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요상하고 아름다운 엄마의 세계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 2020-10-29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0.10.15|한태의 감독을 만나다 |
한태의 감독 필모그래피 2019 <웰컴 투 X-월드> 감독, 제작, 촬영, 편집, 주연 <창진이 마음> 조연출 2018 <세마리> 연출부, 조연 <메기> 의상, 인물조감독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촬영지원 2017 <할머니와 팔씨름> 감독 |
〈웰컴 투 X-월드〉 포스터
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결혼은 왜 해야 돼? 그럼 나 외국인이랑 결혼해도 돼? 20살 차이나는 사람이랑은?” 엄마는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딸은 엄마의 결혼생활을 보고 비혼을 결심했는데 말이다.
한태의 감독은 궁금했다.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지 12년인데 엄마는 왜 지금까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걸까. 먼 시댁 식구까지 일일이 챙기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이 그런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절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도 감독은 자신과 전혀 다른 엄마가 신기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무겁지 않고 위트 있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그렇게 <웰컴 투 X-월드>가 탄생했다.
엄마의 50년 세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그 깊고 깊은 곳을 탐험하기 위해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엄마를 담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고 점차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더불어 어렴풋이 깨닫는다. ‘가족’이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이상한 관계라는 것을. 영화는 ‘엄마의 인생 첫 독립기’인 동시에 ‘딸의 엄마 탐구기’이기도 하다. 탐구 끝에 마주한 그는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최미경’이라는 사람이었다.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영화의 주제를 거칠게 정리하면 ‘시월드에서 탈출하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주제는 처음에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중고 캠코더를 사고 나서 뭘 찍을까 고민했어요. 제가 게으른 편이라 뭘 꾸준히 찍으려면 정말 궁금한 것이나 호기심이 발동하는 걸 대상으로 삼아야 해요. 제게 가장 궁금한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했죠. 2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나와 너무 다른 게 신기하더라고요. 작게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결혼관까지 생각하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서 엄마를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찍기 시작했어요.
-명확한 주제가 나오기까지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찍었어요. 그러다 제가 찍어놓은 것들을 봤는데 엄마한테 반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결혼에 관한 것이었어요. ‘시댁’ 관련 질문들을 많이 던지기도 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어떤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 될지 가닥이 잡혔죠.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여겼다고요. 어떤 점에서 신기하고 또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나요?
초중학교 때도 엄마는 ‘오늘 어디 가야 돼’ 하면서 절 어딘가로 데려가셨어요.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고등학교 졸업식이었죠. ‘저 오빠 누구야?’ 물으면 ‘시고모 딸의 아들의 누구야~’라고 하시는데 엄밀히 따지면 모르는 사람인데도 엄마는 항상 꽃다발과 선물을 챙겼어요. 그땐 그냥 그래야 되나보다 하고 받아들였는데 크면서 점점 의문이 생겼죠. ‘남인데 거길 왜 가야 하지? 왜 축하해줘야 하지?’ 반발심이 생기면서 엄마는 나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머니는 집안 행사를 챙기는 걸 힘들어하진 않으셨어요?
저희 아빠가 장남이셔서 엄마는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지금 아빠가 없는데 왜 엄마가 그걸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죠.
〈웰컴 투 X-월드〉 스틸컷
-엄마의 기대주로 자라면서 부담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심할 경우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엄마’는 감독님이 가장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자 큰 힘을 주는 사람이라고요. 그런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세상에 큰 불만 없이 자랐어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엄마와의 깊은 유대관계 덕분인 것 같아요. 중학교 때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빼빼로데이에 남자친구 갖다 주라고 엄마가 빼빼로를 사줬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소통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연애를 하거나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면 엄마에게 얘기해요. 그러면서 엄마와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지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엄마의 기대 때문에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공부를 좋아하기보다는 엄마가 뿌듯해하니까 관성적으로 했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를 생각하게 되는 시기가 왔어요. 재수할 때였는데 행복하지가 않았죠. 그래서 다른 생각에 빠졌어요. 엄마한테 사실을 털어놓는 게 무서워서 고민 끝에 어렵게 말했죠. 당시에는 속상해하셨지만 결국 이해해주시는 걸 보고 엄마한테는 솔직해도 되겠다는 믿음을 갖게 됐어요.
