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슬픔에 자격은 필요 없다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퍼플레이 / 2021-04-06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1.3.23.|주현숙 감독을 만나다

주현숙 감독 필모그래피
2021  <당신의 사월> 감독
2017  <빨간 벽돌> 감독, 촬영, 편집
2014  <족장, 발 디딜 곳> 감독, 각본
           <니가 필요해> 프로듀서
2012  <가난뱅이의 역습> 감독, 촬영, 편집
2007  <멋진 그녀들> 감독
2004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감독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 각본, 감독, 촬영, 편집
2003  <킬로미터 제로, 2003 칸쿤 WTO 투쟁> 각본, 조연출
           <이주(옴니버스 다큐 <여정> 중)> 감독, 제작, 편집 

<당신의 사월> 포스터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이렇게 슬퍼해도 되는 걸까? 세월호 참사를 생각할 때면 문득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든다. 무기력, 분노, 슬픔, 자책감참사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그 복잡한 감정들이 차례로 지나간 뒤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몰려오는데,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자연히 묻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처참한 기분이 드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놓고 이렇게 슬퍼만 해도 되는 건가. 이렇듯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이들을 위해 그래도 된다며 손을 내밀어주는 영화가 우리 곁을 찾았다. 주현숙 감독의 <당신의 사월>(2021)로 향하는 화살들을 하나씩 걷어내며 목격자 또한 당사자가 될 수 있기에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쓰러져가는 배를 바라보며 슬퍼하던 교사, 대통령을 만나러 온 유가족을 보며 말 한마디 못 건넨 카페 사장, 유가족 곁을 지킨 인권 활동가, 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한 진도 어민, 수업 시간에 소식을 접하고 뉴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학생. 참사를 목도한 이들에겐 그날의 기억이 상처처럼 새겨졌고, 그 상처는 때때로 희미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상처를 덮어두면 안으로 곪아가듯 아픔을 쌓아두고 얘기하지 않으면 마음은 점점 부스러져갔을 것이다. 영원히 보기 싫은 흉터로 남길 것이냐, 때마다 들여다보고 관리해주어 잘 아물게 만들 것이냐. 영화는 단연 후자를 택하며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416일은 어땠나요?” 조심스럽지만 돌려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질문이다. 덕분에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다. 당시 무얼 하고 있었고 참사를 목격한 뒤 어떤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는지. 참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너도 아팠고, 나도 아팠다. 이제야 그 말하기가 시작됐고 그것은 앞으로 계속돼야 할 것임을 감독은 강조했다.

주현숙 감독 © 퍼플레이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을 하셨죠.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미디어위원회는 20205월 해산했다.) 
제가 방송작가 일도 해서 3주기 작업 땐 작가로 참여했고, 4주기 때는 영상 작업을 했죠. 참사가 저한테는 너무 컸어요. 당시에는 쳐다보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배 안에 아직도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에 지금도 힘들어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었죠. 덩어리처럼 콱 박혀 있었는데 3주기 정도쯤에는 왜 생각만 해도 울컥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를 들여다볼 만큼의 용기는 없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왜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닐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세월호 참사가 특히 감독님에게 크게 다가왔던 이유가 있을까요.
무기력감이 컸어요. 참사가 벌어지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잖아요. 지나고 나서는 이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실시간으로 목도했는데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죠. 마치 무덤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나? 그런 의문을 갖게 한 사건이었어요.

-지난해 코로나19로 <당신의 사월> 개봉 계획이 불투명했었죠. 올해 개봉이 더 뜻깊은 이유일 것 같기도 해요.
그 시간 덕분에 오히려 거리를 두고 영화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됐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유가족이 있는데 내가 힘들다고 얘기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그 부분을 걱정했고, 목격자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명백히 해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주디스 허먼의 책 트라우마목격자도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 거예요. 덕분에 확신을 얻었고, 영화 앞부분에 그 말을 넣었어요. 두괄식으로 간 거죠. 우리 모두 당사자다. 물론 슬픔의 위계는 다를 수 있지만, 목격자도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해요.

