘기할 수 없는 게 있죠. 근데 가끔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 깊은 대화 이후 변화한 부분이죠. 또 한편으로 생각했던 건,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냈던 말들이 엄마 입장에서는 폭력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이 영화 밖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권우정 감독 © 퍼플레이 

-감독이자 출연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으셨겠죠. 균형을 잡기 위해 촬영 당시나 편집 과정에서 어떤 시도들을 하셨나요?
계속 좌충우돌했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고요. 가끔은 내가 만든 영화인지 멘토들의 영화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웃음),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모니터링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지후가 지금 11살인가요?
네, 4학년.

-본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나요? 
네, 알고 있어요. 근데 제가 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이자 또 누군가의 딸인 저의 성찰’이었어요. 그래서 지후한테도 ‘이건 네가 나오는 영화지만 너의 영화가 아니라 엄마가 너에게 잘못한 걸 솔직히 고백하는 영화야’라고 설명해줬죠. 지후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 뇌성마비가 뭐야? 내가 장애일 수도 있어?’ 그 순간엔 이 영화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개봉을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됐는데 지금도 사실 확신은 안 서요. 그렇지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는 괴물 같았던 시간들을 고백하는 일기라는 거죠. 지후가 어느 정도 커서 이 일기장을 봤을 때 엄마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는지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까치발> 스틸컷

-지후가 철봉 앞구르기를 또래 아이들보다 잘 못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전까지는 ‘엄마’의 시점을 따라 지후를 마냥 예쁘게만 바라봤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어떤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지후를 보게 된 신이기도 했는데 그 장면을 통해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늦되니까 저는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고, 불안이 심각하게 와 닿았던 지점이 있었죠. 그게 놀이터 장면에서 드러난 것 같아요. 근데 영화 마지막에 지후가 철봉 앞구르기를 너무 잘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이가 가진 성장의 힘을 믿지 않았던 저를 또 돌아보게 됐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후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도 있잖아요. 그 말을 듣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셨는지 궁금해요. 
그땐 저도 엄청 울었어요. 내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데 결국 들켰구나 싶었죠. 아이도 주변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마음 아프고 미안했어요. 아이가 느낀 슬픔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제야 딸의 이야기가 들린다”는 감독님의 내레이션도 인상 깊었어요. 그전까지는 딸과의 소통보다는 해결책을 찾는 데 몰두했다는 걸 방증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요. 
처음엔 의사들도 ‘지켜보자, 언젠간 안 할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까치발을 안 하는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까치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거죠. 까치발을 회복되어야 할 질병, 징후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단번에 되는 건 아니고, 지금도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까치발>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영화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 어떤 말들을 건네고 싶으셨나요.
저마다 각자의 울림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모든 감독들의 바람이겠죠.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들이 영화 곳곳에 마련돼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슬퍼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주시길 바라요.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블로그 공유 URL 공유

PURZOOMER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여성 그리고 영화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냅니다.

[email protected]



INTERVIEW

퍼플레이 서비스 이용약관
read error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
read error

Hello, Staff.

 Newsletter

광고 및 제휴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