-그때를 계기로 관계가 더 두터워지고 깊은 신뢰가 생긴 거네요.
서로에게 실망하고 이해 안 되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엄마와 나는 회복 가능한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노력 없이 자연스레 관계가 회복된 건가요?
엄마가 저랑 세 달 동안인가 아예 말을 안 했어요. 저도 처음에는 반항하다가 ‘이거 어떡하지?’ 싶었죠. 엄마랑 빨리 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오빠랑 시라노 연애조작단처럼 전부 설계하고 작전을 짰어요. 결국 엄마와 다시 말을 하게 된 날 둘이 울면서 눈물의 상봉을 했죠(웃음).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재수생 시절에 본 영화 한 편으로 영화 연출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후 정말로 영상학과에 진학하셨어요. 그렇게 직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영화에 엄청 매료됐었어요. 저는 원래 혼날 때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직접 깨닫기 전까진 잘 바뀌지 않는 사람이라 남의 조언이 크게 작용하지 않죠. 그런데 <파수꾼>(윤성현, 2010)을 보고 과거를 떠올리면서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됐어요. 정말 신기했죠. 영화라는 매체가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고,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수꾼> 이후에 다른 영화들도 찾아보셨나요?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도 보고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도 봤어요. 그전에는 워낙 본 게 없으니 보는 영화마다 인생영화라고 느껴졌어요(웃음). 취향을 말하기도 어려웠고 뭐에 매료되는지도 몰랐죠.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부터 어떤 것에 끌리는지 알게 됐어요.
-취향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 뭐예요?
박찬욱 감독님. <박쥐> <복수는 나의 것> 정말 좋아해요. <박쥐>가 요즘엔 더 좋은 것 같아요. <친절한 금자씨>도 진짜 재밌었어요.
〈웰컴 투 X-월드〉 스틸컷
-엄마와 본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미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엄마한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많더라고요. 엄마가 너무 희생하는 것 같을 때 ‘이렇게 해도 아무도 안 알아줘’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걸 알게 됐어요. 엄마가 고생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마음을 담은 말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니 태도가 잘못됐음을 알 수 있었죠. 그러면서 표현법을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엄마가 정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엄마의 이미지는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엄마는 세상 사람들의 거짓말에 다 속을 것 같고, 제가 대신 의심하고 보디가드가 되어줘야 할 것 같았죠. 그런데 무언가 결정해야 할 순간에는 단호하게 결정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가 가족을 위해 했던 희생은 강하지 않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죠. 누군가를 챙길 수 있는 여유는 단단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래방 장면이 참 인상 깊었어요. 특히 영화 후반부의 노래방 장면에서는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셔서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그때가 시기적으로 굉장히 평화로울 때였어요. 이사 준비도 착착 되고, 새집도 꾸며놓은 상태고, 남은 건 이삿짐 옮기는 것밖에 없었죠. 할아버지와 감정적인 것도 정리됐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시원했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감정이 복잡했나 봐요.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 쌓인 유대감은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겠죠. 할아버지와 충돌이 있을 때 엄마는 ‘서운하다’고 말했어요. 서운하다는 게 애정이 없으면 갖기 힘든 감정이잖아요. 내게 애정을 주길 바라지만 그게 이뤄지지 않을 때 서운한 건데,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그런 마음이었던 거죠. 영화를 찍는 내내 ‘엄마가 집을 나가면 할아버지를 계속 만날까 안 만날까’ 궁금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집을 나가도 엄마는 할아버지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겠구나.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 고민이 많으셨다고요. 혹시 가족 분들의 요청으로 빠지게 된 내용도 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엄마에게는 촬영하면서 중간에 계속 확인을 받았죠. 엄마는 내용보다는 비주얼을 더 걱정하시더라고요. 집에서 찍다 보니 후줄근하게 입은 모습들이 많았어요. 설득 과정을 거쳤죠. “엄마, 이게 바로 리얼리티야. 이런 게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거야”라고(웃음).