<이름에게> 스틸컷

-단편 <이름에게>(2018)를 장편으로 확장해 <당신의 사월>이 탄생했죠.
<이름에게>는 네 작품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 중 하나라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2018 참사 4주기를 맞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소속인 오지수, 문성준, 엄희찬 감독과 함께 각각의 단편을 만들어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당시에 작업하면서도 이건 장편으로 가는 게 맞겠다는 얘기를 했죠. <이름에게>를 작업할 때가 촛불 집회 지나고 나서였거든요. 그래서 그 열기와 열감, 흥분이 남아있었어요. 뭔가 잘 될 것 같고. 근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 얘기까지 담지 않으면 너무 옛날 얘기처럼 들릴 것 같았고, 현재성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이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끈질기게 지켜보고 포기하지 않아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장편 작업을 하게 됐죠.

-극장 개봉을 준비하면서 편집,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요. 어떤 내용을 더하고 뺐나요.
태극기 집회 장면을 추가로 넣었어요. 다시 작업하면서 카페 사장님을 만났는데 단편 제작했던 때가 너무 옛날 같다는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토요일마다 카페 앞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촛불 집회 물결이었는데 지금은 태극기 집회가 온다는 거죠. 그래서 토요일에 광화문에 가봤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너무 깜짝 놀랐죠. 이건 꼭 넣어야겠다 싶었어요.

-영화에는 교사, 서촌 카페 사장, 인권 활동가, 진도 어민, 기록관리학 전공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죠. 그분들은 어떻게 섭외하셨나요.
자료 조사를 아주 많이 했어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나 인권 활동가 분들이 기록해놓은 것들을 찾아보면서 제가 느꼈던 건 참사를 통해 각자 링크하는 게 다르다는 거였어요. 어떤 사람은 그날 밤 자체를 가슴 아파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유족이 폄하되는 과정에 충격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했죠. 통증은 지문과도 같아서 동일한 형태나 크기의 아픔은 하나도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다양하게 펼쳐놓고 싶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중심에 두고 자장을 그리면서 물리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했죠. 구조 활동에 나선 어민 분은 목격자이면서 피해자고, 참사 희생자 중 학생이 많다 보니 선생님들은 감정이입을 훨씬 깊게 하셨어요. 그 또래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고, 카페 사장님은 가게가 청와대 앞에 있다는 위치적 특수성 때문에 유족들을 멀리서나마 봐왔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 분 한 분씩 채워 나갔어요.

주현숙 감독 © 퍼플레이

-2인조 밴드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인 이민휘 씨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셨어요. 지금은 영화 음악 작업도 활발히 하고 계시죠.
사실 작업하면서도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인지 몰랐어요. 나중에 음악감독님이 , 몰랐던 거야!?’ 그러셨죠(웃음). 저는 음악이 몸으로 다가오는 게 좋아요. 근데 그걸 잘 쓰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선배 감독님이 추천해주셨어요. 영화를 봤는데 음악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연락했죠. 가편집본을 봐달라고. 보더니 좋다고, 하겠다고 하셨어요.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생각도 같았어요. 이미 충분히 슬프니 감정이 오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정의 윤곽만 그리자고 했죠. 그래서 저음과 앰비언스가 깔리는 음악으로 작업했어요. 그러고는 엔딩 장면에 쓰일 노래를 뚝딱 만들어 보내주시더니 여기 가사가 있으면 좋겠어. 가사를 써!’라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작업 막바지 때라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희생자들에게 할 말을 찾기 시작했죠. 노래 안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이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사를 쓰기까지 힘들어하셨다는 이야기를 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한 이틀 울면서 작업했어요. 근데 단호하게 빨리 쓰라고 얘기해줘서 오히려 좋았어요. 안 그러면 피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이 다큐를 만들면서 제 마음에 덩어리로 있었던 슬픔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요. 덩어리를 잘게 나눴더니 나눌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디바이드(divide) 했더니 셰어(share)할 수 있었죠. 너무 덩어리째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담스럽잖아요. 대신 이 때 어땠어?’라는 질문을 통해 한번 생각해보고 또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신의 사월> 스틸컷

