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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로서의 ‘여성’: ‘여자다운’이 아닌 이토록 ‘인간적인’

<디스트로이어>

홍재희|영화감독

여성/남성 또는 여자다움/남자다움이라는 꼬리표를 뗀 인물, 젠더 이분법을 넘어선 고정관념을 파괴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여성이 다양한 캐릭터로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여자다운’ 캐릭터가 아니라 이토록 ‘인간적’일 수 없는 캐릭터를. 여성이 그저 개인으로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의 내 몸 사랑하기

<겨털소녀 김붕어>

유자

<겨털소녀 김붕어>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그것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말이다.

무명의 자국을 기억하고 말하는 방법

<옥상자국>

최민아

영화의 첫머리에서 감독은 말한다.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지나간 시간 중에는 기억되지 못하는 시간도 있다.’ 무명의 자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해야 할지 다시금 이 질문을 떠올리며, 일상과 역사가 무관하거나 나와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아 나가야 한다. 이로부터 기억의 복원은 시작된다.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

<푸르른 날에>

유자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당시 찍힌 사진은 지워질 뻔했던 여성에 대한 남성과 국가의 폭력을 하나의 이미지로 또렷이 기록해냈고, 그렇게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일방직 사건을 다룬 해당 작품 역시 사진을 배우는 여공들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폭력 그 자체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모욕적인 사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 개개인에 집중하고 그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노동운동과 민주화 한복판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그 사건을 기억해낸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위하여

<디서비디언스>

장영선|영화감독

에스티는 말한다. 자신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인 세상에서 사는 나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곧 태어날 에스티의 아이는, 과연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까?

흐릿하고도 선명한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최민아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R=VD(Realization=Vivid Dream), 상승곡선 가자!”라는 자신들만의 주문으로 서로의 희망을 외치듯 그 반짝임이 현실에 가 닿기를, 그리고 지금의 날들이 지나더라도 이따금 그 주문을 꺼내어보며 또 다른 날들의 다짐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磨斧作針)

<바느질 하는 여자>

김승희|영화감독

바늘은 천과 천을 이어준다. 영화는 세상과 세상,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우진 감독이 그의 작품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나갈 작품들을 통해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실과 바늘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가 깁는 한땀 한땀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소녀들이여, 추락하는 것은 자유다 용기다

<폴링>

홍재희|영화감독

분신과도 같았던 아비의 죽음은 리디아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를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언어를 빼앗긴 리디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몸뿐이다. 리디아와 급우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말한다. 몸으로 저항한다. 여성이 신경증에 걸리는 이유는 자궁이라는 장기 탓이 아니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체제, 관습, 문화, 그 모든 것이 여성을, 여성의 목소리를,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인 것이다.

상처를 딛고 나아가기

<언프리티 영미>

유자

용기 내 랩을 함으로써 영미는 그동안 갇혀 있었던 상처의 터널에서 나오기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 엔딩 장면에서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은 ‘Unpretty Young Mi’에서 ‘Unpretty Young Me’로 변한다. 바뀐 제목처럼 그는 더 이상 예쁘지 않은 영미가 아니다. 막 변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외모를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었던 예쁘지 않은 과거의 나와 작별한 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영화

<워터 릴리스>

장영선|영화감독

영화의 세계에서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공감하려 애쓰며 열차와 열차의 이음새에 서서 배회했다. 모든 인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영화를 이제야 만났으니, 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의 열차에서 영원히 내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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