-제목을 처음 봤을 땐 ‘X-월드’를 시월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지수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X’를 사용하신 거라고요.
엄마가 시월드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시월드로 초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내가 알지 못하는, 알아가고 있는 엄마의 세계라는 의미로 ‘X-월드’라고 지었죠. 근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도 기분 좋아요.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잖아요. GV 끝나고 관객 분들이 제게 와서 제목에 대해 여쭤봐 주실 때 정말 기분 좋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셨다고 했는데, 이외에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신 것이 있나요?
처음엔 결혼을 하면 엄마가 했던 희생을 저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의 저는 엄마가 항상 주기만 하고 얻은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몰랐던 것들, 결혼이 엄마에게 채워줬던 것들, 엄마가 시댁 식구들과 쌓아온 유대관계를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가 생각했던 게 결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엄마의 결혼생활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죠.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금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미래가 그려지는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정도로 바뀌었어요.
-가치관은 잘 바뀌지 않는데,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이외에도 변화를 경험하신 게 있나요?
‘가족이란 뭘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친가 결혼식 갔다 온 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엄마에게 더 가까울 것 같은 건 외가 결혼식이잖아요. 근데 오히려 친가 결혼식에서 엄마가 편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관계들이 얽혀있는 ‘가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었죠. 더 가깝게는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엄마 세대와 생각이 많이 다르잖아요. 옛날에는 저도 엄마한테 제 생각만 말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바뀌었죠. ‘엄마는 50년을 살아왔고, 가치관이 바뀌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어떻게 우리 세대를 이해시키고 나도 엄마 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게 됐어요.
-해결책을 찾으셨나요?
친구들과 하는 것들을 엄마랑 하면서 우리 세대를 이해시키려고 해요. 방탈출이나 스티커 사진 찍기 같은 것들. 우리 세대가 하고 노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죠. 금세 흡수하고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엔 엄마랑 이것도 해봐야겠다, 생각해요.
〈웰컴 투 X-월드〉 스틸컷
-영화가 어머니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어머니도 변화하신 지점이 있나요?
‘이것에서 벗어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 내가 혼자 할 수 있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요. 집을 구할 때 부동산에 들어가는 걸 엄마가 싫어하셨어요. ‘우리 둘이서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죠.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많이 이끌었는데,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독립에 가까워지는 걸 실감하니까 나중에는 집 꾸밀 때 페인트칠도 먼저 제안하시더라고요. 엄마의 주도적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됐어요.
-영화제 상영본과 달리 개봉을 위한 상영본에는 최근 모습을 따로 촬영하셔서 추가로 담으신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할아버지 집을 나와서 이사를 간 것 자체가 ‘끝판왕’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독립을 했으니까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사한 집에서 엄마와 살다 보니 엄마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엄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죠.
-자전거 배우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았어요.
엄마가 이틀째 만에 자전거를 타더라고요. 그것도 제가 몰랐던 모습이었죠. 또 신기했던 건, 저는 엄마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다시 안 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청춘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자전거에 앉더니 ‘다시 타자!’고 하는 거예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웰컴 투 X-월드〉 스틸컷
-이 작품을 통해 관객 분들이 어떤 이야기나 생각들을 나누길 바라세요?
젊은 여성 세대와 그들의 엄마 세대, 또 엄마의 엄마 세대는 굉장히 다르잖아요. 그들이 살아온 사회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보니 엄마와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이해하는데,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관계를 차단하고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계속 질문을 던지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는 왜 그렇게 생각해?’ 묻다 보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영향이 컸다는 걸 알 수 있죠. 엄마도 대답하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깨달을 수 있고. 엄마와 딸이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는, 소통과 연대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어요.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구분이 있죠. 특히 여성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를 약간은 폄하하는 의도를 담아 쓰이기도 했는데, 그러한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구분 짓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영화를 보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 태도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당장 이걸 찍으면서 저와 엄마는 변화했어요. 그리고 사회는 개인이 모여 구성되는 거잖아요. 엄마와 내가 변화했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분들도 생각이 변한다면 그들이 모여 사회도 변화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이옥섭, 궁유정 감독님과 친분이 두터우신데, 주변 동료들로부터 얻는 긍정적인 자극이나 에너지가 있나요?