-감독님 말씀처럼 당신의 416일은 어땠냐고 영화는 묻죠. 감독님은 당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제가 집행위로 있던 영화제의 폐막식이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어요. 뉴스가 계속 뜨는 걸 보면서 당연히 구하겠지생각했죠. 그리고 하루가 지났는데 뉴스를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안일하게 생각한 나 자신도 창피했고요. 그런 시간들을 보냈죠.
이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게 있어요. 제가 보통 영화 들어가기 전에 이런 작업을 할 거다라고 얘기를 해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1차적인 자료조사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제 계획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아팠고, 언제 힘들었는지.

-사람들이 모두 자기 경험을 얘기했다는 건 이 사건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겪은 사회적 참사임을 말해주네요.
다들 목격자가 될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죠. 또 흥미로웠던 건, 부산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후 어떤 외국인을 만났는데 중국 감독이었어요. 참사 당시에 자기도 해외 언론을 통해 뉴스를 봤다는 거예요.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를 본 사람이라면 국가를 뛰어넘어 무기력감, 분노, 자책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끝낼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304명의 이야기를 기획해도 좋을 것 같고요. 요즘엔 워낙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기록해놓지 않으면 잊게 되니까요.

-목격자로서 갖게 된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도 아팠구나. 나도 아팠는데. 그랬구나. 그럴 만했어.’ 이거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좀 덜 외롭잖아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받는다면 그걸로 족해요


<당신의 사월> 스틸컷

-연출 의도에 쓰신 말 중 준비 안 된 눈물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콱 박혔어요. 인터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 안 된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으리라 생각돼요.
제가 작업할 땐 잘 안 울어요. 인터뷰어로 임할 땐 영혼이 두 개가 돼서 다른 하나가 정신 차리라고 채찍질하거든요. 다만, 영화 안에 넣진 못했지만 어민 분이 한 번도 시신이란 말을 안 하고 지성이를 조카, 학생이라고 불렀어요. 너무 고마웠죠. 그냥 한 사람으로 본 거잖아요. 그때 울컥했어요. 다른 주인공 분들도 다 제 마음을 얘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어느 순간의 제 모습이 겹쳐보였죠. 그래서 인터뷰나 편집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었어요. 아이유의 이름에게를 특히 많이 들었는데,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그 곡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노래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정화시켰죠.

-지성이를 수습해준 어민 분과 지성이 아버님은 계속 관계를 유지해오고 계신 걸로 보였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표현 못할 끈끈함이 존재할 것 같은데 옆에서 지켜보기엔 어땠나요.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게 위안이 될 때가 있잖아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가면서 밥 한 끼 같이 먹고 그런 거. 평범한 일상인데 그것이 주는 위로가 있죠. 두 분 사이가 그래요. 우리도 서로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사실 노란 리본 달고 다니는 게 서로에게 그런 위안을 주는 것 아닐까 싶어요.

<당신의 사월> 스틸컷

-카페 사장님 말씀 중에 그게 기억에 남아요. KBS 전 보도국장의 세월호 막말에 유족 분들이 여의도로 항의 방문을 했다가 청와대로 향하셨잖아요. 그때를 직접 목격한 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뉴스로 그 일을 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 분이 좋은 게 감각이 닫혀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자기감정에 솔직하죠. 유령이란 표현은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유족한테 유령이란 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당시 유족 분들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사했어요. 그날 현장 촬영한 사람을 엄청 찾았는데 마침 미디어몽구 님이 갖고 계셔서 받아서 쓰게 됐죠. 그 장면을 좀 더 이미지화했으면 좋겠어서 나중에 그 길을 새벽에 가서 촬영했어요. 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길 바라면서 열심히 찍었죠.

