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데이
영화와 관객 그리고 세상으로의 연결
그대의 곁에서 함께
퍼플레이 / 2019-12-18
12월의 퍼플데이에서는 세대별로 다양한 여성 1인가구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일상이 왜 고비이고 고난일 수밖에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혼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여럿의 우리들이 더 촘촘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더 이상 고립된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우리가 함께 주고받은 생각들을 전해드립니다 :) |
<대리시험> 스틸컷
<대리시험>(김나경, 2019)의 현주는 탈북 2세이자 무국적자입니다. 현주의 부모님은 탈북 후 중국에서 현주를 낳았죠. 부모님이 사고로 사망한 뒤 현주는 이모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지만 부모가 북한 사람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국적 판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현주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삶을 ‘꿈 꿔야’ 합니다. 또 하나의 꿈이던 블랙제이 팬미팅에 가기 위해 현주는 자신과 닮은 친구와 ‘거래’를 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과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계양산> 스틸컷
<계양산>(주영, 2019)은 이혼 여성이 일상에서 어떠한 차별과 시선을 견뎌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남자들의 추근댐과 타인의 무신경한 언행을 참아 넘기던 현남은 결국 폭발하죠. 그리고 그의 곁에 마치 ‘구세주’처럼 선주가 다가옵니다. 현남과 선주가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은 더 이상 누군가의 어떠한 오지랖도 개입되지 못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엄마와 뻐꾸기 시계> 스틸컷
<엄마와 뻐꾸기 시계>(유재희·민지혜, 2017)는 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하루를 보여주는 단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큰 울림을 주죠. 차분히 따라가다 울컥하게 되고, 지금의 혹은 시간이 흘러 흘러 미래의 엄마와 나를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처럼 12월의 퍼플데이에서는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일상이 담긴 영화들을 보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탈북 2세, 이혼 여성, 독거 노인 등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집중해 조명한 적은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나니 그들의 곁에 함께 있고 싶어졌습니다. 이날 GV 손님으로 모신 <대리시험>의 김나경 감독님과 <계양산>의 주영 감독님 그리고 관객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12월 퍼플데이의 GV 손님으로 참석한 주영 감독(맨 왼쪽)과 김나영 감독(가운데) ©퍼플레이
감독님들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나경(이하 김): 현주와 비슷한 사연으로 무국적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순수하게 생각했던 게 ‘현주가 부모님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였어요. 중국, 북한? 아니면 남한? 정체성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릴지 궁금했죠. 나중에는 국적이 어딘지 그런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게 됐고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주영(이하 주):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함, 일상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이혼 직후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고, 또 그 시기의 여성들도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혼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게 됐습니다.
김나경 감독님은 우연한 계기로 무국적 판정을 받은 분들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실제로 그분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게 되셨나요?
김: 자료조사 하면서 이런 사례가 극히 희귀한 사례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저런 (영화 속 주인공인 현주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든 무국적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계양산>에 나오는 인물들은 여러 가지로 관객들을 힘들게 합니다. 특히 현남이 위원장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상사는 아니지만 마냥 편하게만은 대하지 못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주: 위원장은 현남의 직속 상사는 아니고 지역 활동을 하는 인물이에요. 신문사 이사 정도의 직함을 갖고 있는. 간혹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는 인물이 존재해요. 그래서 위원장을 그런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대리시험> 스틸컷
<대리시험>의 배우들이 중국어와 북한말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사용하더라고요. 캐스팅이나 연기 디렉팅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신 게 있나요?
김: 현주 역할의 신서희 배우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와서 실제로 중국어를 되게 잘해요. 신서희 배우와 닮은 배우가 한 명 더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닮은 사람을 찾는 게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시나리오상에서는 원래 설정이 ‘굉장히 닮은 두 명’이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죠. 그런데 고개를 숙였을 때 비슷한 김예빈이라는 배우를 찾았고 시나리오도 ‘고개를 숙였을 때 비슷한’ 으로 바꾸게 됐어요. 그리고 홍숙 역의 손영주 배우는 중국어와 북한말을 써야 해서 말투 관련해서는 실제로 탈북민 분에게 자문을 받았습니다.
인천의 계양산은 동네를 대표하는 산이라고 들었어요. 영화에도 나오듯이 계양산을 뒷산이라고 언급하는데, 아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장면들이 나오더라고요. 현남이 산을 오르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면 높은 산을 설정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동네 뒷산이라 불리는 계양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 질문에서 이미 다 말씀을 해주셨어요. 계양산이 동네 뒷산이어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가볍게 운동 삼아 다닐 수 있어요. 그래서 산을 오르다 보면 아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죠. 현남을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인물도 계양산에서 만나게 되는데, 현남이 이혼 후에도 남편과 같은 곳에서 활동해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잖아요. 그런 것을 모두 담고 싶어서 계양산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계양산> 스틸컷
(관객 질문) <계양산>에서 신적인 존재(선주)가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는데요. 판타지스러운 결말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감독님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기에 그런 캐릭터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감독님이 현실에서 그런 분을 기적처럼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러한 캐릭터를 넣게 되신 것인지요. 주인공 이름이 현남인 것도 눈에 띄던데, 특별히 염두에 두고 지은 건지도 궁금합니다.