진짜 큰 것 같아요.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두 분이 영화를 찍고 결과물을 내는 걸 보면 제 일처럼 기쁘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을 얻어요. 의지가 정말 많이 되고 연대감을 느끼죠. 저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일필휘지’라는 글쓰기 모임을 가져요. 정말 치열하게 하죠. 1분 늦을 때마다 2만원씩 내요. 글쓰기도 한 시간 동안 글자크기 11에, 1.2 간격으로 한 페이지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띄어쓰기도 하면 안 되고 대사도 옆으로 붙여 써야 해요. 제출 시간에 1분씩 늦을 때마다 또 2만원 내야 하고(웃음).
-서로 쓴 글을 보면서 영감을 받기도 할 것 같아요.
영감도 받고,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내 글의 문제점이 뭔지 알게 돼요. 똑같은 시간 내에 동일한 제시 문장을 갖고 글을 쓰는데 세 명이 다 다른 글을 써요. 설정이나 배경, 인물까지 다른 걸 보면서 역시 우리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 새삼 깨닫죠. 제가 두 분의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갖게 만들어줘요.
그리고 저희가 하나씩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옥섭 감독님은 총괄 PD, 궁유정 감독님은 기획재정부, 저는 문화체육부예요. 그래서 사진들을 정리해 카페에 올리곤 해요. ‘그날 기억하십니까? 우리 대구 갔던 날입니다’ 이러면서(웃음).
-‘일필휘지’ 모임은 언제부터 시작된 거예요?
처음 시작은 2018년도 겨울이에요. 그때는 한 달에 두 세 번씩 했어요. 그러다 작업실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죠. 올해 벌써 2주년이네요. (기념 파티 하셔야겠어요.) 그러니까요. 제가 또 문체부니까 한번 기획해보겠습니다. 제 지각비로 할 것 같긴 한데(웃음).
한태의 감독 ©퍼플레이
-“감독은 작품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존재인 것 같다”고 한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들로 소통하고 싶으신가요.
이번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 고민을 공유하고 관객 분들도 함께 생각해보면서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극적인 이야기,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것들을 펼쳐보고 싶어요.
-여성영화를 사랑하는 분들, 그리고 퍼플레이어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영화과에서도 여성 비율이 높은데 결과를 내는 게 참 어렵잖아요. 여성 감독님들 작품 보기 어려운데, 퍼플레이에서 볼 수 있어 참 좋아요. 그런 점에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퍼플레이어로서 다른 감독님들 영화 보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퍼플레이에서 어떤 작품 제일 재밌게 보셨어요?
김보라 감독님의 <귀걸이>요! 이옥섭 감독님의 <세마리>도 덕분에 다시 볼 수 있었어요. (<세마리>에는 출연도 하셨잖아요.) 맞아요. 달기 배우님과 영광스럽게 호흡을 맞춰봤죠(웃음). 배꽃나래 감독님의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도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그 영화가 퍼플레이에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영화제 화제작을 바로 볼 수 있으니까 정말 좋았어요.
PURZOOMER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여성 그리고 영화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냅니다.
관련 영화 보기
INTERVIEW
엄마의 해방일지!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 릴레이 응원 GV
지금, 여기, 우리의 목소리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말해도 괜찮은 세상을 위해
고백과 선언, 그리고 위로
서로의 길을 넘나들며
손 놓지 않기
서로에게 ‘곁’이 되길 바라며
그 누구의 연인도 아니었던,
제23회 대구단편영화제 <파동: 영화의 물결>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삶을 위로하는 ‘춘희’의 찬가
퍼플레이 서비스 이용약관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