-또 공들여 찍은 장면은 뭐였나요?
인천항 찍을 때였는데 그날이 마침 416일이었어요. 그날 아침에 아이들이 배를 탄 거잖아요. 그 애들이 몇 년 전에 여기 있었구나 생각하니,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울림이 있었죠그리고 세월호 인양 후에 눕혀져 있던 배를 세울 때 미디어위원회 감독들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배가 울어그러는 거예요. 첫날 반쯤 들렸을 때 영상을 봤는데 마치 살아있는 물체 같았어요. 무게중심이 바뀌면서 사이사이에 있던 물들이 쏟아지고 철근이 삐거덕삐거덕하는 소리가 저음으로 쿵쿵쿵 들렸어요. 그 장면 편집할 때 다들 멍했던 것 같아요.



<당신의 사월> 스틸컷

-출연자 중 학생 분은 참사 이후 기억교실 봉사활동에 참여한 뒤 진로를 바꾸셨죠. 참사의 영향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우리 조연출 동생이에요. 그 또래의 다른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대학에 들어가서 과 잠바에 노란 리본을 새겼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했나요?’ 물었더니 과대표 제안으로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근데 그분이 해외에 나가면서 제대로 인터뷰를 못하게 됐죠. 다른 분을 섭외하려던 와중에 조연출이 동생 얘기를 해줬어요세월호 얘기를 하다가 동생이 나 그동안 너무 바보처럼 살았어라는 말을 하더래요. 내 마음 같고 좋았죠. 섭외한 후 이야기를 나누는데 세월호 참사가 자기한테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록관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거고. 근데 언니인 조연출도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다들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갖고 있는 거예요.

-활동가분의 말씀 중 유가족다움이라는 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피해자를 비난하고 억압하는 방식 중 하나로 소위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잖아요. 꼭 고쳐야 할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죠.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다움으로 포장되지 않고도 당사자가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저는 이번에 세월호 얘기를 웃으면서 까지는 못해도 울상으로 하진 말자고 다짐했어요. 피해자다움, 슬픔으로 가둬 놓으면 이게 혐오랑 연결되거든요. 그걸 걷어내고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쉽게 되는데 커다란 불행으로 여기면서부터 선이 그어지는 거예요. 나랑 달라야 하고, 밀어내다 보니까 혐오가 되는 거죠.

-참 힘들지만, 그래도 결국 믿을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우리는 연결되어 있구나. 같이 뭔가를 하면 되겠지싶어요. 아픈 방식으로 깨닫게 되는 거죠. 근데 더 슬픈 건 잊혀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잊지 않고, 답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겠어요. 서로 응원하면서. ‘내가 자격이 있을까?’ 이런 생각하느라 에너지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당신의 사월> 스틸컷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기억하자고 말해주는 것 같았죠.
노란 리본 보면 되게 반갑잖아요.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리본만 달아도 돼. 그래서 덜 외로우면 돼.’ 영화의 메시지가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거죠. ‘노란 리본 매고 다니자. 서로에게 위안이 되자. 외롭지 말자.’ 그리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면 우리 모두 덜 슬퍼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잖아요. ‘왜 안 구했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망각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망각에서 벗어나 잘 기억하고 또 함께 버티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자세가 필요할까요.
어떤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나 뭐 하면 되냐고. 그래서 세월호 다큐 보러 온 것만으로도 많은 걸 하신 거라고 했어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도 그거 갖고 뭐 되겠어?’ 하실 수 있는데 그거 하나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리본 보면 반갑고, 세상이 아직 살만하구나 싶고. 그런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싶어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떻게 보면 그들도 감당이 안 돼서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또 다른 하나는,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진 걸로 보니까 그 반대편에선 공격하게 되는 거죠. 근데 그게 정말 그런 문제인가요? 이건 사람에 대한 문제, 사회에 대한 신뢰의 문제인데.

주현숙 감독 © 퍼플레이

-다큐로 세상이 바뀔 거라 기대하며 영화를 만드신다고요.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전보단 덜 조급해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걸 보고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화를 냈다면 이제는 당신은 지금 타이밍이 아닌가보다. 나중에 언젠가 알면 좋겠다이렇게 마음을 먹어요. 어떨 땐 후퇴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세월호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당신의 사월>을 매개로 해서 창구를 마련해볼까 해요. 온라인 게시판을 만든다거나 이메일로 이야기를 받는다거나. 개봉하면서부터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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