주: 현남이란 이름은 제가 가르쳤던 꼬마 애의 이름이었어요. 제가 맘에 들어 했던 이름이죠. 이름이 너무 여성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현남’ 하면 남자를 바라는 집안의 여자아이 이름 같았죠. 그리고 비록 귀신 같지만 이름이 있는 선주는(웃음)… 현남에게 자극을 주는 인물로 설정하고 싶었어요. 촬영 직전까지도 결말을 고민했는데 그런 여성을 넣고 싶었던 이유는, 여성 연대를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혼한 뒤 힘들고 나약해져 있을 때 여자 선배들의 도움이 힘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선주는 현남이 이사올 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던 사람이라는 설정이었어요. 현남은 이혼 후 세상에 관심이 없으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선주를 전혀 몰랐고 선주는 현남을 알아본 거죠. 나름의 뒷이야기는 그렇고, 어찌 됐든 여성 연대를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관객 질문) <대리시험>에서 현주가 블랙제이 팬미팅에 가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어했는데도 표정이 밝지 않고 마지막에는 교복의 이름표를 뜯어버려요. 그 순간에 저는 현주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 가수는 국적이 있는데 왜 예명을 쓰지?’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국적도 이름도 있는데 예명으로 활동하니 아이러니함을 느꼈을 것 같아요.
김: 그렇게까지 생각하면서 설정한 건 아니에요. 거기까지 생각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그렇게 얘기하고 다녀야겠어요.(웃음) 블랙제이를 아이돌로 설정했던 이유는 현주에게는 남한이란 국가와 서류로 증명될 수 없는 자신이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그게 마치 아이돌과 같다고 생각해서 블랙제이를 아이돌로 설정하게 됐죠. 영어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주희의 대사 중 ‘어디든 한국만 아니면 돼. 여기 살기 XX 힘들거든’이라고 말한 맥락과 같아요.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고, 해외를 동경하고, 그런 맥락에서요. 또 이름에도 저작권이 있어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대리시험> 스틸컷
(관객 질문) <대리시험>에는 남자 배우들이 많이 안 보이는데 일부러 의도하셨던 건지 궁금해요.
김: 딱히 의도하고 성별을 정하진 않았어요. 아이돌 팬미팅에 가고 싶어하는 여자아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들로 이뤄지게 됐죠. 현주와 닮은 친구도 여자 아이여야 하고 그룹홈에서 같이 생활하는 설정을 넣고 싶다 보니 또 여자아이가 필요했어요.
(관객 질문) <계양산>에서 위원장이란 사람이 현남을 토끼라고 부르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주: 특별한 건 없고 그렇게 닭살 돋게 부르는 호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부담스럽잖아요. 토끼….(웃음)
©퍼플레이
(관객 질문) <대리시험>에서 마지막 장면이 동작대교에서 동부이촌동을 바라보면서 찍은 것 같더라고요. 동부이촌동은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마치 서울에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을 담고 싶어서 그러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김: 전혀 그런 건 아니었고 이것도 (어디선가 질문이 나온다면) 그렇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 장면은 다리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육지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어야 현주의 정서와 맞다고 생각했고 도시의 불빛이 예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주의 처지와 다르게, 마치 아이돌을 보는 것처럼. 그래서 찾아보니 동작대교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정말 반짝반짝하더라고요.
(관객 질문) <계양산> 영문 제목을 ‘Uncomfortable’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 처음에는 계양산이 유명한 산이 아니어서 동네 뒷산 정도로 번역하려 했는데 영제는 영화 내용과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남이 산에서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서 그걸 녹여내고자 영제를 ‘Uncomfortable’로 짓게 됐죠.
<계양산> 스틸컷
(관객 질문) <계양산> 후속작으로 현남과 선주의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은 없으신가요?
주: 그러게요. 두 사람의 로맨스를 상상했다는 분도 있긴 있었어요. 사실 이 두 배우가 약간의 썸씽이 있는 이야기로 (저랑은 아니지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은요?
김: 지금 편집 중인 영화가 있어서 부디 공개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주: 저도 10월 말에 촬영해 편집하고 있는 작업이 있는데 내년 1~2월에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퍼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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